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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유럽 어슬렁 #4.5 먹은 것
    일상/여행지도 2014. 8. 15. 16:36
      지금은 야근과 격무에 시달리는 동행 JS님의 요청으로 기억을 더듬어 몇 개 더 써볼까 한다. 이미 분위기 잡고 마무리를 다 해 두어서.... 모임 후에 지하철역에서 "안녕히 가세요~" 인사 다 해놓고 같은 방향 지하철로 향하는 머쓱한 기분이지만 어쨌든 나도 최대한 기억날 때 써 두면 좋겠지. 다음 여행부턴 일기를 꼭 써야겠다. 가끔 카스나 텀블러에 툭툭 써 둔 걸 보면, '내가 이때 이런 생각을 했던가' 싶은 이야기가 더러 있다.

      사람들이 요즘 1박2일, 무도 등등 각종 재미있는 예능을 이야기해주지만 이상하게 나는 예능을 5분 이상 못 보겠다. 내가 왜 이걸 보고 있어야 되지? 하는.. 그래서 때론 내가 늙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일찍 자다 보니 드라마도 잘 안 본다. 영화는 그나마 가끔 보는 편인데, 지난 한 해쯤에는 돈을 조금이라도 더 아껴보겠다는 심산으로 혼자서, 그리고 능동적으로는 영화관에 안 갔다. 영화관에 가는 건 나랑 친한 사람과 함께 하려는 목적이 더 우선일 때에만...... 그러다보니 영화도 잘 안 봤다. 그나마 그림은 좀 봤다. 미술관도 역시 사회적인 목적으로만 갔는데, 그림은 책으로도 볼 수 있으니까. 그러다보니 수업 자료가 너무 빈곤해지는 느낌이라 남은 휴일 동안 문화 생활을 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저녁 같이 드실래요?'라는 웹툰을 봤다.



     이 웹툰이 일단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둘이 연애를 안 한다는 것이다. 혼자 사는 두 남녀가 우연히(너무 드라마틱하게. 만화 속에서만 있을 수 있는 방식으로-_-;) 만나 주말마다 저녁을 함께 먹는다. 어릴 때부터 내가 주장하던 것이지만 사람은 먹는 입이 열려야 말하는 입도 열리는 법이라.(그래서 애들을 일단 먹이고 봐야 한다.) 아마 두 사람은 계속 먹고 있으니 곧 마음도 열려 연애를 하긴 하겠지만, 그냥 두 남녀가 편안하게 친구처럼 지내는 관계가 좋아보였다. 그리고 먹는다는 행동이 사실은 생존을 위한 것이지만, 생존만을 위한 거라고 생각하면 또 약간 비참한 기분이 든다. 워낙 본능적인 활동이라, 맛있는 걸 챙겨먹을 때 행복해지는 것도 본능이지 싶다. 그리고 맛있는 걸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먹으면 식욕과 성욕이 동시에 충족되는 거니까 그만한 행복이 더 있으랴......... 해서, 아이템을 잘 잡은 만화라고 생각하면서 재미있게 보고 있다. 아마 성격상 한두 달에 한번씩 몰아볼 것 같지만.

      그러다보니 내가 유럽 나들이를 하면서 무엇을 먹었는지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누군가는 여행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 먹는 거라고 하던데, 나는 그 정돈 아니었지만 그래도 잘 먹고 다녔다. 


    라면
    원래 방사능 때문에 위험하다는 일본에서는 아무 것도 안 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밤에 배가 고파서 맥주를 한 캔 먹었고, 나름대로 합리화도 했다. 한국에서도 가끔 삿포로 캔을 사먹으니까 이건 쌤쌤일 거라고....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나리타 신사를 산책하고 오니 너무 배고픈 거였다. 그래서 그냥 잔돈도 털 겸 공항에서 라면을 사 먹었다. 
    어릴 땐 일본 라면은 너무 느끼해서 못 먹었는데, 지금은 나름 고소하다고 느끼게 되니 신기하다. 원래 나이들수록 기름진 걸 싫어하게 되는 거 아닌가? 고등학교 때도 크림파스타는 진짜 못 먹었는데 지금은 가끔 그걸 맛있게 먹을 때가 있으니 정말 입맛도 계발되는 건가보다.

