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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예방 정책토론회 준비중학교에서 하루하루 2018. 11. 22. 22:48
3월에 흡연예방교육 예산이 내려왔다. 부장님은 어차피 방송교육 해봤자 애들 열심히 듣지도 않고, 강사 불러서 금연캠프 열어서 흡연 학생들 데려다 놓고 간식 먹여봤자 그냥 걔네한테 햄버거를 먹일 뿐이지 크게 효과도 없으니 새로운 걸 해보자고 하셨다. 그래서 나온 빅픽처가 금연 서포터즈, 그리고 멘토링처럼 서포터즈들과 흡연자들이 짝을 맺어 금연을 달성하도록 관리하는 1대1 결연 프로그램이었다. 그땐 의미있어 보였고 흡연예방사업 진행하고 동아리 하나 운영하는데 그토록 많은 시간과 노동이 들어갈 줄 몰랐더랬지. 다시 4월로 돌아간다면 절대 "네"라고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후회하는 게 있다면 10월초에 학생중심 흡연예방 토론회에 신청한 것이다. 이것도 부장님이 애들 데리고 한번 나가보지 않겠느냐고 툭 던지셨고, 꽤 적극적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애들 두 명이 있기에 그애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서 5명 팀을 만들었다.
다시 10월초로 돌아간다면 이 공문을 들이미는 부장님의 말을 못 들은 척할 것이다. 아예 9월로 가서 미리 헤드폰을 사놓을 것이다!
정책토론회 신청을 위해 지금까지 금연 서포터즈에서 활동한 내용을 보고서로 구성할 때만 해도 아주 조금 귀찮았다. 금연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흡연자가 줄었다고 자신있게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흡연예방과 금연이라는 대의를 갖고 여러가지 활동을 했다. 금연캠페인도 하고(이때 아이들이 제작한 미니 현수막이 아주 예뻤다. 홍보물 예쁘게 만들기에 몹시 집착하는 지도교사의 자기만족에 큰 도움이 됐다.), 각 교실에 직접 들어가서 흡연실태조사도 하고, 통계도 냈다.(아무도 솔직하게 답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었다.) 13만원을 주고 강사를 부르는 대신, 자신이나 친구의 생생한 금연 경험, 금연 서포터즈에서 할 활동 홍보 등을 서포터즈 학생들이 직접 방송으로 진행하는 흡연예방교육을 구성했다.(여전히 방송교육은 아무도 집중해서 듣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실망했다. 친구가 앞에 나와서 말하는 데도 듣지 않다니..) 1대1 결연을 통해 흡연 수치를 측정하는 활동은 반응이 꽤 좋았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신청했지만 대부분 꾸준히 수치를 측정하는 것을 (아마도 일부러) 잊거나, 폐활량이 부족해서 의미있는 수치 자체가 나오지 않거나, 수치가 오히려 올라가기도 했다. 두 명만 험난한 과정을 거쳐 상품을 받게 되었다. 담배를 끊는 게 어른에게도 그리도 어려운 일인데, 한 명이라도 금연에 성공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두 명 다 상품을 받은 후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잠깐이라도 그들이 담배를 줄이는 경험을 했다는 데에 의의를 둘 것인가, 요요현상의 허망함에 대해 고찰할 것인가?) 어쨌든 몇 달 간 꽤 자주 모여서 활동했기에 보고서를 쓰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서포터즈 애들이나 지도교사(=나ㅋㅋㅋ)나 너무 솔직하다는 것이다. 내일 우리 가서 대체 무슨 얘기하지?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우리가 얻은 결론은 '담배를 끊을 생각이 없는 학생들을 어찌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떤 정책을 건의할까 토의 연습을 하다 보면 무슨 저주 받은 미로를 걷는 것처럼 저 결론으로 돌아왔다. 솔직히 다 그렇지 않나? 담배건 술이건 커피건 공부건 다이어트건, 스스로 의지를 갖고 움직이지 않는 사람에게 건강을 위해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해봤자 사이만 나빠진다.
나는 '어떻게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게 되는가'에 대한 생생한 얘기를 듣는 게 백만 배 더 재미있었다. 정책입안자도 이런 이야기를 꼼꼼하게 듣고 질적 분석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일 것 같다.
정말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도 있긴 있다. 하지만 보통은 흡연자인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담배를 권유 받고 피우게 된다. 심지어 우리 금연 서포터즈 단장에게도, 지금도 친구들이 담배를 권한다고 한다. 어떻게 거절하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담배를 처음 한두 번 피웠을 때의 느낌이 너무 싫어서 애들이 아무리 얘기해도 거절한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듣고 이 녀석, 꽤나 친구 관계에서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아이인가 싶었다. 또래 집단에서 이렇게 담배를 권하는 분위기일 때, 자기 중심이 약해서 '세 보이고' 싶거나, 담배를 피워야 '잘 나가는 애'로 보인다고 생각하는 아이라면 냉큼 담배를 피우겠지. 생각해보니 내 친구들이 모조리 흡연자라면, 나 혼자 담배를 안 피우는 게 민망해서 나도 그냥 흡연자가 되어버렸을 것 같아!
팬돌이도 무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배를 피웠다고 말해서 나를 충격에 빠뜨린 일이 있었다. 동기는, 구멍가게집 아들인 친구가 담배를 가져왔기 때문이란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애들이 다 피우니까 거절하기 힘들었던 거야?'라고 아주 생선(선생)냄새가 폴폴 나는 질문을 했다. 팬돌이는 아예 나의 사고 메커니즘에서 벗어나는 대답을 했다.
"아니, 아예 거절할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왜 피웠어? 담배 피우면 기분이 좋아지거나 뭐 그래?"
"그냥 걔가 갖고 오니까 피운 거지."
"그럼 어떻게 끊은 거야?"
"걔랑 다른 중학교에 들어갔어."
"그게 끝이야?"
"그럼."
'그냥'이라는 강력한 이 동기를 대체 어떻게 다룰 것인가?'학교에서 하루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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