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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먼 후일' 시 수업일기
    학교에서 하루하루/공립에서 수업하기 2015. 3. 8. 09:31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있었던 많은 것을 잊겠지만, 내가 돌아보는 양동에서의 첫 수업. 

    처음 가르치게 된 단원은 시. 시는 짧은 언어 안에 작가가 말하려는 걸 담으려다 보니 더 아름답기도 하지만 우리가 많은 부분을 생각해서 이해해야 된다는 걸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만든 도입활동은, 상용샘 학교에서 빌려온 활동이긴 하지만, 사진 해석하기.
    사진 한 장을 보고, '~~~~ 한 걸 보니 ---인 것 같다'는 형식으로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써 보는 활동이다. 사진 한 장을 보고 여러 가지를 끄집어 내듯, 시도 꼼꼼히 읽으면서 해석해나가면 재미있다는 결론을 내고 싶었다.


    읽기 전에 : 선생님이 보여주는 그림을 보고, 알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써 봅시다.

    ( ) 한 것을 보니 ( ) 같다.

    ( ) 한 것을 보니 ( ) 같다.

    ( ) 한 것을 보니 ( ) 같다.

    ( ) 한 것을 보니 ( ) 같다.


    사진 한 구석에 있는 패딩을 보고 '겨울인 것 같다' 라고 한 아이들이 몇 명 있었는데, 내가 미처 생각 못했던 부분이라 깜짝 놀라서 칭찬해주었다. 시도 이렇게 구석구석 잘 보고 해석하면 되는 거라고. 근데 심지어 어떤 반에서는, '아이들이 패딩을 벗어둔 걸 보니 오늘 날씨가 춥지 않거나, 아이들이 뛰어놀았나보다' 라고 해서 더더더 감탄했다. 이렇게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해서, 예상하지 못한 대답을 할 때 정말 기쁘다.
    어떤 반에서는, 남자애들은 '깔아뭉개면서 누군가를 괴롭히는 상황이다' 라고 해석하고, 여자애들은 '우는 아이를 달래고 있다'라고 해석했다. 그러고보니 남자애들은 누가 울면 저렇게 안고 달래주진 않지. 그래서 독자의 특성에 따라서 이렇게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거라는 이야기도 했다. 아이들이 활동에 잘 참여해서 내가 예상하지 못한 답을 내어 놓고, 나 또한 예상하지 않았던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시간. 내가 수업을 하면서 가장 희열을 느낄 때가 이런 때이다.  

    그리하여 양동중 3학년 아이들에게 가르치게 된 첫 작품은, 김소월의 '먼 후일'.

    먼 후일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말이 '잊었노라'

    이렇게 시작하는 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나의 첫 설명은 이랬다. 

     -당신이 나를 찾을까, 안 찾을까?
     -.........
     -얘들아, 쉽게 생각하면, 만약에 쌤이 작년에 남자친구랑 헤어졌다고 치자. 연락이 올까, 안 올까?
     -안 와요/와요
     반 분위기에 따라 대답은 다르다 물론. 리액션이 좋은 아이들은 어머~ 아~ 하고 탄식하기도.
     -그런데 만약에 내가, '남자친구한테 다시 연락이 오면 '이렇게 말해야지, 저렇게 말해야지' 하고 혼자 상상하고 있다면, 난 왜 그런 걸까?
     -미련이 남아서요~ /그리워서요~/ 못 잊어서요~ 등등.

    이렇게 살신성인 자폭을 해가면서 공감을 시키려고 애썼다. 안녕 내 이미지......
    아이들에게 자꾸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비슷한 상황을 대는 것이 나의 강의스타일인 모양이다. 6년차가 된 지금에야 깨닫게 된다.
    헉,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먼 후일에 '당신'이 '나'를 찾는다는 상황을 가정하는 것 자체가 내가 '당신'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는 게 너무 무리한 해석은 아닌가 돌아본다. 물론 반어를 중심으로 수업했지만 너무 저 부분에서 힘을 줬나,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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