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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고민 #2. 휴가여행은 필요한가?일상/여행지도 2014. 8. 15. 16:50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의 한 꼭지. 서양인들의 이런 유머감각 좋다.
원래는 나도 빌 브라이슨 같은 여행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나의 센스로는 도저히 그런 유머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적어도 꼰대같지 않은... 힘주지 않은 산문이라도 쓰고 싶었는데 그것도 역시 나는 아닌 것 같다.
소비적인 관광에 대해 많이많이 까는 글이다. 이 글을 읽고 나도 두 달치 월급(혹은 그 이상?ㅋㅋ)을 들여 여행을 가는 것에 대한 막대한 고민을 했더랬다. 어떤 여행이 의미있는가에 대해선 정말 생각해볼만한 것 같다.
휴가 여행은 필요한가?
이미 오래 전에 학문적인 연구 결과는 거의 모든 사람이 휴가 여행을 떠날 때보다 조금 더 아둔해져서 돌아온다고 증명했다. 정신적으로 깨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3주일 동안 휴가를 보낸 사람의 지능 지수는 여행을 떠나기 전보다 약 3퍼센트 낮은 것으로 입증되었다. 제트족들이 1년에 10번 휴가 여행을 떠났다고 치자. 그러면 도대체 그들의 지능 상태는 얼마나 열악하단 말인가. 그것은 휴가철이 지난 다음에 ―봄에는 카프리, 여름에는 포르토 체르보, 가을에는 마르벨라, 겨울에는 엥가딘― IQ의 30퍼센트까지 잃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낯선 나라로의 여행, 해변의 달콤한 삶, 호화 유람선 항해와 고급호텔, 수영장의 이국적인 음료수, 이런 비슷한 상투어들이 우리에게 발휘하는 터무니없는 매력은, 산업계가 우리의 의식 깊숙이 파고들어 여행 그 자체가 충분히 탐낼 만하거나 매혹적인 것이라고 잘못 유포시킨 결과이다.
<관광 여행>이라는 낱말은 ―이 낱말이 독일의 사전에 최초로 등장한 것은 1810년이다―처음부터 조롱의 대상이었다. 그러고 나서 30년이 채 지나지 않아, 폰타네가 불편한 심정을 토로한다. '너도나도 여행 다니는 것은 우리 시대의 특성들 가운데 하나이다. 과거에는 특별한 사람들만 여행을 다녔는데, 지금은 아무나 여행을 다닌다' 여행다니기가 <옛날에는 참 좋았다>는 이야기는 완전히 허풍이다. 허둥지둥 이리 달리고 저리 달리는 것은 과거에 파발꾼과 순례자, 범죄자, 노상 강도, 상인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었다. 그것은 결코 즐겁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위험했다. 모두 긴 여행을 앞두고 미사에 참석했으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사람처럼 작별 인사를 했다. 19세기 중반 근대 사회가 시작될 때까지, 적절한 이유 없이, 그러므로 오로지 여행을 위한 여행을 계획하는 것은 허무맹랑한 짓이었다.
오로지 여행을 위한 허무맹랑한 여행은 영국 부잣집의 하릴없는 셋째 아니면 다섯째 아들들의 발상이었다. 시민 계급은 상류층의 모험가들이 헐렁한 반바지 차림으로 고원 목장을 이리저리 기어오르고, 손에 안내서를 펴 들고 무너진 유적지를 배회하는 것을 보고 흉내내었다. 오늘날 관광 여행이라 불리는 것은, 겉으로는 고상해 보였지만 사실은 기괴했던 영국 속물들의 세계 일주 여행이 발전한 결과이다. 그러므로 옛날의 젠틀맨 체험을 모방하려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짓이다.