    일식
      그리고 북유럽에 왔을 때 초반엔 정말 많이 굶고 다녔다. 물 한 병에 5,000원씩 하는 물가를 보니 감히 뭘 사먹기가 무서웠다. 코펜하겐에 온 첫날도 혼자선 뭘 챙겨먹은 게 없었고 사람들이랑 맥주 먹은 게 유일한 식사였다. 그리고 맛있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코펜하겐에 먼저 와 있던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여기서 사먹지 말라"는 말은 많이 해줬는데, 북유럽 음식으로 모모모를 챙겨먹으란 말은 별로 없었다. 무려 코펜하겐에서는 일식집을 갔다. 와가마마wagamama라고, 티볼리 공원 앞에 있는 음식점에서 돈부리와 라면을 먹었다. 나쁘지 않았지만, 아시안 촌년이 유럽에 와서 바로 옆 나라 음식을 먹고 있는 건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중에 들으니 일식이 맵지 않고 달달하고- 그 맛이 서양 사람들한테 잘 맞는 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코스로 만들어지면서 고급 요리로 분류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다른 나라를 다니면서도 일식집, 태국 음식, 중국음식을 파는 가게는 자주 보았다. 

      가끔 정신적/신체적 이유로 비정상적 폭식이 돋을 때를 제외하면 나는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도 지난 유럽 여행 땐, 프랑스에서는 빵이, 이탈리아에서는 피자랑 치아바타가 진짜진짜 맛있었다. 정말 프랑스에서는 충격적이었다. 빵을 싫어하는 내가 빵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니. 그래서 우리나라의 그 빵집 이름이 빠리***였구나, 하고 놀랐다. 근데 북유럽은 빵이 맛없다. 그런데 얘네는 잘 먹고 있는 걸 보면 음. 음. 음.

    만원의 (저렴한) 아침



     그렇게 굶고 다니다가 오덴세를 간 여행 셋째날엔 정말 참을 수가 없어서 맥도널드 모닝 세트를 시켰다. 스무디랑 맥머핀 시켰더니 우리 돈으로 만원. 게다가 아침이라서 할인 받은 가격이었다. 게다가 역시 우리나라의 빠른 서비스만 받다가 여행을 오니 맥도널드 음식도 왜이리 늦게 나오는지. 기다렸다가 기차역에 왔더니 9시 기차를 타야하는데 중앙역에 도착한 게 8시 57분, 기차를 타는 건 처음이라서 정말 어디로 가야 하는지 헤매면서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이른 시간이라 인포도 안 열었고, 나중엔 다급한 마음에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마구 물어보고 겨우 기차를 잘 찾아서 탔다. 그렇게 해서 오덴세 가는 기차에서 겨우 숨돌리고 먹은 나의 유럽에서의 첫 아침 식사. 

    나를 구원한 차이니즈 박스


    오덴세에서는 일요일이라 닫은 곳이 많아서 식사를 하기가 어려웠다. 큰 중국음식점이 하나 있었는데 자꾸 중국말로 나한테 들어오라고 해서 안 갔다. 근데 희한하게 나는 외국에 나와서 스타벅스나 맥도널드를 가는 게 참 억울하다. 그래서 일단 굶는 데까지 굶어보자 하고 커피를 사먹었고(예의 그 7.000원짜리 얼음 네 개 넣은 커피...). 오덴세의 웬만한 곳은 다 돌아보고 어딜 갈까 물어보려고 인포에 왔더니 일요일이라 2시에 문을 닫은 것이었다. 역시 선진국이다. 근데 평소에 동행이라도 있으면 좀 쉬면서 다닐텐데 오덴세는 혼자 와서 성격만큼 엄청 빡세게 하나도 안 쉬고 계속 걸어다녔더니 그때쯤엔 정말 내 스스로도 피곤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차이나 런치박스를 파는 가게! 아깐 닫혀있었는데 얘네는 또 일요일이라고 오후 3시에 오픈한 것이었다. 쉬고 싶어서 그냥 여기서 먹고 가겠다고 했더니 박스 말고 그릇에 이것저것 담아주었다. 스몰이 너무 작을 것 같아서 미디움으로 달랬는데 양이 너무 많았다. 이런 비싼 동네에서 음식을 남기고 나오니 내가 엄청 부자 된 기분이었다. 아, 그러고보니 차이나박스는 그렇게 비싸지 않았던 것도 같다. 적당히 아시안 입맛에 맞고, 가격 너무 비싸지 않고, 역시 중국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연어성애자



