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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에 대한 몇 가지 고민
    일상/여행지도 2014. 8. 15. 16:44

    아직도 눈을 감으면 골든 루트가 눈에 아른거려 가슴이 벅차다.

    근데 또 생각은 많아서 1주일이 되도록 시차 적응을 완벽하게 하지 못해 빌빌대면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고, 그냥 여행에 대한 이런 저런 고민이 있어서 마음에 닿는 글들을 업어왔다. 


    이 칼럼과, 요즘은 <보편적인 여행잡지>의 글을 조금씩 보고 있다.




    착한여행은 없다/박민영(경향신문)


    여행은 현대인이 추구하는 최고의 낭만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여행, 그것도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 한다. 이상적인 노년의 모습도 은퇴 후 ‘부부가 손잡고 여행이나 다니며 사는 것’이 된 지 오래다. 오늘날 여행은 하나의 종교이다. 여행은 세속적인 순례와 같다. 기념품은 성물이고, 여행안내서는 경전이다. 카카오톡이나 블로그에는 여행 다녀온 사진들이 훈장처럼 걸려 있다. TV에는 여행프로그램들이 넘쳐나고, 심각한 출판 불황에도 여행가들의 책들은 여전히 잘 팔린다. 그럼에도 여행에 대한 윤리적 담론은 잘 형성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담론은 지식인들이 주도한다. 그러나 지식인들 역시 여행 좋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들 중에는 기업이나 단체, 공공기관이 보내주는 공짜여행에 맛들인 사람도 많다. 해외연수, 출장, 세미나, 국제행사 등 이름은 다양하지만, 그 안에는 관광성격의 일정이 마련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행에 대한 윤리적 담론이 ‘등잔 밑’인 이유이다.


    여행이 인기인 데는 이유가 있다. 여행은 쾌락의 종합선물세트이다. 쇼핑, 레포츠, 공연, 술, 휴식, 음식, 자연, 에로스를 하나씩 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한꺼번에 즐길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여행이다. 산업화된 여행은 단기간에 최대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조직된다. 그것은 생기 없는 현실과 스트레스를 보상해준다. 근대 이전만 해도, 외국 여행에는 만만치 않은 고통과 위험이 따랐다. 도로, 숙소 같은 여행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지 않아 고생이 극심했을 뿐 아니라, 습격이나, 강탈, 기아, 질병으로 인한 사상자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여행 산업에 대한 국가의 지원으로 이런 위험과 공포가 없다. 향락과 축제의 연속만 있을 뿐이다.


    지금의 여행은 기본적으로 반생태적이다. 여행자는 많은 물, 전기, 석유, 일회용품을 소비하면서 다닌다.자동차, 항공기, 여객선 같은 이동수단도 대기오염에 치명적이다. 특히 등유, 휘발유, 산화방지제, 부식방지제, 미생물살균제 등이 혼합된 항공유는 하늘에서 직접 연소되기 때문에 온실효과를 극대화한다. 항공기 한 대는 자동차 수만 대의 배출량에 맞먹는 오염물질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여행객의 증가는 호텔, 식당, 골프장, 카지노, 항구, 공항, 도로, 유흥업소 같은 관광기반시설 증가를 요구한다. 이 역시 심각한 환경파괴를 초래한다.


    여행은 지역 고유의 풍토와 문화적 차이를 파괴한다. 여행은 외래종과 병원체를 유입시킨다. 유입된 외래종은 토착생물을 위협하고, 병원체들은 전파와 상호 유전자 교환의 기회를 갖게 된다. 전염병의 세계적 유행과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이 잦아질 수밖에 없다. 문화적 다양성은 여행의 조건이다. 그러나 여행 산업은 자신의 존재 조건인 문화적 다양성을 파괴한다. 어딜 가나 비슷비슷한 공항, 레스토랑, 쇼핑센터가 있고, 에어컨과 비디오가 설치된 호텔이 있다. 1년에 수십 번씩 대륙을 넘나드는 사람이라도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 감각이 무뎌진다. “세계 관광여행자는 농부보다 더 좁은 세계에서 산다”고 한 체스터턴의 말은 빈말이 아니게 되었다.


    여행은 폭력적이다. 어떤 지역이 관광지로 개발되면, 아름다운 자연은 기업이나 외지 투자자에 의해 사유화된다. 주인이었던 현지인들은 쫓겨나, 길거리 장사꾼 아니면 여행객들의 시중이나 드는 서비스 맨이나 매춘부로 전락한다. 그들의 생활이나 전통은 ‘문화적 구경거리’로 전시되고, 자급자족하며 살았던 사람들은 관광객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해 살게 된다. 관광객들은 점령군처럼 행세하고, 공동체가 와해된 현지인들은 자존감을 잃는다. 여행은 평등한 교류와 소통이 아니다. 자연환경과 현지인의 권리를 약탈하고 착취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요즘은 생태관광이나 공정여행이 유행이다. 그것은 일반적인 여행보다 덜 나쁜 여행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착한 여행이라 할 수는 없다. 여행이 산업이 되어버린 시대에 착한 여행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힐링이나 자기 내면과의 대화를 위해 여행을 떠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기 구원을 위해 타자와 자연에 보이지 않는 폭력을 휘두르는 꼴이다. 여행의 폭력성은 여행자의 태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여행가들 중에는 문화적이거나 진보적인 포즈를 취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여행 산업 자체가 야만적 토대 위에 구축되어 있는 한, 여행이 문화적이거나 진보적일 수는 없다. 오히려 가급적 해외여행을 자제하는 것이 문화적이고 진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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