예를 들어, 하마들이 노니는 케냐 호숫가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수풀 한가운데에 <핀치 허턴 사냥 막사>가 있다. 그것은 영국의 슈퍼 속물 데니 핀치 허턴이 과거에 그곳에 지었다고 하는 사냥 야영지를 재현한 것이다. 페르시아 양탄자, 불룩한 크리스털 병 속의 보르도, 마호가니 탁자, 이 모든 것이 막사 안에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로버트 레드퍼드가 핀치 허턴 역을 맡아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재간꾼으로 등장하는 시드니 폴락의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와는 달리 현실에서 그 가련한 인간은 고상한 체하는 괴팍한 인물이었다. 루돌프 모스하머(독일의 디자이너. 화려한 외모와 기이한 언동으로 세상의 이목을 끌었으며, 2005년 의문스러운 상황에서 한 젊은 이라크 남자에게 살해당했다)가 아프리카에서 휴가를 보낸다고 한번 상상해 보라. 핀치 허턴은 틀림없이 케냐에서 그렇게 처신했을 것이다. 영국 식민주의 시대 말기에 그런 괴팍한 신사들은 수백 명씩 먼 이국을 떠돌아다녔다. 그것은 대영 제국의 전성기가 지나갔다는 믿을 만한 징후였다.
권태에 찌들고 사치에 물든 영국 속물들의 유별난 심심풀이는 그동안 전세계적으로 해마다 1천만 명의 관광객이 참여하는 대중 산업으로 발전했다. 관광객들은 해변의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며 멍청하게 건들거리고 뱃멀미에 시달린다. 또는 쉴새없이 시내 관광에 나서서, 결국 지쳐 쓰러질 때까지 관광 명소를 찾아 허둥지둥 달려가고 여기저기 탑에 오르고 시청을 구경한다. 중부 유럽의 복지 국가 국민들이 많은 돈을 지불하는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 휴가 여행만큼 많은 불쾌감을 맛보게 하는 것도 없다.
1년 내내 절약하다가 휴가라고 갑자기 돈을 흥청망청 뿌리고(드디어 휴가 여행을 떠나오지 않았는가!) 지갑이 가벼워지는 것에 비례하여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다고 화내는 것도 완전히 비이성적인 짓이다. 독일인들이 오스트리아나 이탈리아, 그리스나 스페인으로의 여행 중에 번번이 걸려드는 도박 신드롬은 다행히 유로의 도입을 통해 조금 저지되었지만, 관광객들을 위한 함정에 빠져서 태연하게 돈을 빼앗기는 것은 여전히 휴가 여행의 가장 인기있는 행사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집에서는 절대로 손도 대지 않을 질 낮은 포도주와 럼주 섞인 달콤한 음료수도 태연하게 마신다. 그러면서 호텔에 묵는 '사치'를 누린다고 즐거워한다.
호텔을 격조 높은 오아시스라고 선언하는 것도 오락 산업의 발상이다. 도시의 호텔은 숙박업의 역사에서 아주 오랫동안 주변에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경우를 위한 임시 숙소였다. 오늘날의 호텔은 정확하게 바로 그것이다. 고급 호텔이라는 게 설령 존재했다면, 그것은 처음 생겨난 1910년 무렵부터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짧은 기간에, 그러니까 4년 동안 격조 높은 것이었다. 그 당시에 고급 호텔들은 ―호화 유람선처럼― 센세이셔널한 혁신으로 여겨졌으며, 최고 상류층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1920년대 중반부터 1929년 세계 공황 사이에 호텔 문화는 한 번 더 꽃을 피웠다. 그러고나서 대형 고급 호텔의 시대는 영원히 막을 내렸다. 전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호텔 체인의 편의 시설은 완전히 획일화되어 있다. 볼프스부르크의 값비싼 호텔 방은 콸라룸푸르나 밴쿠버의 호텔 방과 조금도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카탈로그에 따르면 <초호화>급에 속하는데도 굼메르스바흐의 2인용 하숙방 못지않게 작다. 조그마한 텔레비전이 미니 바 위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미니 바에는 사과 주스와 오렌지 주스, 벡스 맥주, 미네랄워터, 짭짤한 스낵이 놓여 있다. 창문은 열리지 않는 대신 에어컨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아랍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호텔 전용 포르노 방송에 대한 안내문이 텔레비전 위에 놓여 있다.
