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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 개학을 앞두고 일어난 일들
    학교에서 하루하루 2020. 4. 23. 05:32

    D-7

    3월 말, 자율적으로 원격 교육을 제공하라는 말에 교사들이 EBS 온라인 클래스를 개설하고 강의를 몇 개 올려 두긴 했다. 원격 수업을 할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학습 공백이 있는 1주일 동안 자료를 제공하라고 해서 한 주 정도 공부 분량의 ebs 강의를 끌어왔을 뿐이다. 

    교육청에서는 '원칙적으로 교사 수만큼의 ebs 온라인 클래스가 개설되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태가 사태인지라 무엇이든 급하게 이루어졌다. 오늘까지 온라인 클래스 개설해야 된대, 주말 내에 홈페이지에 뭐 올려야 된대, 이런 식. 하지만 막상 아이들을 가입시키려고 안내하다 보니 숙고하지 않은 채로 급하게 교사들 각자 온라인 클래스를 개설해 둔 게 후회스럽긴 했다. 

    고등학교 시간표는 복잡하다. 성적표에 찍히는 '영어'는 한 과목이지만 영어A와 영어B가 있다. 각각 다른 선생님이 들어오고, A선생님은 A선생님의 진도를 나가고, B 선생님은 B선생님의 진도를 나간다. 아이들에게는 두 과목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관습적으로 그렇게들 하고 있다. (아이들이 한 선생님을 일주일에 4시간씩 만나면 지겨우니까, 라는 말도 있지만 주로 시수 배분 때문이다.)

    문제는 아이들이 찾아서 가입해야 할 클래스도 늘어난다는 점이다.  A선생님은 A선생님대로 클래스를 개설하고, B선생님은 B선생님의 클래스를 개설했으니까. 그리고 같은 영어A여도 1반 애들이 가입하는 영어A온라인 클래스와, 10반 아이들이 가입해야 할 영어A 온라인 클래스가 다르니까 그것대로 애들이 헷갈리지 않을까 싶었다. 

    보니까 2학년 국어샘들은 이미 있던 클래스를 없애고 <국어>로 클래스를 통합한 뒤 교사 여럿이 관리자 권한을 갖고 자기 담당반 애들을 체크하기로 했단다. 그런데 3학년은 온라인 개학 뉴스가 나오자마자 이미 가입 안내를 적극적으로 한 발빠른 샘들도 있고, 온라인수업 자율운영 기간에 알아서 막 가입한 아이들도 있어서 일단 1교사 1클래스를 유지하기로 했다. 그래서 내 클래스도 결국 국어A(1~5반) 클래스가 됐다.


    처음엔 아이들에게 교과서 있는 과목 온라인클래스를 다 찾아서 신청해라~ 라고 했더니, 무슨 과목을 신청해야 하는지 잘 모르기도 하고, 담임 선생님 클래스만 신청해놓고 끝났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저렇게 문자를 정리해서 보내줬다. EBS 온라인 클래스에서 우리학교 찾고, 우리 반 애들이 들어야 하는지 다 찾아내는 것도 정성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보내줬으니 애들이 저 링크 클릭해서 신청만 하면 되겠지? 역시 나는 친절한 담임이야^^라고 이때까진 생각했더랬지..... 

    D-5

    애들이 귀찮아서 가입을 안 하나? 매일 담임이 이런저런 안내 단체 문자 보내는 게 공해같이 느껴질까봐 왠지 미안하게 느껴지고. (그치만 보냈다.) 주말이라 가입 독촉 연락을 하기도 민망했지만, 급하니까, 부모님들께 온라인 클래스 가입 지도해 달라고 문자만 보냈다. 

    D-4

    어제 분명히 가입 안 하면 전화로 독촉하겠다고 으름장 놓긴 했지만, 일요일 오후인데 애들한테 전화걸어서 왜 가입 안하냐고 잔소리하기가 좀 망설여진다. 담임반 클래스와 국어반 클래스를 가입한 애들은 9/19명. 일단 가입 안 한 아이들에게 얼른 하라고 문자를 보냈다. 

