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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도스토예프스키
당신의 하루 일과를 될 수 있는 한 자세히 빠짐없이 편지에 써서 보내 주세요. 주변엔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그들과 지내기는 괜찮으신지 말이에요. 전 정말 모든 게 너무 궁금하답니다. 이 감정이 사랑이 아니란 말인가? 가난한 중년 남자 제부쉬낀과 그의 건너편 하숙집에서 사는 (똑같이 가난한) 젊은 여인 바르바라, 두 사람 다 편지를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써달라 조른다. 분명히 남녀 간의 사랑 맞는 것 같은데, 제부쉬낀이 계속 자기는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거라고 우겨서 처음에 좀 헷갈렸음. 1800년대에 이런 서간체 소설을 쓸 수 있었던 도스토예프스키가 대단하게 느껴질 뿐이다. 편지를 통해서 두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깊어지는지, 각자 혹은 함께 어떤 사건을 겪는지 조금씩 밝혀지는 구성 덕분에 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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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NOBRA 석달 구독기
* 1월에 연재 끝났는데 이제야 쓴다. 난 정말...정말.... 게으른가봐 ** 초반 TMI와 주접은 그냥 지나가세요. 올해 J고 연예인 옆자리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옷장을 열면 똑같은 H라인 스커트가 딱 다섯 개 있고, 여름엔 블라우스 서너 개, 겨울엔 니트 몇 개 또 색깔별로 돌려입는 나와는 아주 대조적인 분이다. 샛노란 머리에 키치하달까 스포티하달까 매번 자기 스타일이 확고한 패션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S쌤. 근데 함께 지내보니 몇년만에 한번 만나는 친척할머니마냥 매일 주변 사람들 챙겨주느라 정신이 없으시다. 같은 조직에 있는 사람들 누구 하나 서운할까봐 섬세하게 챙기는 따수운 모습에 감동도 많이 받았다. 원래 연예인 오빠를 좋아할 때도 갭모에(국순화: 반전매력ㅋㅋㅋㅋㅋㅋㅋ)를 발견하게 되면 끝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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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일/오은x재수/창비교육
이건 시집이라기보단 그림책 같은데?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했던 생각이다. 아니나 다를까, 앞표지를 그제서야 보니 '그림시집'이라고 떡하니 쓰여있었지. 시의 삽화이기를 넘어서서, 만화의 매체적 성격을 충분히 살려서 시와 만화가 어우러지는 것이 정말 좋았다. 오은 시인이 좋아서 서평단 응모를 했지만, 만화가 재수님에게 반해서 나온 책. 프롤로그도 진짜 압권이다. 스포가 될까봐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그림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그 대담함. 맞아, 책을 읽는 게 이런 거였지, 하고 마음을 확 울리는 데가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 획일적인 학교에서 느끼는 답답함, 꿈, 희망, 막막함, 첫사랑, 성장에 대한 자각 등등. 청소년들이 공감할 만한 주제들로 가득차 있다. 쓰고 보니 좀 그렇네.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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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그림 엄마, 한지혜
'선생님도 엄마 있어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요즘 애들이 많이 하는 패드립이 아니라, 아이들이 여기기에 '교사'는 NPC여서다. 교사다움을 갖추고 교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 그래서 교사가 인간적 결함이나 감정을 드러낼 때 그렇게 욕을 먹는 게 아닐까. 그래도 '엄마'라는 존재에는 비할 바가 못된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분명한 표상이 있고, 다른 정체성은 모두 그 역할에 가려지는 이 강력한 역할. 『물 그림 엄마』에는 다양한 엄마와 자식들이 등장한다. 엄마라는 이름에만 묻혀 납작해지지 않은 사람들. 첫 작품, 부터 엄마 캐릭터의 의외성이 재미있다. 그 힘으로 이 소설집을 끝까지 읽게 됐지 싶다. 자식들을 돌보는 사람이기보다 항상 '자식들이 돌봐야 하는 사람'이었던 엄마는 말한다. '나는 니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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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엄기호, 김성우/따비
우리나라 중고생들의 70%만 맞췄다는 읽기 문제가 있다. 여러분도 한번 풀어보세요. 아라이 노리코, 『대학에 가는 AI vs. 교과서를 못 읽는 아이들』, 해냄, SBS 일본에서 명문대 입학을 목표로 개발한 인공지능 '도로보군'의 읽기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문제다. 일본에서는 중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의 약 30%가 표층적인 독해조차 하지 못한다고 하여 이슈가 되었다. SBS에서 라는 다큐를 제작하면서 우리나라 중학생들에게도 실험을 했는데, 틀린 아이들은 질문을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문장 뜻을 그대로 이해하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저런 문제도 틀리다니 진짜 너무하다? 요즘 아이들은 유튜브만 보느라 책을 읽지 않는다? 스마트폰의 짧은 문장에만 익숙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