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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NOBRA 석달 구독기일상 2021. 2. 9. 15:22
* 1월에 연재 끝났는데 이제야 쓴다. 난 정말...정말.... 게으른가봐
** 초반 TMI와 주접은 그냥 지나가세요.
올해 J고 연예인 옆자리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옷장을 열면 똑같은 H라인 스커트가 딱 다섯 개 있고, 여름엔 블라우스 서너 개, 겨울엔 니트 몇 개 또 색깔별로 돌려입는 나와는 아주 대조적인 분이다. 샛노란 머리에 키치하달까 스포티하달까 매번 자기 스타일이 확고한 패션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S쌤. 근데 함께 지내보니 몇년만에 한번 만나는 친척할머니마냥 매일 주변 사람들 챙겨주느라 정신이 없으시다. 같은 조직에 있는 사람들 누구 하나 서운할까봐 섬세하게 챙기는 따수운 모습에 감동도 많이 받았다.
원래 연예인 오빠를 좋아할 때도 갭모에(국순화: 반전매력ㅋㅋㅋㅋㅋㅋㅋ)를 발견하게 되면 끝장이라는 걸 아는지. 카리스마 있는 우리 오빠가 갑자기 순둥하고 귀여워보인다? 삐빅 당신은 그분에게 빠지셨습니다. 금사빠인 나는 겉으론 톡톡 튀고 안으로도 자신만의 감수성을 간직하고 있지만 또 주변 사람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S쌤 팬클럽이 됐고 그분이 글쓰기 모임을 한다는 것도 멋있었고 일간 이슬아처럼 에세이 연재를 하신다는 말에 고민 없이 <웹진 노브라>를 결재했다.
그렇게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한 NOBRA 글과의 만남은 흡사 소개팅과 비슷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의 속내를 다 내어놓지 않듯, 처음 몇 글은 다소 심심하달까, 문장은 좋은데 이야기 자체는 익숙했다. 어쩌면 그런 이야기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었을지도, 필자들과 나의 관심사가 비슷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각종 SNS나 커뮤니티에서는 물론, 소설이나 영화에서, 웹툰에서- 여성의 서사는 드물지 않다. 결혼과 출산을 통해 여성이 겪는 사건과 감정, 그 과정에서 시가나 가족에게 느끼는 부당함이나 야속함,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는 어려움 등등. 29금 토크나 거울 놓고 자기 성기 바라보자는 얘기도 사실 대학 시절 어딘가에서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글 쓰는 언니들도 좀더 내밀한 자기 이야기를 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겪는 일들 사이에서 글 쓴 언니만의 경험과 감정이 느껴질 때면 메일에 별표를 누르고 중요메일함으로 옮겼다. 다른 사람의 일상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몇 꼭지가 있다. 먼저 공동체 아파트 이야기. 첫 글에서부터 같이 육아공동체를 꾸리다 나간 사람이 '지원받은 예산을 맘대로 쓴다. 다 회수하고 이런 사업은 취소하라'며 여기저기 민원을 넣고 다녔다는 사건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그런 상처를 겪고 다시 공동체아파트의 문을 두드려 다시 시작하는 과정이 궁금해서 이 언니가 쓰는 다음 글이 기다려지곤 했다. 때때로 기댈 수 있는 믿을 만한 이웃, 다른 데에선 느낄 수 없는 그곳에서만의 연대감 등 공동체의 열매는 달콤하고 아름답고, 거친 도시에서 한 줄기 희망이 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걸, 그만큼의 시간과 노동,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새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나라면 과감하게 그런 공동체 생활을 선택할 수 있으려나.
<오르가즘은 나의 것>도 나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가는 글이었다. 이제 29금도 볼 수 있는 나이인데 적극적으로 즐거움을 찾아가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단 걸 깨닫게 됨.
같은 맥락으로 인터뷰 글도 모두 재미있었다. 어느새부턴가 교육청 인문사회독서교육에서도 고등학교 과정에선 '사람책'이 주요 사업인데 왜 그런지 알것만 같다. 모범생으로만 살아본 내가 상상해보지 않은 시도를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신이 났다. 주간지 같은 데에서도 인터뷰 기사를 안 읽어본 건 아닌데.. 이 꼭지 필자분이 자연스럽게 질문하고 정리하는 내공이 있으신듯. 그리고 마지막에 수학스터디를 이끄는 언니 얘기는 진짜 충격 충격의 연속. 내가 이런저런 여성주의 공동체를 기웃거려봤지만 수학 공부한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여성이 수학을 못한다는 고정관념이 여성을 수학에서 멀어지게 만든다는 것도 익히 알려진 주장이건만 남녀를 불문하고 수포자가 가득한 이 세상에서 성인들이랑 수학공부를 한다니! 이 글 읽고나서 미적분의 세계가 궁금해졌다. 입시 얘기할 땐 '이과는 미적 선택해야지!' 하면서도 나는 대한민국의 몇 안되는 미적 안배운 세대라 그 개념이 어렴풋하기만 했더랬다. 우리집 공대남을 붙잡고 미적분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더니 자기가 아는 얘기 설명하느라 신나서 부부 사이가 좋아졌다는 뒷이야기.
마지막으로 아껴두고 읽은 건 여행이야기. 여행지에선 '아, 여기 나중에/다른 계절에 꼭 또 오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매번 안 가본 곳을 선택하고 탐욕스럽게 새로운 곳에 발자국을 찍어야 직성이 풀리는 나와 달리, 한 번 갔던 곳을 또 가고 또 가고, 같은 도시에서 새로운 풍경을 발견해오는 사람의 감성은 뭐가 다를까. 북트래블러 언니의 글 역시 초반엔 작가 소개의 비중이 높았지만 다섯번째 여섯번째 일곱번째 글로 갈수록 본인의 목소리가 느껴진다.
바퀴를 좋아하던 남자아이와 목소리 큰 외국인이 무서워 울음을 터뜨리던 여자아이와의 여행, 지금은 훌쩍 커버린. 시대의 한계에 눌려있던 여성 작가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하룻밤에 142번 깨는 아이를 돌보다 출근하던 생활의 버거움,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에서 용기를 낸 사자왕을 보면서 다르게 살아보겠다는 결심. 동화라고 하기엔 놀라울 정도로 서글펐던 파트라슈와 네로의 이야기에서 지금 기르는 강아지 뚱이까지.
여행이야기뿐 아니라 웹진 노브라의 모든 글이 내 주변에 있을 법하면서도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여인네들의 일상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메일을 열어볼 땐 주로 점심 먹고 난 오후, 조금 지쳐서 퇴근을 기다리게 될 때 즈음이었다. 누구와 수다를 떨고 싶지만 그것도 쉽지 않고, 세상의 다른 여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할 때. 때론 다른 사람의 일기장을 엿보는 것 같기도 하고, 꾸준히 잘 쓴 일상 블로그 하나를 구독하는 기분이었다. 빤한 일상에서 빤하지 않았던 생각과 경험을 집어내는 게 글쓰기라면 나도 좀 해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부디 이 언니들이 글쓰기 모임을 계속해서 좋은 모델을 보여주시길.'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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