    오늘 밤 9시부터 ebs가 서버 점검 들어가니까 얼른얼른 해 두라고 했는데, 밤 10시에 저 안 들어가지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전화가 왔다.

    D-3

    어제 문자 보낸 아이들 중 추가로 EBS 온라인 클래스 가입한 애는 단 1명이다.
    아침 9시에 서버 점검 끝난 걸 확인하고, 앞번호부터 가입하지 않은 애에게 전화하기 시작.

    1
    거의 모든 아이들의 답변 : "아, 쌤, 까먹었어요. 가입할게요."
    하지만  "응, 그래, 빨리 가입해~" 하고 끊을 거면 내가 전화를 하지도 않았지!

    주로 이렇게 전개됐다. 
    -그럼 지금 컴퓨터 켜봐. ebs 아이디는 있어? 다행이네. 

    그럼 ebs 온라인클래스에서 로그인해봐. 아니 거기서 끝이 아니야!(다급) 

    샘이 클래스 주소 다 정리해서 보내준 거 있지? 그거 하나하나 클릭해서 가입하는 거야. 일단 우리반 클래스 들어가봐. 오른쪽 위에 [클래스 가입] 버튼 있지? 눌러봐.
    (...)
    오케이 지금 선생님이 승인했어. 다른 과목도 다 이런 식으로 하면 되니까, 모든 클래스 다 가입해.

    2
    조금 더 많은 아이들의 답변 : "쌤, 저 가입했는데 선생님들이 승인을 안 해주신 것 같아요."

    (확인 후)
    -음 아니야. 너 가입 안 했어. 샘이랑 같이 해볼까? 지금 컴퓨터 켤 수 있어? 

    그래그래. ebs 온라인 클래스 로그인해봐. 그리고 샘이 클래스 주소 정리해서 보내준 거 있지? 없어? 

    샘이 목요일에 단체문자 보낸 거 있잖아. 그거 찾아봐. 응 그걸로 하나하나 클릭해서 가입하는 거야. 일단 우리반 클래스부터 가입해볼까? 우리반 클래스 들어왔어? 3학년 *반이라고 제목에 씌어 있는 거. 맞아. 거기 오른쪽 위에 보면 클래스 가입이라고 있지?
    (...)
    없다고? 아니, 왼쪽 위에는 '3학년 *반 학급'이라는 제목이 있잖아. 그리고 옆으로 쭉쭉쭉 오면 '클래스 가입'이라고 씌어 있잖아.
    (...)
    응, 너 들어왔어. 이런 식으로 모든 과목 가입하는 거야. 지금 접속한 김에 다 가입해보자. 

    3
    아이들도 나도 멘붕 온 수많은 경우 중 하나 : (앞의 대화는 같음) 샘, 클래스 가입 버튼이 진짜 없는데요?
    -너가 샘이랑 같은 화면을 보고 있는 게 아닌 것 같아. 혹시 지금 보이는 화면 사진 찍어서 보여줄 수 있어?
    (온라인 클래스 찾기 화면임)
    -여기 말고 샘이 보내준 주소로 들어가봐.
    -샘, 없는 주소라고 떠요.
    -그럴 리가 있나. 

     복사+붙여넣기 해보니 진짜 없는 주소라고 뜸. EBS측에서 월요일 10시 30분 전후에 갑자기 클래스 url을 다 변경함.

     -야, 지금 ebs 온라인 클래스 주소가 다 바뀌었나봐. 잠깐 기다려봐. (끊음)

    가운데 주소가 oc39에서 hoc21로 바뀜. 서버작업 하다가 그런 것 같기도 한데 그럼 공지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당황해서 애들한테 주소 바뀌었다고 전체 문자를 다급하게 보냄. 진짜 이때부터 얼굴에 열이 화끈화끈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아이들에게 가입해야 할 온라인 클래스 주소를 수합해서 공지하는 것이 좋다는 3학년 담임들의 말에 교무부에서도 그렇게 정리해서 홈페이지에 공지를 띄운 상황이어서, 교무기획 샘한테도 '샘, ebs 온라인 클래스 주소 바뀌었으니깐 한번 보세요!' 하고 카톡 하나 날려드리고 다시 전화를 검.

