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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찾기 활동학교에서 하루하루/공립에서 수업하기 2015. 7. 28. 06:31
여러 선생님들이 어휘 학습을 갖가지 방법으로 하는데,
지난 학기엔 그냥 아주 고전적인 방법으로..
아이들이 모를 만한 단어가 많은 글을 읽기 전에,
어려운(내가 보기엔 아이들이 모를 것 같은) 단어들을 죽 나열하고,
그 단어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도록 하였다.
나의 원래 의도는 그러면서 아이들이 글도 한 번 훑어보도록 하는 것인데, 사전을 찾으면서 글을 읽게 되진 않는 것 같다. 마치 소리 내어 글을 읽으면 글보다는 발성에도 신경쓰게 되어 글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사전 찾기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한 가지 신기한 건 이 활동을 할 때에는 손 놓고 있는 애들이 거의 없다. 평소에 쓰기 활동을 시키면 멍-하니 있던 애들도, 어쨌든 글씨를 알면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이니 한 시간 동안 계속 꼬물꼬물 참여를 한다. 이걸 보면서 흥미가 떨어져서건, 능력이 떨어져서건 활동에 잘 참여 안 하는 아이들에게도 엄.청. 쉬.운. 활동을 주면 했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반성을 했다.
그리고 올해엔 사전 찾기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애들이 몇 나왔다. 그 페이지를 펴고 있으면서도 못 찾거나, 자모음의 순서 개념이 너무 흐릿하거나. 또 '샘 이거 그냥 네이버에 치면 다 나오는데 꼭 찾아야돼요?' 하는 말도 (예상했던 바와 같이) 서너 번 들었다.
사실은 그래서 나도 좀 내가 시대착오적인가..하는 생각을 했다. 나조차도 고등학교 때, 종이 사전을 찾는 게 더 어휘력에 좋다고 해서 종이 사전을 썼고, 일본어도 그래서 일한 사전 한일 사전 한자읽기 사전까지 썼지만.. 고3 때 사물함에 자리도 없고 급해졌을 땐 그냥 전자 사전을 썼다. 그리고 지금 단어를 찾아봐야 할 일이 생기면 그냥 표준국어대사전 사이트에 접속해서 찾는다. (그나마 나는 전공자니까라는 부심으로 네이버는 아님.)사전도 그렇고, 문법적으로 논란이 있을 것 같은 내용을 찾아볼 때에도 '우리말 문법론'을 펴는 대신 그냥 국립국어원 사이트에서 검색한다.
게다가 교과교실제가 잘 되어서 정말 아메리칸 스타일로 '내 교실'이 있다면 사전을 비치해둘 텐데, 도서관에서 매번 사전을 빌리고 나르는 것도 참 일이었다. 나의 수업에서 자주 발생하는 일들, '정말 이 활동 괜찮은 걸까?'하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청년기를 맞았을 때였다. 아버지께서 좀처럼 이용하지 않던 서재에서 나는 또다른 발견을 경험했다. 그때 나는 육중하게 생긴 에스파사-칼페라는 스페인어 대백과 사전에서 어떻게든 섹스와 관련되는 것으로 상상되는 항목들을 찾기 시작했다. '마스터베이스', '페니스', '질', '매독', '매춘' 등... 아버지께서는 사무실이 아닌 집에서 누군가를 만날 필요가 있을 때에만 서재를 드나드셨기 때문에 항상 서재는 내 차지였다.
내가 열두 살인가 열세 살때의 일이다. 커다란 안락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임질의 무시무시한 부작용에 대한 항목에 푹 빠져 있는데, 아버지께서 서재로 들어와 자기 책상 앞에 앉는 것이 아닌가. 한동안 나는 아버지께서 내가 무슨 항목을 읽고 있는지 눈치채지나 않았을까, 극도의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그렇지만 그때 나는 그 누구도-심지어 겨우 몇 발짝 떨어진 곳에 계신 아버지까지도- 나의 독서 공간에는 침범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내가 손에 잡고 있는 책에서 어떤 외설스런 표현을 읽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과, 나 자신의 의지 외에는 그 어느 것도 그런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작은 기적은 나 자신에게만 알려진 하나의 암묵적인 기적이었다.
-알베르토 망구엘, 『독서의 역사』 23p.
그러다가 남자애들이 막 낄낄거리면서 "야! 이 단어 뜻이 소의 자지래" "우왕 몇 쪽이야?" 이러고 놀 때에야 아, 이래서 사전을 찾는 거였지 하고 안심했다. 내가 원래 찾으려고 했던 단어가 아닌 것들을 눈으로 쓸고 가면서 생기는 일들. 그리고 알베르토 망구엘 같은 세계적인 작가도 느껴봤던 즐거움을 아이들도 공유하는 것. 한동안은 사전을 수업시간에 더 써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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