영화를 보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그냥 애들 만화 같지 않다고 해서 주변에 추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전에도 내가 느끼기엔 픽사 애니메이션은 그냥 애들 만화가 아니었지만, 보기 드물게 '보고 싶어서' 영화관에 가서 본 영화였다.
나랑 같이 간 팬돌이는 이 영화를 보다가 졸았다고 한다. 서사구조보다는 감정에 주목하면서 봐야 하는 영화라서 그런 듯하다. 내 쪽은, 정말이지 '감정이나 기억에 대해,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어쩜 저렇게 잘 표현했지?'하고 감탄했다. 나는 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는 거야!!!! 대단하답!!!! 이란 생각이 들 때 꽤나 감동하는 편이다.
그리고 여기부터 스포가..
기억들이 모여서 나의 성격을 형성한다. 그런데 그 기억에는 감정이 항상 함께하고, 때론 그때그때의 감정에 따라 그 기억에 대한 감정도 변한다. 그런 것들을 캔디볼 같은 흐름과 '성격섬'으로 표현하다닠ㅋㅋㅋㅋㅋㅋ 그 메커니즘들을 표현한 걸 보면서 교육심리 시간에 배웠던 이론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핵심 기억이나 장기기억 같은 용어가 나오면 더더욱. 이론적으로도 맞는 내용들을 섬세하게 표현한 것도 새로운 감동이었다. 장기기억들 중 많은 것들은 사라지고, 어떤 것들은 껌 노래처럼 갑자기 생각나기도 하고. 생각 기차를 타고 가면서 '저거는 뭐, 저거는 데쟈뷰, 저거는 이거, 저거는 데쟈뷰..'하는 식으로 무슨 놈의 데자뷰는 그렇게 많아!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머릿속 같다. 그리고 잠재의식에 대한 표현은 정말 (요즘 애들 하는 말로..) 소오름~! 엄청 공포스러웠던 기억들이 갇혀있는 잠재의식 감옥 속에선 기억의 쓰레기장처럼 기억들이 부식되지 않는다. 그냥 잠자고 있을 뿐.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애들 보는 거니까 대충' 만든 게 아니라, 감정이나 기억에 대한 이론을 정확하고 재치있게 표현한 것이 좋았다. 그런데 감정을 나누는 카테고리가 기쁨, 슬픔, 분노, 공포, 혐오(disgust-까칠이) 다섯가지인가? 하는 궁금함이 생겨서 내가 갖고 있는 감정 단어 목록을 보니 기쁨/즐거움/슬픔/분노/공포/미움/바람(慾)로 나뉘는 걸 보면 얼추 맞는가보다.
그리고 또 기억에 남았던 장면들.
뭐니뭐니해도 빙봉이 기쁨이를 올려다주고 자기는 스르륵 사라질 때......
언제까지나 동심을 갖고 있었으면 좋겠지만 사람은 그걸 잊어버리곤 한다. 그게 그냥 사라져버린 것 같지만 결국 빙봉이 덕분에 기쁨이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내가 잊어버린 것이 나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장면이었다. 아름답지만 잊혀질 수밖에 없다는 슬픔 때문에 자기답지 않게 기쁨이도 이 장면에선 눈물을 흘린다. 나도 눈물이 찔끔 나는 걸 참았다.
그리고 이 대목만큼은 아니지만, 슬픔이가 빙봉을 위로할 때나, 기쁨이가 슬픔이에게 '네가 필요해'라고 하면서 슬픔이가 버튼을 누르고 라일리가 부모님과 껴안는 장면도 짠했다. 왜지? 내 안의 슬픔을 인정해서인가? 라고 잠시 고민했는데 그냥 그 장면에서 공감하고 슬픔을 나도 느껴서 그런 것 같다.
그렇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귀여운 슬픔이다. 이야기는 기쁨이의 시점에서 진행되고, 처음엔 기쁨이 우월한 감정인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기쁨이는 심지어 슬픔이에게 너 이 선 밖으로 나오지마!! 하기도 하고. 그런데 기쁨이가 슬픔이도 필요하다는 걸 차츰 깨닫게 된다. 상실감에 빠진 빙봉을 위로한 것은 "힘내! 괜찮아!"한 기쁨이가 아니라 같이 슬퍼해 준 슬픔이였고, 핵심 기억을 돌려보면서 '시합에 졌다'는 슬픔이 있었기에 가족의 사랑을 느낀 기쁨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기쁨이도 여러번 슬퍼한다. 그렇게 기쁨이가 슬픔이부터 구름에 태우고 나서야 비로소 둘은 다시 감정본부로 돌아가게 되고, 슬픔이가 버튼을 누르면서 라일리도 더 성장하게 된다. 그야말로 슬픔이여 안녕 Hello, Sadness. 이다.(같은 제목을 가진 사강의 소설에서도 '안녕'이 Good bye가 아니라 Hello인 것으로 알고있다. 슬픔이란 성숙의 상징인걸까.) 그리고 성격섬도 더더더 많아지고, 감정도 더 풍부해지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좋았다. 긍정을 강요하고 심지어 학교에서 '행복을 가르친다'는, 기쁨과잉의 시대에서 슬픔을 긍정해주는 결말이 더 따뜻했다. 슬픔도 꼭 필요한 거야, 라고 말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