    -샘이 바뀐 주소 보내줬으니까 그걸로 들어가보자.
    -아 모르겠어?(뭘 모르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음) 그럼 그냥 온라인클래스 찾기로 해보자. 지금 너가 보인다는 화면에서 큰 글씨로 써져있는 [온라인클래스 찾기] 들어가봐. 거기서 서울시 선택하고 **구 선택하고, 그다음에 고등학교. 

    (...)
    뭐, 고등학교가 없다고? 특수학교랑 초등학교밖에 안 뜬다고?
    (나도 다른 창을 띄워서 해 보니 그렇게 뜸. 진짜 돌아버림.)
    지금 카톡으로 샘이 보내준 url 그냥 복사해서 붙여넣기 해봐.
    -샘, 보안 어쩌고 막 이런 메시지가 뜨면서 안돼요.(아이 목소리도 진짜 울 것 같아짐)
    (나도 다른 창을 띄워서 해 보니 그렇게 뜸. 나도 울고 싶어짐)
    -그럼 일단 있어봐. (애가 사파리 어쩌고 하길래) 아이패드야? 아 맥북. 혹시 맥북이라서 안되나? 그런 말은 아직 못 들었는데.. 지금 서버도 불안정한 것 같으니까 샘이 조금 있다가 전화할게.

    4
    그 와중에 샘, 바뀐 주소로 다시 가입해야 하나요? 란 문자가 몇 개 와서 안해도 된다고 답장해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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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몇몇 경우 중 하나 :  (앞의 대화는 같음) 샘, 클래스 가입 버튼이 안 보이는데요?

    -그럼 뭐가 보여? 샘도 지금 너랑 같은 창 띄워놓고 하는 건데..
    -아 쌤, 저 폰이에요.
    -(급하게 휴대폰 꺼내봄) 그럼 거기 줄 세 개 있는데 눌러서 클래스 가입 버튼 눌러봐.
    -아 쌤 너무 오래 걸려요. (한숨) 이거 꼭 가입해야 돼요? 저 나중에 할게요.
    -너가 지난 주부터 나중에 한다고 해서 샘이 지금 전화한거야. 내일 모의 테스트 한다고 했잖아.
    -샘 내일 저희 원격으로 시험보는 거예요? (-_-!!!!!!!!!!!!!!!!!!!!!!!!!!!)
    -원격 수업이 잘 돌아가는지 테스트해보는 거야.
    -그럼 테스트니까 꼭 안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 내일 안 들어가면 결석이에요?
    -지금도 너가 이렇게 가입도 잘 안 되는데, 내일 실제 수업처럼 해봐야 정식 개학 했을 때 너가 무단결석 안 하고 수업 들을 수 있는 거지. 

    속터진다.. 얼굴 맞대고 있는 거면 한바가지 갈굼의 말을 해줄텐데 친절하게 어르고 달래줘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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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또 몇몇 경우 : (앞의 대화는 모두 같음)
    -아 쌤, 알겠어요. 가입할게요.
    -응 이런 식으로 전과목 가입해~


    (가입 안함. 교과 선생님들에게 가입 안했다고 메시지 계속 옴. 온라인 개학날까지 계속 옴. 전화하면 했다고&하겠다고 함. 그런데 내 클래스가 아니니까 확인은 안되고 걍 교과샘들이 계속 얘 가입안했다고 메시지 보내심)


    오후에 사파리로 접속하던 애가 가입 다 했다고 연락하면서, '선생님도 수고 많으시네요' 한 줄을 보냈다. 이 와중에 선생님 마음 챙겨주는 애가 다 있네, 눈물이 왈칵 날 뻔했다. 

    담임선생님들도 다같이 정신없고, 교과선생님들도 계속 '쌤 반 n명밖에 가입 안했어요.' '쌤 반 누구누구 가입 안했어요.' 가입 독촉 연락만 바쁘게 오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교육부는 온라인 개학 준비 하고 있었다고 언론 플레이나 하고 있고, (그들이 생각하는 준비란 뭘까?) 댓글창은 교사 월급 깎아라~~~~ 이러고 있고, 지역 카페에선 사정도 모르면서 '저희 애는 신청했는데 교사들이 게을러서 승인을 안해주네요.'란 글에 댓글 우수수 달리고. 글 쓸 시간에 애가 제대로 신청했는지 살펴달라고요. 