    그리고 여행 전체에서 연어를 정말 원없이 먹었다. 연어를 그냥 슈퍼에서 보면 어른 팔뚝 두 배만큼 잘라주고 3만원 안쪽으로 하는 것 같은데.. 물론 코스트코에서도 연어 좀 싸게 살 수 있지만.. 베르겐 어시장에서부터 연어를 먹기 시작했다. 여기서 정말 연어를 지금 잡아오는 것이 아닌가 싶게 음식이 늦게 나왔지만 정말 부드럽게 잘 구워줘서 맛있게 먹었다. 생일 전날의 만찬+_+이었다.
    그리고 게이랑에르에서도 레스토랑에 들어갔다가 연어를 냠냠 먹었다. 연어 스테이크를 시켰더니 종업원이 연어가 차갑게 나온다고, 괜찮으시냐고 물었다. 원래 너네는 연어를 차게 먹니? 물었더니 그렇다고 해서 그냥 차가운 연어 스테이크를 먹었다. 비싸고 맛있었다. (비싸서 맛있었다?)
    연어가 느끼한 생선인지라 한국에선 그렇게 많이 못 먹는데, (사실 느끼해서 못 먹을 정도로 많이 먹을 기회도 별로 없다) 이 동네에서 흔히 먹다보니 요리도 더 잘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연어회는 뷔페에서 많이 먹었다.



    바이킹라인에서 먹은 조식. 이 커다란 크루즈의 식사라고 하기엔 몹시 평범한 뷔페였다. 하지만 기름진 맛있는 것들은 다 저 이파리 아래 숨겨져있음. 상상하시라.


    KOSTAN MOLJA
    헬싱키에서 찾아간 뷔페. 여기 깜피역에서 걸어서 한 8-10분 정도 걸리는데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대신 서비스를 해 주는 시간이 길지 않다. 일요일과 월요일엔 영업을 안하고, 화요일-금요일은 디너만 5시부터 하는 등등. 여기에서 순록 고기, 미트볼을 처음 먹었다. 미트볼은 사실 우리가 먹는 미트볼과 똑같은데 생선이랑 고기 종류를 다양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고기에서 냄새가 안 난다. 나는 예민한 편은 아니지만 가끔 소 돼지도 냄새 나서 싫을 때가 있는데~ 주인 아저씨 요리 솜씨가 좋다는 게 느껴졌다. 엄청 친절하다. 사진을 찍었는데 어디다 뒀는지 잃어버려서 그냥 다른 블로그에서 퍼왔다. 그러고보니 이번 여행 때는 나름 추천받은 곳으로 다니려고 했다. 가이드북을 보거나, 유랑에서 추천글을 찾거나, 아니면 네이버에서 '헬싱키 맛집' 이렇게 검색하면 또 대단한 대한민국 블로거들이 막 올려둔 게 있다. 그래서 맛없는 음식을 비싸게 먹은 건 없는 것 같다.

    쨍-한 마지막 아침



    내가 유로를 마지막까지 탈탈 털어 먹은, 헬싱키 마지막 아침.
    (여기서 동전 다 털어서 먹고 나서, 나중에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쩌지 하고 엄청 긴장했다.)
    수오멘리나 섬에서, 와이파이도 되는 카페인데다 전망도 괜찮아서 커피를 사먹으려고 했는데 보니까 바나나 케익도 싸길래 아예 아침을 제대로 먹어버렸다. 커피는 0.5유로에 리필도 해줬는데 이게 대략 7-8,000원 되니까 이 정도면 서울 물가와 비슷한 것 같다. 다른 데를 다니다가 핀란드를 오니 물가가 되게 싸게 느껴져서 잘 먹고 다녔다. 공항 버스도, 시내버스는 5유로고 핀에어 버스는 6.3유로였는데 시내버스는 4-50분을 기다려야 하고 핀에어 버스는 바로 출발하는 거였다. 머리를 굴려보니 6.3유로면 우리 집앞에 오는 공항버스보다 싸길래, 그냥 핀에어 버스를 탔다. 한편으론 이 정도 임금에, 이 정도 복지를 제공하는 나라와, 최저임금이 5,000원대인 우리나라 물가가 비슷하다니 씁쓸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먹을 거 사진을 많이 찍고 다닌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별로 없다.
    '저녁 같이 드실래요?' 웹툰을 보면서 자꾸 내가 먹는 것을 찍게 되어, 오히려 요즘에 찍은 음식 사진이 더 많다. 그런데 여행 다니면서도 빵은 별로 안 먹었는데, 요즘 왜이리 빵은 쳐다보기도 싫은 건지 모르겠다. 밥밥밥. 저랑 같이 밥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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