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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멀쩡한 아이가 교실에서 오줌을 쌌다면-
    일상 2010. 6. 12. 17:49


    대학교 때 학회에서 누군가 이러한 말을 던진 적이 있었다.
    "갑자기 수업시간에, 모자란 아이도 특수학급 아이도 아닌, 소위 '멀쩡한 아이'가 교실에서 오줌을 싸 버렸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러한 교실 상황은 왜 발생하게 되는걸까,
    나는 수업시간에 화장실에 갈 수 없다는 규칙이 지나치게 엄하게 적용되었기 때문이라고 파악했다.
    그리고 수업시간이긴 하지만 화장실에 가는 것은 기본적인 인권 문제라고 생각했다. 일단 나부터가 화장실을 자주 가는 사람이다. 머그잔에 물 한 컵 가득 먹고 나면 40분 정도 후에 신호가 온다. 교사는 수업 시간에 나가기 쉽지 않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 물먹기도 조심스럽다.
    그래서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일단 그 아이의 옷이 젖었을테니 체육복으로 갈아입으라고 화장실로 보내고 나서,
    그 아이가 없는 동안 이 일로 그 아이를 웃음거리로 만들지 말라고 그 반 학생들에게 타일러야겠지. 단호하게.
    그렇게 말해도 학교에 소문이 퍼져 웃음거리가 될 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아이들에게 실수 한 번으로 지나치게 놀리면 그 사람의 마음에 두고두고 상처가 남을지도 모르니까, 의리있게 우리반 비밀로 지켜주자고 말하면.. 되려나?
    그리고 그 아이가 교실로 돌아오면 자리의 쉬야를 일단 스스로 정리하게 한 다음에,
    반 전체에게 이야기해야지.
    화장실에 못 가면 병이 될 수도 있고, 병이 나지 않더라도 건강에 좋지 않고.. 또 나도 자주 경험한 거지만 수업 시간에 계속 참고 있으면 집중도 잘 안되고 괴로우니까, 화장실에 가겠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녀오라고 할거야. 그건 여러분의 기본적인 인권이라는 말도 하고 싶어.."

    그런데 현실은!
    요즘 더운 날, 당연히 아이들은 온 복도를 뛰어다니며 레슬링하며 쉬는 시간을 보내고
    수업시간에 헉헉대며 "선생님, 물 먹고 오면 안돼요?"를 외친다.
    에어컨이 아직 나오지 않던 어느 더운 날 2학년 교실에서, 그래 계속 목이 말라 있으면 집중도 안되고 괴롭지- 하는 마음에
    빨리 다녀오라며 한 명을 보내주었더니,
    교실곳곳에서 "선생님, 저도 가면 안돼요?"를 외친다.
    수업 시간에 다른 교실에 방해가 될까봐, 아이들끼리 모여 딴짓을 하고 올까봐, 교실을 나가는 건 한 명씩만 허락하겠다고 했더니,
    수업시간 내내 "선생님, 다음엔 제가 갈게요"가 연발되고
    심지어 45분 수업에서 40분이 되는 시점까지 한 명씩 물을 마시러 나갔다 오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나마 그 이후에 손 든 아이들에게는 "너희는 이제 5분만 참아라"라고 눌러서 그 시점에서 멈춘 거다.

    그 이후로, 나는 수업 시간에 물먹으러 다녀오겠다는 아이들을 보내줄 수가 없었다. 그냥 쉬는 시간에 먹고 와야지 지금은 안된다며 꼰대같이 애들을 잡았다.

    <T.E.T교사역할훈련>이란 책을 읽는 중에 이 일이 생각났다.
    의사소통을 가로막는 12가지 대화법 중 '명령, 지배, 지시하기'가 있었다. 학생의 감정, 욕구, 문제를 중요하지 않게 다루며 학생은 교사가 요구하는 것을 묵묵히 따라야 하는 이 말하기의 예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네가 목이 마르든 말든 내가 무슨 상관이냐. 물 마시러 자리를 뜰 수 있는 시간까지 가만 앉아서 참아라."
    나는 저렇게까지 말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안타깝지만 쉬는 시간에 다녀와야지. 다음부턴 꼭 종 치기 전에 물 마셔'라고 한다. 변명이다)에서 위안을 받을 수는 없었다. 좋지 않은 말하기 방식이며, 아이들을 많이 힘들게 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업 시간 내내 쉬지 않고 "선생님, 다음은 저요~"라고 누군가 외치고 계속 한명씩 들락날락하는 분위기에서 수업을 계속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교실은 항상 나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한다.
    다음 주 한 주만 애들에게 허용해줘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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