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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엄기호, 김성우/따비
    책읽기, 기록 2020. 12. 15. 17:29

    우리나라 중고생들의 70%만 맞췄다는 읽기 문제가 있다. 여러분도 한번 풀어보세요.

     

     

    <출처> 아라이 노리코, 『대학에 가는 AI vs. 교과서를 못 읽는 아이들』, 해냄, SBS <난독시대> 

      일본에서 명문대 입학을 목표로 개발한 인공지능 '도로보군'의 읽기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문제다. 일본에서는 중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의 약 30%가 표층적인 독해조차 하지 못한다고 하여 이슈가 되었다. SBS에서 <난독시대>라는 다큐를 제작하면서 우리나라 중학생들에게도 실험을 했는데, 틀린 아이들은 질문을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문장 뜻을 그대로 이해하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저런 문제도 틀리다니 진짜 너무하다? 요즘 아이들은 유튜브만 보느라 책을 읽지 않는다? 스마트폰의 짧은 문장에만 익숙해져서 글을 꼼꼼히 읽지 않는다?  


      도서실 희망도서 목록에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를 써넣으면서, 내가 했던 생각도 비슷했다. '당연히 유튜브 시대에도 책이 필요하다는 얘기 하겠지? 그럼 쓸만한 부분을 뽑아서 내년에  독서 수업할 때 자료로 써먹어야지!' 예상했던 내용들도 있었지만 단순히 문자와 영상의 매체적 특징을 비교하는 것을 넘어서 '리터러시'의 관점에서 논의를 펼쳐나가는 것이 흥미롭다.
      리터러시litaracy는 문자를 읽고 쓸 줄 아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능력까지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법률가가 가져야 할 리터러시는 법률 문서를 제대로 이해하고 소장이나 판결문 같은 법률 문서를 써내고, 그것을 적절한 맥락에서 제시하고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저자들은 다양한 플랫폼과 매체가 발전하면서 우리 사회의 리터러시는 어떤 모양으로 변화하는지 살핀다.
      두세 살 아이들은 글은 못 읽어도 아이패드는 슥슥 손으로 다룰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음성 언어 다음으로 배우는 리터러시는 '동영상 리터러시'다. 삶에서 주로 영상 리터러시를 활용하는 10대들에게 교과서 텍스트를 던져주고 '왜 이것밖에 못 읽느냐'고 하는 것은, 공부할 시간을 반밖에 주지 않고 평가한 다음 비난하는 셈이다. 
      게다가 문해력 교육이 비교적 짧은 텍스트를 주고 그 안에서 의미나 문맥을 파악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어지면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텍스트를 그저 평가의 재료로 여기게 된다. 정답을 찾아야하는 학교 교육을 거치면서 강화된 태도일까. 인터넷에서 "너 난독이냐?"라는 댓글을 흔히 볼 수 있다. 비슷한 시리즈로 "국평오"(국민 수능 평균 5등급-무식하다고 누군가를 싸잡아 비난할 때 종종 쓰인다) 등이 있다. 
      이는 리터러시가 권력이기에 나올 수 있는 말이다. '내 방식대로' 읽어내지 않으면 리터러시가 떨어진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타인이 나와는 다른 태도와 배경지식을 가졌으리라는 고려는 없다. 텍스트 해석의 권위가 본인에게서 나온다는 어마어마한 주체성. 리터러시 교육은 사람을 줄세우면서 '글도 제대로 못 읽는 것들'로 상대를 깎아내리는 태도를 은밀히 키우고 있다.  
      반면 유튜브에서 아이들은 이것도 재밌겠네, 저것도 재밌겠네, 하고 계속 보면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하루가 '순삭'되는 것도 금방이다.

      다시 퀴즈로 돌아가보자. '어떤 텍스트로 평가할 것인가'는 권력의 문제다. 다큐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중학교 1학년. 우리나라에서는 친구나 연인들끼리 별명을 지어 부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이름은 3~4글자이기에 굳이 줄여부르지 않는다. 서양에서 애칭을 쓴다는 게 중학교 1학년에게 친숙한 상식이었을까? Alexandra를 Alex로 줄여 부르는 것처럼  서양에서 흔한 이름은 아예 애칭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애칭'이라는 단어를 읽었더라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아이들의 삶의 맥락에 더 닿아있는 문장이었더라도 이렇게 못 읽어냈을까? 

      저자가 둘 다 대학 강의를 하는 사람이어서인지, 정말 아이들이 많이 쓰는 말을 소재로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다.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뭐하러 책을 읽어요?" 이 질문은 학교에 있는 어른들이 더 많이 하기도 한다.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지금의 학교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어?" 하고. 
      정말 검색하면 다 나오는가? 6.25가 일어난 해가 언제인지는 나오겠지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건 단편적 지식뿐이 아니다. 지적 발달은 머릿속에 받아들인 지식들이 결합하고 내재화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여러 정보를 종합하거나, 기존의 경험과 지식을 새로운 지식과 버무리고 숙성한 후 필요한 맥락에 맞게 활용하는 것이 배움의 목표일 터. 그래서 저자는 리터러시 교육은 지식을 다루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소통하는 리터러시를 직접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이 책은 두 저자의 대담 형식으로 쓰였다. 사회학자와 응용언어학자의 밀도 있는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책을 많이 읽고 똑똑해지겠다는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일상에서 타인을 대하는 나의 말과 글을 가만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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