    D-1

    처음에는 온라인 수업의 시간표에 대해서, '블록수업을 권장한다'는 지침과 예시가 왔다. 온라인이라면 반별로 똑같은 수업을 여러 번 할 이유가 없지.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한다면 모든 학년이 같은 시간표로 가는 게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고3 중3 온라인 개학 하루 전 오후(!) 학급별 시간표를 권장한다는 공문이 왔다. 

    부다 앞으로 내가 직장 생활을 이어나가는 동안 이런 급박한 공문은 오지 않기를 빈다. 내일 오전 8시부터 당장 아이들이 온라인 클래스에 들어오는데, 오늘 오후에 시간표를 다 갈아엎으라니요. 개학 연기 자체를 상상하지 못하던 시절에 교무부에서 짜 둔 시간표가 있기에 망정이지만, 자꾸 급박하게 뭘 바꾼다는 것 자체가 너무 스트레스다.

    지금은 기사에도 여러 번 언급이 됐지만, 

    [일단 기사를 흘림→ 여론의 반응을 살펴봄 → (며칠 후) 보도자료를 뿌림 → 교사들도 기사로 확인 → 이틀쯤 후에야 공문 시행]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교육부의 일 처리에 대한 화가 난다. 예전에 S전자 가전 쪽 사업부 다니는 친구가 "가끔 TV 같은 거, 제품보다 광고가 먼저 나올 때가 있어. 우리는 아직 그 기술 개발 중인데 광고를 해버리는 거지."라고 했을 때 그냥 어이없다며 웃어넘겼는데, 이런 기분일까.

    뭔가 실제로 시행하고 아이들과 맞부딪치는 사람은 나인데, 왕따당하는 기분이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인데 그걸 남 일처럼 신문에서 확인한다. '아, 이제 내가 이런 걸 해야 하는구나.'라고. 막상 공문이나 시행 지침이 오지 않으니 아무 것도 못하고 있다가 급하게 공문이 오면 그때부터 착수하고, 한참 하고 있다보면 바꾸라고 공문이 또 오고. 


    아이들에게는 최종 확인을 위해, 내가 가입한 클래스가 16개인지 확인해 보고, 확인 문자를 보낸 사람들에게는 개학 후에 간식을 쏘겠다고 했다. 애들이 하도 답장을 안 하니까 이런 식으로 상품 건 게 많아서 이젠 나도 헷갈린다. 언제 한번 날잡고 반 애들 문자를 쭉 뒤져야 할 듯. 


    처음에는 교과선생님들이 담임선생님에게 'O반 OO이 가입 안 했어요.'라고 개별적으로 연락을 했다. 그런 애들은 보통 며칠째 가입을 안 하기 때문에 담임들도 계속해서 각종 교과샘들에게 지속적으로 메세지를 받는 탓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마지막 순간까지 교과샘에게 가입 안 했다고 연락이 오고 → 애한테 전화하면 아 지금 할게요, 라고 하고 → 다음 날 또 교과샘에게 가입 좀 시켜달라고 연락이 오고 → 애한테 전화하면 안 받고 → 문자 보내면 가입한다는 답장이 오고 → 학부모에게 전화하면 애한테 전달하겠다고 하고 → 다음 날 얘 아직도 가입 안 했다고 연락이 오고 → 급기야는 서너 명은 내가 애한테 ID, 비번을 받아서 확인하고 가입시켰다. 

    그런데 저 두 가지가 다 작동하지 않는다면?

