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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튼, 커피
    일상 2020. 4. 29. 05:40

    쓰다보니 '아무튼' 시리즈와 비슷한 느낌의 글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나중에 '아무튼 커피' 책이 나오면 어떡하지? 그때 가서 제목을 바꿔야 하나? 아무도 신경쓰지 않으려나?


    가벼운 죄책감을 갖고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쯤이다. 가벼운 죄책감이 든 건, 커피를 마시면 키가 안 큰다는 얘기를 들었던 탓이다. 시험을 보고 나서 집에 오면 너무 졸렸고, 예나 지금이나 미리미리 공부하는 부지런한 성정은 되지 못했기에 잠을 쫓아주는 아이템 정도로 커피를 대했다. 실제로 잠이 줄어든 것 같지는 않다.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나는 9시에 자서 7시에 잠드는 어마어마한 수면 시간을 가진 아이였다. 그리고 커피 맛도 몰랐다. 그때야 뭐 믹스커피밖에 없었지. 커피 믹스를 컵에 붓고 물을 한 잔 가득 부으니 맛있을 리 없었는데, 물을 딱 100미리 부었다고 해도 쓰다고 싫어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에도 커피를 야자 시간을 버티게 해 주는 에너지 부스터로 여겼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선 전교생이 밤 10시 반까지 야자를 했는데, 나는 계속 너무 졸렸다. 저녁 먹고 나서 일단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 뽑아서 교실로 갔다. 지금은 편의점 선반 하나를 가득 메우는 컵커피들도 그땐 많지 않았다. 더구나 매점이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교문 앞 슈퍼에서 삼각 비닐에 담긴 커피 우유를 사먹은 적도 있지만 주로 본관 건물 현관에 있는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 

    고등학생일 때 커피를 마셔서 잠이 안 온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보통 저녁 식사 이후부터 9시쯤까지 잠이 쏟아졌다. 이제 공부 좀 되는 것 같은데? 하고 시계를 보면 저녁 9시 반쯤인데 책이 눈에 들어올 때쯤이면 집에 갈 시간이었다. 다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엔, 지겨워서 자판기 커피를 못 먹게 됐다. 

    고등학교 다니는 내내 학교에만 갇혀 있어서 몰랐던 걸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카페가 많지는 않았다. 뭔가 어른의 소비에 익숙한 듯한 친구의 손에 이끌려 스타벅스에 처음 가봤다. 주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라서 친구 따라서 '아이스 화이트 초콜렛 모카'를 시켰다. 스무 살까지 한동안 스벅에서는 그 메뉴만 먹었다. 그래봤자 몇 번 가보지도 않았지만.

    본격적으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건 대학 입학 이후이다. 미성년일 땐 단맛으로 커피를 먹었다면,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맛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다른 게 섞이지 않은 커피를 좋아하게 됐다. 수업을 들으러 가려면 지하철역에서 내려 경영대를 지나는데, 경영별관 1층의 카페에서는 1000원 남짓한 돈으로  커피를 내려줬다. 커피를 마시면 확실히 잠이 덜 오긴 했다. 그리고 많이 마시면 심장이 발딱발딱 뛰었던 기억도 있다. 지금만큼 카페인에 민감한 것은 아니지만, 아주 무뎠던 것은 아니다. 온몸의 피에서 카페인이 도는 그 들뜬 느낌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커피의 맛에는 빠져들어서 점점 진한 맛을 좋아하게 됐다. 그즈음 초콜릿 향에도 빠져서 함량 90% 넘는 초콜릿도 막 사다 먹고 그랬다. 급기야 에스프레소까지 사먹게 되는데..! 예나 지금이나 나는 그 무엇에도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라 엄청나게 맛을 따져서 먹은 건 아닌데 학교 근처 카페마다 에스프레소는 어떤지 비교하고 다녔다. 지하철역에서 최단 거리에 있는 카페 이디야. 하지만 거기 에스프레소가 아주 맛있진 않아서, 크림이 얹힌 에스프레소 콘파냐를 시켜서 단숨에 카페인 충전을 하고 아침 수업을 듣곤 했다.

    수험 생활 하면서는 커피를 마셨던가 말았던가 잘 기억이 안 난다. 분명히 마시긴 마셨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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