관광 휴양지의 호텔들은 도시의 경우보다 훨씬 더 열악하다. 지옥의 모습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이탈리아 마을을 본따' 조성한 광장(잠깐, 하지만 우리는 샤름엘셰이크에 있다) 주변에 우연인 듯 항상 열려 있는 가게들과 '모든 것이 음식 값에 포함되어 있는' 여러 종류의 레스토랑 7개가 둘러서 있다. 휴양지에 머무르는 동안 아이들은 어린이 클럽과 소풍을 빌미 삼아 조직적으로 부모들과 격리된다. 주변 시설은 ―단체 소풍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울타리 밖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 대신에 호텔 경영진은 휴양 시설 안에서 이상적인 현실을 구현하려는 야심을 보인다.
그러나 현실 세계로부터 가장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는 곳은 호화 유람선이다. 호화 유람선 여행은 말하자면 클럽 휴가의 순수한 형태이다. 나는 ―휴가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언론인이라는 직업상 이유로―아직 빙산과 충돌하지 않은 초대형 호화 유람선 <코럴 프린세스>를 탄 적이 한 번 있다. 그 배의 총 등록 톤수는 약 12만 톤이다. 총 등록 톤수는 배의 크기를 가늠하는 도량 단위인데, 그것에 따라서 배에 실을 수 있는 디저트 양이 산출된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유람선 여행은 이상적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통적인 선상 활동, 즉 아침 식사와 점심 식사, 커피와 케이크, 저녁 식사와 한밤중의 만찬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사와 식사 사이의 비어있는 시간, 대략 20분은 힘들이지 않고 스낵으로 때울 수 있다. 이를 위해 하루 24시간 내내 <선상 바>의 뷔페가 준비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어림잡아 세계 칼로리 비축분의 3분의 2가 제공된다. 정말로 끔찍한 사태는 전부 승선료에 포함되어 있는 탓에 단 하나의 메뉴도 놓칠 수 없다는 것이다.
드디어 체중이 소형 자동차 무게에 버금갈 정도가 되면, 배가 항구에 입항한다. 그러나 항구에서 서너 시간 이상 머무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박료가 너무 비싸서, 추가로 1분 연장될 때마다 선박 회사의 정확하게 계산된 이득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곳 토착민 <특유의> 작업장을 서둘러 구경하기 위해 승객들은 이미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빽빽이 올라탄다. 그 작업장에서 파는 목공예품들은 희한하게도 자메이카나 타오르미나에서 파는 것들과 똑같아 보인다. 어쩌면 전부 홍콩이나 대만에서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대형 선박에는 미니 골프장과 수영장, 헬스클럽이 갖추어져 있지만, <선상 숍>이 항상 열려있는 탓에 거의 이용되지 않는다. 승객들은 선상 숍에서 면세품을 구입할 수 있는데, 그것은 사실 필요도 없는 물건을 고향의 쇼핑센터에서보다 조금 더 비싸게 구입하는 대가로 <듀티 프리>라는 말이 적혀 있는 비닐봉지를 얻는 것을 의미한다. 호화 유람선 승객들은 선상 숍이나 선상 바에서 죽치지 않으면, 가능한 한 빨리 미첼 프리드만(독일의 정치가, 변호사, 텔레비전 방송 진행자. 폴란드 유태계 출신이다)의 피부색과 같아지려고 갑판에 누워 햇볕을 쬔다. 주로 퇴직자들이 유람선 여행을 애용하는데, 그것은 집에서 조용히 여행의 노독으로부터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지 싶다.