    학생도 자기가 모든 클래스를 가입했는지 확인하지 않는다면? (실제로 자기가 모두 가입했는지 확인하고 질문이나 답장을 한 아이들은 19명 중 6명뿐이었다)

    교과 선생님이 담당 학급 학생들이 모두 클래스에 가입했는지 확인하지 않는다면?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 대해 불만을 품는 것에 대해 가벼운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교과샘들이 원망스러운 순간들이 왔다. 일단, 온라인 클래스를 느즈막히 개설한 선생님. 애들한테 공지를 시작한 건 지난 주 목요일부터인데, 이번 주 들어서 온라인 클래스를 만드니까 빼먹고 가입 안 한 애들이 많았다. 
    애들이 가입 안 했다는 걸 개학 전날, 정확히 퇴근 시간에 맞춰서 알려주신 분도 있었다. 교과샘들이 담임에게 개별 연락을 하는 게 비효율적이고 실제로 확인도 잘 되지 않으니 학교에선 개학 전날(이 되어서야) 전교사가 공유하는 구글 폼을 만들었다. 이게 늦게 만들어진 것에 대한 불만은 없다. 우리 모두 처음 겪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개학 전날 오후 2시까지, 가입하지 않은 학생 수와 명단을 업로드해주기로 했으면 그 시간에 해 주셔야 담임이 연락을 하죠. 

    개학 전날 퇴근 시간 직전에 가입 안 한 학생 수만 띡(그동안 확인을 안 하셔서 가입 빼먹은 애들이 각 반마다 비교적 많았다) 올려놓으면 어쩌라는 거지. 그것도 다른 담임샘이 "어, 이거 뭐야, oo수업 가입 안 한 애들 지금 업데이트됐는데 우리 반 14명이야!!!! 어떡해!! 그리고 누가 가입 안 했는지도 안쓰셨어!" 라고 하셔서 그제서야 나도 확인을 했다. 결국 일주일 내내 애들 가입 시키느라 안달하고 애쓴 건 담임들뿐인 건가. 하 정말 같은 학교에서 일하는 분이니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솔직히 교과샘들은 여유롭게 수업 고민하시는데 나는 애들이랑 이 씨름을 하고 있는 게.....빡쳤다고요..

    D+14

    당연한 일이지만 처음에는 애들이 또 우왕좌왕했다. 빼먹고 안 들은 수업도 많고, 출석체크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못 찾고, 교과 선생님 연락처를 모르니까 또 담임샘한테 연락하고. 커뮤니케이션은 만나서 해야한다는 걸 절감했다. 얼굴 보고 오감을 동원해서 소통하면 10초만에 끝날 일인데, 이거 보여? 저거 안 보여? 그거 눌러봐? 등등 전화로만 하려니 답답하고 문자로는 더더욱 이해 못하고. 여럿이 같이 있으면 옆에 있는 친구들 보면서 '야 이거 이렇게 하는 거 맞아?' 하고 저들끼리 해결될 수도 있는 일인데 집에서 혼자 하려니 그것대로 또 어렵겠지. 

    콜센터 직원처럼 2주를 보내니 이제 조금은 나도 포기하는 것들이 생겼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말로만 할게요, 하고 끝까지 수업 안 듣는 애들은 미인정결과 처리 해야지 뭐. 3학년은 실시간 쌍방향 수업이 거의 없다. 씻지도 않아도 되고 밥 먹으면서도 들을 수 있고, 졸면서 듣는지, 집중을 하는지 마는지 혼내는 사람도 없는데 대체 왜 결석처리 되는 거야? 이런 건 꼭 챙겨야지! 하고 안타까워하고 발 동동 구르면서 전화해봤자 안 하고 버티는 인간을 어찌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행동은 똑같은데 마음을 내려놓으니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것이 신기하다. 여전히 매일 오전 오후로 전화하고 문자하고 부모님 연락하지만, 안되면 할 수 없지, 남이 내 뜻대로 안 되는 걸 어떻게 할 수는 없지. 이걸 아직도, 아직도, 아직도, 당해봐야지만 깨닫는 작은 나. 

    3월 모의고사 점수가 수능 점수라는데, 3월 모의고사 점수 자체가 없는 올해 고3. 내일은 처음으로 집에서 모의고사를 본다. 

    금요일에 문제지 나눠주고 나면 그날은 좀 차분하게 일할 수 있을 거라는 행복 회로를 돌리고 있지만 내 머리 따위론 예상 못한 일들이 또 벌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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