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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반 인터넷 소설가, 이금이책읽기, 기록/아이들과 읽고 싶은 2011. 2. 27. 10:44
3월, 우리 반 학급 문고에 나도 책을 열권쯤은 넣어줘야겠는데, 어떤 책을 넣을까 하다가 추천글을 보고 <우리반 인터넷 소설가>라는 책을 같이 주문했다. 요즘 수준 이하의 청소년 소설이 많아서, 내가 읽어보지 않은 책을 주문하는 것이 조금 망설여졌지만 워낙 유명한 작가니까 믿을 만하겠거니 하고 주문했다. 처음엔 두께가 너무 얇아서 실망했는데 1시간 정도? 완전히 몰입해서 읽었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구성이었다. 학교에서 전통적인 5단 구성,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을 가르치다 보면 참 재미가 없다. 그게 기본이긴 하지만 내용을 잘 전달하고 재미있게 하기 위한 여러 구성 방법이 있지 않나, 이런 것도 좀 소개했으면 하는 바람이랄까. 어쩌면 요즘은 저런 전통적 5단 구성을 따르는 소설이 더 적지 않은가 싶다. 발단-전개-위기 요렇게 가다 보면 지루할 때가 많으니 말이다.
요새 학교에서 가르치는 또다른 재미없는 것으로 시점이 있다. 1인칭 주인공, 전지적 작가 시점 같은. 근데 실제로 ‘소나기’ 같은 소설만 보더라도 3인칭 관찰자의 시점이다가, 잠깐은 전지적 시점의 성격을 띠기도 하는 부분이 있고.. 하튼 교과서의 시점 이론은 고리짝 옛날 이론이고 요즘은 새로운 시점론도 많은데 이것 역시 아쉽다.
자꾸 문학이론교육의 불만으로 흘러가는데, 어쨌든 이 소설에서는 선생님의 책상 위의 놓인 의문의 이야기 뭉치가 10132, 10102.... 이런 수행평가 형식으로 각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게 합쳐져서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구성이 재미있었다. 이 소설에선 한 사람 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파고듦으로써 여러 사람의 눈으로 사건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봄이를 둘러싼 아이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탐구하는 것도 가능했다. (아이들아 구성의 중요성이란 이런 것이란다 -_-... 아..) 그리고 누가 쓴 것인지, 이게 소설인지 실화인지 궁금하게 하는 미스터리를 담고 있기 때문에 흡입력을 갖는 구성이었다.
외모에 대해서 이 소설에서 제기하는 방식이 참 교묘하다. 내 경험으로 비추어봐도 그렇고.. 그냥 뚱뚱하다는 이유만으로 왕따가 되지는 않는다. 봄이는 정말 완벽한 남자친구를 갖고 있다. 잘생기고, 공부도 어느 정도 하고, 마음도 따뜻한 데다가 예쁜 여자를 밝히지도 않고 바람도 안 피운다.(뚱뚱한 봄이가 아니라 누구의 남자친구라도 질투를 받고도 남을 것이다) 왜 서하가 꼭 잘생겨야만 하나, 잘생긴 사람의 선택을 받아야만 부럽고 완벽한 연애인가 하는 불만을 잠시 갖기도 했지만 그건 잠깐 접어두기로 했다. 서하가 등장한 이유는 아이들의 완벽한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니까.
봄이가 왕따가 된 이유는 바로 아이들의 질투 때문이다. ‘내가 저렇게 뚱뚱한 쟤보다 뭐가 못 나서!’라는 생각이 봄이의 말을 믿지 않게 하고 질투를 폭력적으로 풀게 된 것이다. 내가 소설을 읽고 재미있어서 친구에게, ‘고등학교 때 우리 반에 이런 애가 있었는데..’ 하면서 봄이의 얘기를 내 친구 이야기인 것처럼 해줬더니 듣는 내내 코웃음을 치면서 “뻥이지?” “근데 그게 다 뻥이었지?”를 연발하는 것이었다. 그게 뻥이 아니면 사람들은 견디지를 못한다, 꼭 어떻게든 깎아내려야 만족하고 안도한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갖고 있는 관념, 못생기면, 뚱뚱하면 못난 사람이라는 뿌리 깊은 의식과 ‘사촌이 땅 사면 배아픈’ 심리를 건드리는 것 같다.
그리고 봄이의 소설(혹은 보고서) 밖에는 선생님의 미칠 것 같은 사생활이 있다. 나보다 못생겼으니까 매력도 없을 것 같았던 친구, 그 친구가 내 약혼자를 빼앗고 이제 그와 결혼하겠다고 하며 선생님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선생님 역시 못생긴 사람은 매력없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에 상처받고 만 것이다. 외모가 좀 떨어지는 그 친구와, 완벽한 남자친구를 가지고 있지만 뚱뚱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연애담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봄이는 어쩌면 대응되는 사람들이 아닐까.
*글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일단 올려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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