휴식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비행기 여행을 권유해야 한다. 비행기 여행은 시간에 맞추어 공항에 도착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유럽 항공 교통의 가장 중요한 규정에 따르면, 승객들은 체크인을 시작하기 최소한 1시간 전에 창구 앞에 줄을 서야 하고, 이어서 2시간 동안 쇼핑 찬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공항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탑승에 성공하여 좌석번호 84G에 이르면, 한쪽 옆에는 미스 피기Piggie 양이 앉아 있고 다른 쪽 옆에는 자바 더 헛(<스타워즈>에 등장하는 매우 비만한 외계인물)이 팔걸이는 물론이고 내 좌석의 반이나 점령하고 있다. 그리고 승무원들의 주요 공명심은 단 한 사람의 승객도 좌석의 등받이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주의하는 데 있다.
비행기의 이착륙 시에 등받이가 수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규정은 순전히 횡포이다. 등받이가 움직일 수 있는 3밀리미터의 공간 여유에서, 좌석의 상태가 수직인가 아니면 살짝 기울었는가는 승객의 안전 면에서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무원들은 승객들을 들볶을 기회보다는 차라리 봉급의 일부를 포기할 것이다.
요즘에는 인터넷을 이용하여 집에서 편안하게 비행기를 예약할 수 있어 새로운 유형의 비행기 애호가들이 생겨났다. 맨체스터나 런던 스탠스테드의 술취한 주말 여행객 무리가 날마다 피사나 프라하, 바르셀로나를 거쳐 쏟아져 들어온다. 영국 술꾼들에게는 주말에 프라하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그곳에서 거나하게 취하는 편이 동네의 주점에서 죽치는 것보다 싸게 먹힌다. 그들은 벤첼 광장에서 갈지자로 비틀거리거나 체코의 필젠 맥주를 소화하지 못해 카를교 난간 너머로 몸을 굽힌다. 남쪽 나라에서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알코올을 과도하게 마신 영국 관광객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매년 발생한다. 그리고 물론 툭하면 집단 난투극이 벌어진다. 스페인의 지중해 해변에서만도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영국인들이 해마다 6백명 가량 체포된다. 2003년 여름 아름다운 코르푸 섬의 주점가에서는 어느 영국 여자 관광객들이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는 수백 명의 부추김을 받아 노상에서 영국 남자와 오럴 섹스를 벌였을 때, 그리스 방방곡곡이 아우성을 쳤다.
1970년대 아니면 1980년대 한동안은, 비행기를 많이 타는 것이 사회적인 지위와 결부되어 있었다. 나는 우리 집안의 친구였으며 이미 고인이 된 봅시를 즐겨 회상한다. 봅시는 이따금 비행기표 한 뭉치를 양복 안주머니에서 꺼내며, 내일 멕시코시티를 경유하여 라파스로 갔다가 3일 후에 다시 보고타로 가야하고 2주일 후에나 집에 돌아올 수 있지만 곧 다시 파리로 떠나야 한다고 신음했다. 요즘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조롱을 받는다. 기껏해야 동정을 받을지는 모르지만, 대개는 짜증스러운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런 사람들은 자비로 비행기 비용을 지불하는 법이 거의 없다. 회사 돈으로 이미 비행기를 많이 타고 다닌 탓에, 개인적인 일로 비행기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평생 마일리지로 해결할 수 있다. 그들은 거들먹거리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밀치고 창구까지 다가와 휴대폰에 대고 울부짖는다. '내가 지금 도저히 미팅에 참석할 수 없으니가, 그렇게 전해!'
여기에서 콩코드 여행객이라는 별종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사실 이제는 그런 부류가 존재하지 않아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참으로 안타깝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유리창 밖으로, 케이트 모스가 검은 양복을 입은 어두운 표정의 신사 17명을 대동하고 3시간 반의 비행을 위해 매력적인 스튜어디스들의 안내를 받으며 뉴욕행 비행기로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때는 정말로 돈을 들인 보람이 있었다. 그리고 '기술적인 결함'이 발생한 탓에, 그들 모두 30분 후에 붉으락푸르락하며 라운지로 돌아오는 광경은 또 어떠했던가.
