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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받는 존재는 순하다-영화 <사도>
    일상 2015. 9. 26. 11:25

    * 영화 <사도> 감상 - 스포가 있을 수도 있는데 뭐 이 영화에 스포랄 것이 있나. 하긴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다는 걸 스포라고 하는 사람도 있더라'라고 유머사이트에 돌아다니는 것은 보았다.


    우리집 고양이 나래는 이사오기 전 동물병원에서도, 이곳 동물병원에서도 계속 칭찬을 받는다.

    "아이고, 고양이가 사랑을 많이 받아서 참 순하네요"

    사랑을 충분히 받은 생명은 그악스럽게 자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필요가 없다. 순하다. (그래서 나도 순하다 ㅋㅋ)


    사도를 보면서, 동물병원에서 들은 저 말이 생각났다. 

    영조는 (역사상 기록으로도 그렇지만) 콤플렉스에 똘똘 뭉쳐서 아들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드라마틱하다. 자기 아내에게 사약을 내리는 아버지 밑에서 얼마나 숨죽여 살아야 했을까. 그것도 무수리의 아들이니 정말 조선 질서에서 설움도 많이 겪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나주 괘서며 이인좌의 난이 있었으니 또 얼마나 불안하고 위협적이었을까. 그런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송강호가 참 잘 보여주어서 좋았다. 

    툭하면 왕 안 하겠다고 하면서 세자를 괴롭히질 않나, 별로 잘못된 말도 아닌데 사도에게 부정타라고 귀를 씻고 난 물을 확 뿌리고, 숙종 묘에 가다 말고 너는 갈 자격도 없다고 화를 내는 이런 쪼잔한 정신병자 같은 모습..... 너무 생생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수렴청정을 시켜놓고 조정 대신들 앞에서 "네가 뭘 알아?"라고 면박 주는 모양새를 보면 진짜 내가 사도라도 미쳐버릴 것 같다.


    송강호는 너무 생생해서 이입이 되고, 유아인은 내 스타일로 (잘) 생겨서 저절로 공감하게 된다. 시원시원하게 국정을 처리하려 했던 사도는 그렇게 조금씩 꺾여 가고, 대비가 죽으면서 완전히 엇나간 아들이 되어버리고 만다. 예법과 아버지의 등쌀에 숨막혀 죽어가는 안타까운 유아인. 영화를 보면서는 뭔가 "예법으로 옭아매는 꼰대들 때문에 사도가 죽어가는구나"라고 많이 생각했던 것 같은데 지금 왜 그렇게 느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술을 끊어야겠다. 


    영조가 영화 마지막에 사도 죽을 때쯤 되니까 "너 잘 되라고 그랬다"는 고백이 뒤섞여서 약간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는데........ 내가 보기엔 결국은 아들의 정치적 행보를 받아들이는 것도, 아들이 자기 생각과 조금만 어긋나게 행동하는 것도 불안해서 받아들이지 못했던 영조가 사도를 죽였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고, 그래도 나중에 가서는 저렇게 후회를 했겠구나 하고 이해는 된다.


    충분히 사랑받은 세손은 어여쁘게 자라 소지섭이 된다. 역시 예법이고 뭐고를 떠나 사랑을 받아야한다.

    마지막에 약간 결말 부분에서 구성이 처지는 감이 있었는데 소지섭이 기왕 나왔으니 분량을 뽑아주려고 그랬나.


    내가 평소에 영화를 챙겨서 보거나 굉장히 보고 싶어하는 편은 아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사람들 다 봤다는 '도둑들' '암살' 다 안 봤다) '사도'를 보고 싶었던 이유도 딱 2가지였는데 첫번째는 우연의 일치가 신기해서였다. 한중록을 공부하고 난 바로 다음날, 어찌저찌하다 수원 화성을 가게 되었다. 묘하게 연결. 그런데 그 다음날 지하철역에서 <사도> 광고를 하는 거였다. 뭔가 봐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번째 이유는 문근영!+_+ 귀엽고 똘똘하고 문근영이 선택하는 작품들이 맘에 들 때가 많았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딱히 개성이 부각되는 캐릭터가 아니어서 아쉬웠다. 딱 한중록에 나오는 행동과 말 몇 가지만 하는데...  이제 사도세자 얘기는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많이 써먹었으니 혜경궁 홍씨의 시선으로 본 영화 정도 나와도 괜찮겠단 생각이 든다.  정치적 목적으로 남편을 내버려둔 여인일 수도 있고, 정말 한중록에서 쓴 것처럼 서러운 사람일 수도 있고 이것도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을텐데 말이다.


    그나저나 안타까운 이야기다. 이렇게 400년이 지나고 나서 나 따위가 공감해준대도 죽은 사람만 슬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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