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수업, 해결해야 할 것들

새로운 게 보이면 무작정 해보고 싶을 때가 가끔 있다. '온라인 개학'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에도, 먼저 이런 생각을 했다.

-안 그래도 컨텐츠가 생기면 유튜브 개설해 보고 싶었는데 잘됐다
-그래도 내가 교사치곤 영상 편집은 좀 하는 편이지.
-수업 준비하는 시간이 10배쯤 늘어날 것 같은데?! 근무로 확실히 인정해주면 좋겠네.
-이 기회에 트위치를 한번 가입해볼까?(이 플랫폼 자체는 궁금했는데, 딱히 관심있는 방송이 없어서 가입할 이유가 없었음)
-PPT를 그냥 녹화하는 게 제일 쉽겠지? 근데 유튜브는 얼굴을 까야 재밌는데 어떡하지?!
-얼굴은 까고 싶은데 내가 말실수 한 게 평생 돌아다니다 신상 털리면?
-아무리 생각해도 선생님 얼굴이 보여야 수업이 효과적일 것 같아!
-학부모랑 학원에서 내 강의 보고 평가질한다고 생각하면 좀 싫은데?
-실시간 수업 하려면 핸드폰으론 부족할 거  같은데 내 돈으로 캠이랑 마이크를 사야 하는 거야?!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나 진짜 생각없다ㅋㅋㅋㅋ 이건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는 교사가 아니라 무슨 유*브 채널 개설하려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 같은 마인드 같아서 좀 부끄러움.

  한데 당장 온라인 개학을 한다고 생각하니 약간은 공무원 마인드가 되어서 생각하게 되는 부분들이 생겼다.

  -온라인 수업 기간을 수업일수로 인정할 수 있는가? 그럼 출결 처리는?
   수업 시간에 10분 이상 지각한 경우 결과처리된다. 그럼 온라인 수업도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까? 아침 8시에 조회해서 학급 구성원 중 캠 켜고 참여 안하는 아이가 있으면 지각, 수업 시간 중에 캠 안 켜고 10분 이상 늦으면 결과? 중간에 캠 끄고 자면 조퇴? 그런데 서버 환경이 불안정하다면? 결국 집에서 관리하는 건데 이걸로 출결 처리를 하는 게 맞는 걸까?

 -수업은 all 강의식으로? 과정중심평가와 세부능력및특기사항은요?
  이건 내가 이번에 고3을 맡아서 딱히 고민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어차피 수능특강으로 수업할 거니까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되면 그냥 강의식으로 하면 되지. 고3은 그걸 더 좋아할 것도 같고.

  하지만 2019교육과정을 생각해 볼 때, 고3이 아닌 모든 학년은?

  학생들이 하고 있는 활동을 피드백하기 어렵다. 끽해야 발표 정도 시킬 수 있고, 애들한테 뭐 한 줄이라도 쓰라고 하고 교실 돌아다니면서 체크해주고 이런 거랑은 비교가 안 되잖아. 이게 15년 전 교실이면 상관이 없는데.. 과정중심평가 하라면서요? 그리고 올해부터 ""전교생""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써 주라면서요? 오프라인 개학 한 다음에 이 모든 걸 몰아서?!

-3남매가 있으면 어떻게 하지
 대학생들은 태블릿, 노트북 있는 경우가 많을 것 같긴 한데.. 요즘 대부분의 집들에 전자기기가 얼마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집에 중학생 두 명, 고등학생 한 명이 있다면 그들 각각이 온라인 수업을 들으려면... 일단 스마트폰이 있다지만 스마트폰을 두고 하루 종일 수업 듣는 거 힘들 것 같은데. 이건 내가 나이들어서 그런 걸까? 유튜브도 꼭 TV로 보고, 카톡도 집에선 꼭 컴퓨터 켜고 해야지 안 그러면 답답해 죽겠던데. 

-1교시부터 7교시까지 온라인 수업에 집중하기
  어제 수박 연수가 온라인으로 4시간 진행되는 걸 보면서 느낀 건데, 강당에 모여있었어도 물론 힘들었겠지만, 집에서 화면 보면서 집중하는 거 진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8시부터 4시까지 온라인.. 쉽지 않네.

 

온라인 수업을 하기 싫다는 투정이 아니다. 동영상 만드는 거 좋아한다니까요.

그렇지만 실제로 성적과 연결되거나 교육의 효율성을 생각해 볼 때 걱정되는 지점들이 있다는 거. 다음 주에 공문이나 지침이 내려오면 시키는 대로 할 거긴 한데, 일단 저런 부분들을 신경써서 디자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예상 못한 문제가 또 있을 듯한데 그때 또 추가해 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