값싸게 여행 다니는 부류의 사람들도 비행기 애호가들과 마찬가지로 피하는 게 상책이다. 이런 점에서 지구상의 3대 중요한 관광 시장, 북아메리카와 독일과 일본에서 이제는 비행기 타지 않는 것이 신분의 상징으로 간주되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체면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여행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다. 로스앤젤레스나 뉴욕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발리의 환상적인 해변에 열광하는 사람은 오로지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TUI(독일 최대의 국제적인 관광 대기업)를 통해 행복을 예약할 수 없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돈이 많지 않은 사람들도 조만간 부자들을 흉내내어 거만하게 여행을 업수이 볼 것이다. 그것은 트리클다운 효과라 불린다.
아직 견딜만한 유일한 여행이 있다면, 그것은 한 장소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다. 위대한 철학자 니콜라스 고메스 다빌라는 말했다. '지성적인 사람들과 우직한 사람들만이 한곳에 오래 머무를 줄 안다. 평범한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여행을 열망한다.' 그러나 경험을 쌓거나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아니면 친구를 방문하려고 5~6주일동안이나 5~6개월 동안 낯선 나라로 떠나는 사람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허둥지둥 여행을 하는 게 아니다. 이런 종류의 여행이야말로 과거에 품격 높은 것이었다. 심지어는 황제나 제왕들도 이 왕궁에서 저 왕궁으로 옮겨 다니며 그런 여행을 했다. 그리고 왕자들은 세상을 배우고 <기품 있는> 처세술을 익히도록 다른 나라의 궁정에 보내졌다.
이런 신사적인 여행의 현대적인 변형은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갭 이어Gap year 아니면 대학생들과 직장인들의 안식년 휴가, 임시 작전 타임이다. 그들은 반년 동안 아시아나 아프리카 어딘가로 떠나서, 고루한 휴가 여행을 떠났을 때보다 주변의 문화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운다. 문화를 단순히 구경하기보다는 다만 어느 정도라도 문화의 일부가 되는 경우에 그 문화에 더 가까워지게 마련이다.
원래 절약이 몸에 밴 골수 유럽인들에게도 경상비 지출은 부담이 크다. 그래서 집을 잠시 세주고 외국에 체류하는 것이 오히려 돈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난해지는 사람들에게는 외국에서의 장기 체류를 권장할 만하다. 뮌헨에서 일주일 절약하며 사는 것보다 이스탄불이나 카이로에서 한 달 동안 흥청거리며 지내는 데 돈이 훨씬 적게 든다. 파리처럼 예로부터 보헤미안들이 즐겨 찾는 곳의 물가가 턱없이 비싸진 반면에, 새로운 도시들이 모습을 나타내었다. 예를 들어, 과거에 레발이라 불린 탈린은 독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중세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아니면 소피아. 때맞추어 예약만 잘하면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그곳까지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다. 인터시티를 타고 베오그라드에 도착하여 소피아행 기차로 갈아타면, 약 24시간에 걸친 모험적인 기차 여행 후에 과거 러시아 황제의 통치를 받던 도시에 도착한다. 유럽의 가장 오래된 교회들 사이로 이슬람교 사원들과 오리엔트풍의 시장이 자리잡고 있으며, 지하철의 창문에는 커튼이 쳐져 있고, 커피 맛은 이 세상 어디보다도 뛰어나다.
