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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가 될까봐 두려워학교에서 하루하루/학급 살림 2015. 9. 27. 20:27
1년간 애니메이션 비평반을 운영하고 난 후기.
덕후라고 하기엔 한참 부족하지만 중학교 때 애니메이션 정말 좋아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이런 거 말고 TV 시리즈물. 만화도 좋아하고 애니도 좋아하고 코스프레도 좋아했다. 그래서 나도 애니메이션을 실컷 보고 조금은 편하게 동아리 활동을 운영해보고 싶은 흑심에서 올해 동아리활동에선 애니메이션 비평반을 개설했다.
원래는 애니를 좋아하는 애들(소위 덕후)을 데리고 '이게 옛날의 명작 애니다!!!!'하고 내밀면서 내가 10년 전에 보지 못했던 아쉬운 작품들을 보고 싶었다. 작품성도 있고 내가 재밌게 봤던 것들로 골라서.
예상은 했지만 역시 가위바위보에서 진 애들이 많이 왔다. 돈도 안 들고 자기네가 봐도 '과학실험반'보다는 좀 편할 것 같았겠지. 그래서 옛날 작품과 현대물을 반반 섞기로 했다.
그래서 세운 나의 장대한 계획.
1차시 : 카레카노+오란고교 호스트부(학원물)
2차시 : 은혼+ 시귀(공포물!!)
3차시 : 바람의 검심 추억편, 공각기동대 극장판(명작 산책)
4차시 : 강철의 연금술사+천공의 에스카플로네
5차시 : 쿠로코의 농구나 Free 아니면 하이큐/H2 아니면 슬램덩크(스포츠물)
6차시 : 분위기를 봐서 "너에게 닿기를" 이나 중2병 어쩌고..
막상 해보니 택도 없었다. 그리고 옛날 가요를 요즘 애들이 들으면 푸하하 비웃듯이, 아무래도 옛날 것들이 요즘 애들한테 확실히 안 맞는 감이 있다. 스타일도 다르고 유행도 다르고. 그리고 순전히 내 취향으로 고른 건데, 내가 지금 중2라고 해도 얘들과 취향이 일치할 것 같진 않다.
그래서 실제로는
1차시 : 카레카노+오란고교 호스트부 - 남자애들이 몹시 힘들어함. 연애물을 도저히 소화할 수 없음. 일단 코미디물이니 흥미롭게 보지만 연애 코드가 나올 때마다 토할 것 같은 표정들을 지어서 교실에 비닐봉지를 준비함.
2차시 : 공각기동대-이해 너무 못해서 중간에 끄고 계속 강철연금술사 봄.
3차시 : 천공의 에스카플로네-소리가 안 나와서 못 틂. 애들이 근데 작화만 보고도 실망함. 강철의 연금술사는 반응 좋음.
4차시 : 쿠로코의 농구-반응 완전 좋음. (M양이 제발 보자고 함)
5차시 : 암살교실-정말 열심히 봄.(J양이 추천해줌)
애들이 이미 본 작품이더라도, 그냥 애들이 재밌다고 하는 걸 트는 게.. 그들은 재밌어서 좋고, 나는 애들의 반응을 살피면서 설득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지금 돌아보니 내가 '이게 오래되긴 했지만 내가 옛날에 이거 봤을 때 진짜 좋았어!' 하고 들이미는 게 엄청 꼰대같은 짓이었던 것 같아서 부끄럽다.
안그래도 나는 기본적으로 '지금 애들이 나를 좋아하는 건 내가 젊어서야'라는 편견(혹은 진실?)을 탑재하고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내가 내 잣대로 아이들을 마구 재단하고, 가치관도 딱 굳어서 유연성 없이 젊은이들에게 훈계하는 인간, 꼰대가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는데, 역시 계속 그걸 두려워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옛날엔 이렇지 않았는데, 이게 좋았는데'보다 지금 애들이 좋아하는 것을 내가 함께 하려고 노력해야지. 꼭꼭 기억해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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