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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도 궁금했다. 수련회에 안 가는 건 처음인데, 출근한 선생님들은 무엇을 할까?
그러면서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일단 매일 정상출근해있을 거니까 밀린 일들은 다 그때 해야지!
그래서 교육통계 업무파악도 한참 미뤄두었고, 3월초부터 하루살이처럼 준비해나가던 수업도 3일간 다 준비해두리라 마음먹었다.
어쩌다보니 5반을 다른 선생님과 나누어 맡게 되었고, 내가 뒷부분부터 진도를 나가겠다고 했더니 수업 부담이 두 배가 되었다. 다음부턴 그냥 내가 수업을 더 하더라도 한 반을 갈라서 맡는 건 힘든 것 같다. 1-4반은 1단원 수업하는데 5반만 3단원 수업하고 있자니 나도 헷갈리고 애들도 헷갈리고.
그래서 3월 첫날부터 수업 준비에 대해선 계속 부담이 있었기 때문에, 1-4반과 수업할 고전소설, 5반과 수업할 문법, 1-4반에서 수행평가로도 할 독서활동을 모두 완벽히 준비해둬야지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니 그냥 이건 나의 습관이다. 바라는 것도 참 많다. =_= 그리고 '계획은 꼭 지켜야 해!' 하고 독하게 이악물고 해내는 성격이 못 되기 때문에 그냥 다 지나고 나서 아쉬워한다.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논 건 아닌데 어쩌다 이렇게 어영부영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뭐했는지 메모해둔 걸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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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 첫날
8:15~25 업무포털 살펴보기, 오늘 할 일 정리하기
8:32~9:03 높임표현 수업 준비(쪽지시험지 제작, 자료 찾기)
~9:10 2학년 수련회 배웅
9:13~25 수업준비
***교무보조쌤과 수다.
10:07~10:45 수업준비 (훑어보기, 학습 요소 추출)
10:48~11:09 전국국어교사모임 원고 관련 메일 작성
11:14~11:30 교육통계 작업
11:30~1:00 점심+커피타임
~1:25 책목록 만들기
1:30~40 딴짓. ㅋㅋ
~1:45 책목록 완성
~3:00 교육통계(교원현황 1차 완성)
3:10~3:35 독서수업 계획
~4:20 교육통계(집중력은 떨어짐.)
중간에 빈 시간 동안은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스트레칭을 하거나, 다른 선생님과 대화를 하거나, 차를 마셨던 것 같다.
시간을 보니 수업준비를 대략 2시간 10분 정도, 교육통계 업무를 2시간 반 정도 했구나.
둘째날
8:27~8:38 업무포털, 업무 계획
8:42~56 교육통계 입력
10:42~11:55 교육통계 입력
~1:11 독서목록 정비
이날은 핸드폰도 고치고, 은행업무도 보고, 집안에 일도 있고 해서 조퇴한 날.
조퇴하기 전까지 행정일은 1시간 20분, 수업 준비도 약 1시간 20분 정도 한 것 같다. 독서 수업 준비하면서 책목록을 정리하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구나.
셋째날
이날은 잔류학생 지도를 맡은 날이어서, 애들 책 읽는 것도 구경하고 나도 책도 읽으면서 있다가, 오후엔 다른 샘들과 출장을 나갔다.
금요일이라는 핑계로 집에서도 일은 1도 안함. 그리고 전날 진짜 퇴근하고 나서 엄청 많은 일들을 해서 정말 피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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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수업 준비하면서 다른 선생님들 자료도 읽고, 연수도 들으면서 정말 성실하고 근면한 사람이 뭔가를 이룬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런데 나는 아니다. 수업 모임에서 읽기로 한 책을 다 못 읽었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다 읽고 정리해오는 사람이 있고, 그냥 반쯤 읽고 와서 적당히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항상 후자였다. 엄청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기를 좀 극도로 밀어붙이는 사람이 성공하고 뭘 많이 이루는 것 같은데 나는 항상 그런 사람처럼 되고 싶긴 했다. 이 나이 먹어서야 슬슬 '고치려고 해도 나는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걸 이성적으로는 받아들이지만 여전히 부러워하고 산다.
최근에 어느 책에선가
'오이디푸스는 과연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신탁대로 이루어진 것인가? 아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에 정말 최선을 다 했고 그 결과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것이었다. 가만히 앉아있었으면 오히려 그 운명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면 오이디푸스의 이 결과는 운명적인 것인가, 아니면 그가 주체적으로 행동한 결과인가? 그러니까 오이디푸스는 반쯤만 운명론적인 것이다.'
라고 하는 이야기를 읽었다.
나도 최선을 다해서 뭔가를 한다 해도 아마 이 성격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완벽을 추구하면서 사는 사람들에게 '스트레스 받을 텐데 좀 대충 해'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들이 그리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내 성격에도 뭔가 가치가 있겠지. 나는 내가 바꿀 수 없는 환경과 성격을 갖고 태어났고 이건 반쯤 운명적이란 걸 받아들이고 반쯤 행동하며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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