1960년대와 1970년대까지 유럽의 모든 도시에는 혼자 살기에 너무 커다란 집의 빈 방들을 세놓거나 하숙을 치는 나이 지긋한 부인들이 많이 있었다. 소설에서는 그런 곳들을 무척 음산하고 남루하게 묘사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파산한 사람들, 그리고 물론 예술가와 대학생들에게는 값싼 숙소를 제공하였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도시에서 몇 주일이나 몇 달 동안 작은 집을 빌릴 수 잇으며, 집세는 그리 비싸지 않은 하숙비의 일부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아침 식사를 준비할 노부인이 없는 탓에― 식사를 직접 해결하다 보면, 낯선 도시의 삶을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이득이 있다. 식품점이나 시장을 여행객이 아니라 현지 사람들의 눈으로 찾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여행은 전적으로 삶을 풍성하게 한다. 그러나 물론 그런 여행을 1년에 네다섯 번씩 할 수는 없다. 관광객으로서 허겁지겁 세상을 헤매는 대신 두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음미하는 것이야말로 장소이동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휴가를 떠나는 것'보다는 집에 머무르는 것이 백 번 천 번 더 낫다. 예를 들어, 고향 도시에서 휴가를 보내면, 관광 명소를 방문하는 고역에서 벗어날 수 있다. 피사 사람들이 피사의 사탑에 오르거나 파리 사람들이 에펠 탑에 오르는 일은 절대로 없다. 그러나 관광객으로서는 그런 일들을 한다. 휴가 여행이 무의미하다는 확신이 의식 깊이 숨어 있어서, 이른바 관광을 통해 그것을 억누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행복해지려는 사람은 레저 산업에 이끌려 꿈을 정해서는 안 되며, 도달 가능한 자신만의 꿈을 기획하여야 한다. 위스망스의 소설 『거꾸로』의 주인공 장 플로레사 데 제생트처럼 지나치게 과장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데 제생트에게서도 조금 배울 수 있다. 프랑스 옛 귀족 가문의 후예, 세상에서 물러나 조용히 살아가는 과민한 데 제생트는 모든 여행을 거절한다. 파리 교외에 위치한 집에 필요한 모든 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 제생트는 어느 날 디킨스의 책을 읽은 후에, 여행을 꿈꾸기 시작한다. 그래서 영국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운다. 하인에게 가방을 꾸리라고 이르고는, 어리둥절해하는 하인에게 1년 후 아니면 몇 개월 후 아니 어쩌면 몇 주일 후에 돌아올지 모른다고 말한다. 정확하게 언제 돌아올지는 그 자신도 모른다.
데 제생트는 파리행 기차에 올라탄다. 파리에 도착해서는, 런던 여행 안내서를 사기 위해 리볼리 거리에 간다. 때마침 세차게 쏟아지는 비가 코앞에 닥친 여행을 예감하게 한다. 데 제생트는 여행을 계속하기 전에, 서둘러 술집에서 영국산 포트와인을 한두 잔 마시려고 한다. 그런 후에 영국 레스토랑에서 영국인들 틈에 섞여 앉아 식사를 하고 에일을 마신다. 많은 음식과 냄새, 소리, 포트와인과 에일 후에 데 제생트는 노곤해져서, 영국으로 데려다 줄 배가 기다리고 있는 디에프행 기차를 그만 놓치고 만다. 영국까지 고단한 여행을 하지 않았는데도 많은 것을 체험한 사실에 무척 행복해하며, 조금의 애석함도 없이 집으로 가는 기차에 오른다. 상상 속에서 이미 오래 전에 영국에 가보지 않았던가. 비, 안개, 북적거리는 도시. '이제 새삼 무엇 때문에 어설프게 장소를 옮겨 불멸의 인상들을 잃어버려야 한단 말인가?' 데 제생트는 여행을 떠난 지 몇 시간 만에 트렁크와 짐 꾸러미, 가방, 지팡이를 들고서, 길고 위험한 여행 끝에 마침내 다시 집에 돌아오는 사람처럼 녹초가 되어 어리벙벙한 하인 앞에 나타난다.
이탈리아에서는 데 제생트와 비슷한 사람들이 분명 점점 늘어나는 듯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느끼지 않아도 되는 수치심을 느낀다. 이탈리아에는 유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 있다. 휴가를 떠난 척 위장하는 것이다. 자동 응답기를 틀고 화분을 옆집에 맡기고 냉장고에 음식을 가득 채우고 아이들에게 비디오를 틀어 주고 2주 동안 집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약 3백만 명의 이탈리아인이 해마다 휴가를 떠난 척 가장한다고 한다. 여행을 떠날 만큼 돈이 없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휴가를 떠나지 않는 사람들은 미래의 선구자라는 사실을 누군가 그들에게 알려 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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