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형 자사고를 지원하려는 아이들이 제각기 자기소개서를 봐달라고 들고 와서 너무 힘들다는 진로샘의 메시지가 왔다. 그래서 아예 오늘 7교시 후에 애들을 모아서 자소서에 대해 간단히 알려주고, 시험 끝나면 써오라고 하겠다고 하셨다. 하나하나 봐 주기는 힘들 것 같다고.
7교시에 9반에서 수업하고 있는데 끝나는 종이 치기 3분 전에 진로샘이 방송을 하셨다. 자사고 희망자들은 끝나면 진로실로 오라고~
나도 그래서 덧붙여줬다.
-시험 전날이라 마음이 급하겠지만, (자사고 가고싶으면) 너희가 문제 한두 개 더 맞는 것보다 자소서 잘 쓰는 게 더 중요하니까, 가 보는 게 좋겠다.
반응들이..
-야, 너 갈거야?
-저기 꼭 가야돼?
서로 의논하다가
-쌤, 그냥 국어샘이 봐 주시면 안돼요?
하길래
-우리 반 애들 다 봐주고 시간 남으면~
그랬더니 결국 결론이 이렇다.
-에이, 결국 힘들다고 하면서 진로샘은 다 해줄걸요.
선생님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힘들어하면서 퇴근 늦춰가며 베풀어준 호의는 결국 이렇게 애들을 이기적으로 만든다.
올해도 얼굴도 모르는 아이를 교감샘 부탁으로 상산고 자소서 첨삭해줬더니 합격하고 인사 한 마디 안 왔더랬지. 이런 일은 너무 흔해서 선생님들 사이에선 얘깃거리도 안된다.
종례 시간에 또 우리반에서 똑같은 얘기를 했다.
-얘들아, 시험 몇 점보다 자소서 잘 쓰는 게 더 중요한 거 알지? 종례 끝나고 진로실로 가~
-쌤, 저희 마음 안 급해요ㅋㅋㅋㅋ 갈게요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우리반 1등 하는 아이가 맞아맞아 하면서 고개 끄덕이고 있다.
실제로도 자사고 입시는 이제 내신 성적 안보고 서류 면접만 봐서 자소서가 더 중요하거든. 내신도 수행+중간+기말 합쳐서 90점만 넘으면 다 같은 A라서 잠시 시간 내는 게 그렇게 치명적이지 않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위해 뭔가 해주려 할 때 잘 받아주는 아이들이 예쁘다. 나는야 고슴도치 담임.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