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빅 히어로> 사심 50%, 교육자의 관점 50%로 쓴 감상
    일상 2015. 2. 22. 09:24

    스포 엄청 많음 아마도. 


    이 영화에는 나쁜 사람이 없다. 로봇 격투에 빠진 히로는 순수하고, 그의 형 테디는 어찌나 착한지 사람 고치는 로봇을 엄청 열심히 만든다.


    사실 여기에서 나의 개인적 취향이 좀 개입하긴 하는데, 나는 헐리웃 영화에서 그려지는 Nerd 공대생 캐릭터에 사족을 못 쓴다. 자기 분야에서만 엄청 천재적이고, 사람들과도 솔직하게 관계 맺고 마음도 순수하고, 연애 경험도 없다가 어느 날 첫눈에 반한 여자에게 순정을 바치는이 영화에선 그런 캐릭터들이 떼거지로 등장하니 일단 나에겐 별점 세 개 정도 먹고 들어간 듯하다.

    특히 내가 테디에게 반한 대목은 이런 거다. 로봇 경기를 하겠다, 대학 따위 가지 않겠다고 고집피우는 (아마도 자기는 세상 다 안다고 믿지만 실은 시야가 좁은) 동생을 연구실로 한번 데려가서 보여줌으로써 생각을 바꾸게 하는 것. 내가 굉장히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교육의 방식이다 그리고 이 집 식구들을 봤을 때 히로가 끝까지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버텼어도 테디나 이모는 막 강요하진 않았을 것이다. 테디가 죽고 나서 히로가 상심에 빠져있을 때, 이모는 조금도 손대지 않은 아침밥 접시를 보고도 아무 말 없이 새로운 점심밥을 갖다주고 그래도 학교에 등록은 해야 하지 않겠니정도로만 토닥였다. 이 장면 정말 감동적이었다. 뭐랄까, 내가 실천할 수 없는 경지이지만 저렇게 지켜보고 품어주는 사랑을 하는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랬다.

     

    , 다들 착하다보니 이야기의 개연성이 의심스러운 부분도 없잖아 있다. 칼라한 박사가 딸의 원수를 갚기 위해 악당짓을 하는데, 그런 어둠의 경로가 아니라 그냥 히로를 돕는 척하면서 이용하는 게 더 낫지 않나? 그럼 경찰에 끌려가지 않고도 복수를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불이 안 났으면 어떻게 복수하려고 했던 거지? 만약 히로가 이런 천재적인 로봇을 만들지 않았다면 어떻게 복수할 작정이었던 거지? 등등..

     

    극장에서 더빙판으로 애니메이션을 본 건 처음인데 상상해왔던 것과는 달리 성우들의 연기도 자연스러웠고, 자막이라는 시각 정보를 처리하지 않아도 되니 영화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아가들이 중간에 부스럭대고 울기도 하긴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재미가 또 쏠쏠했다. 어린애들이 공통적으로 재미있어하는 부분을 느낀다든가 하는 것. 베이맥스가 울랄라랄라~’할 때마다 애들이 자지러지는 걸 보면서 베이맥스도 관객 아가들도 귀엽더라는.

    그리고 나는 배터리가 떨어져서 술취한 것 같은 베이맥스가 되게 귀여웠는데(베이맥스의 절전 모드=취객모드? 잠꼬대모드?) 애들은 막상 이해를 잘 못했는지 반응이 약했다. 이런 나이차(?)를 발견하는 것도 흥미로웠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으로 꼽는 게 <드래곤 길들이기>인데, 훅훅 날아다니며 바람을 가르고 세상을 막 누비는 장면을 보면 넋을 잃고 좋아하곤 한다. 오금이 저릴 것 같기도 하면서 속이 뻥 뚫리는 영상의 느낌도 좋지만, 다른 존재와의 비행이란 건 신뢰와 교감을 수반하는 거라서. 그런 장면을 보면 나까지도 몹시 순수한 존재가 되는 기분이 든다. 이 영화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어서, 샌프란소쿄를 날아다니는 장면을 감상하면서 몹시 즐거웠다. 日色이 짙어서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나는 그 이야긴 이미 듣고 보았고 한때 일본어 공부도 일본 여행도 좋아했던 터라, 일본틱한 도시를 날아다니는 것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같이 이 영화를 보았던 친구에게,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니까 어때?” 라고 물었더니 .. 말도 안돼.”라는 공대생스러운 대답을 들었다. 나도 잠시 영화를 보면서 로봇과 인간이 저 정도로 교감할 수 있을까, 그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생각을 잠깐 하긴 했는데 베이맥스는 로봇이라기보다는 그냥 테디의 분신 같은 역할이다. 다른 공대생 친구들의 로봇은 엄청 빠른 바퀴, 레이저칼 같은 수준인데 베이맥스는 테디가 그걸 원할까요?’라는 철학적 질문부터 테디는 여기 있습니다하고 영상을 보여주는 엄청난 센스까지 갖추고 있다. 게다가 자신은 카오스로 사라지면서도 히로와 칼라한 딸을 살릴 방법을 생각해내는 판단 능력에, 그 와중에 자신의 칩을 함께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미친 순발력. 희생정신 또한 인간으로 치자면 매우 높은 수준의 정신활동이지만 일찍이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법칙이 있었으니 그냥 넘어가더라도 엄청난 지능이다. (과연 테디에게 흠이 있다면 이렇게 신적인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개죽음을 했다는 것뿐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테디는 죽어서 베이맥스를 남겨 동생이 시련을 극복하고 성장하게 하였으니... 영화 자체에서 베이맥스를 로봇 이상의 존재로 승격시켰으니 베이맥스와 히로가 인간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것이겠지.

     

    신기하게 영화를 볼 때에는 이 정도로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글을 쓰다보면 생각이 덧붙고 덧붙어 시간도 글의 길이도 이만큼이 되곤 한다. 정말 글과 생각의 관계는 신기하다. 생각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글이 아니라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생각을 더 깊게 만드는 것 같다. 이제 오늘 하루를 시작하러 가야겠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희진 강의  (0) 2015.04.23
    그림일기  (0) 2015.03.20
    황석영의 명단편 101선  (0) 2015.02.04
    창조는 여유에서 나오는 걸꺼야  (0) 2015.01.31
    나도 아이히만에게 속았나  (0) 2015.01.27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