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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마드리드/스페인 여행 1일차
    일상/여행지도 2020. 3. 5. 05:38

    마티나라운지-대한항공-마드리드 도착

     

    인천공항 마티나 라운지


    예전에 카드 아줌마가 PP카드 된다며 만들라고 권했던 bliss5카드. PP카드 발급 가능한 신용카드....라는 게 PP카드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걸 몰라서 내 카드는 인정을 못 받고, 선재가 라운지 바로 이용 가능한 카드를 갖고 있어서 동반자 가격 내고 들어갔다. 공항에서 시간 남아서 라운지 간 것도 처음이고, 2터미널에서 비행기를 타는 것도 처음이야. 귀찮아서 면세점 쇼핑 건너뛴 것도 처음이야! 이 모든 게 왠지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ㅋㅋㅋㅋㅋㅋㅋ 그러고 나서 부페에서 떡볶이 순대를 보고 너무 흥분해서 다른 건 거의 못 먹음. 티라미슈와 커피가 맛있었다.

    덕분에 비행기 타서도 기내식 딱 나올 때 쯤 소화 안되고 위가 팽팽하게 아픈 느낌이 나서 기내식을 못 먹었다. 내가 먹을 걸 거절하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인데 이미 아팠고 먹으면 진짜 많이 아파질 것 같아서 사양하고 레드와인만 마셨다. 위 안 좋은 느낌인데 술 먹어도 돼???? 대책 없는 인간임을 증명했다.
    옆에 있던 SJ가 기내식 사진 찍을래? 라고 묻기에 '기내식을? 왜?' 하고 넘겼다. 공항에서 면세점 안 가고 비행기에서 기내식 안 먹고 사진도 안 찍는 게 뭔가 여행 자주 다녀보는 사람의 자세 같아서 또 혼자 부자가 된 기분으로 체끼를 견딤.

    카페인에 약한 나는 라운지에서 한 샷 마신 커피 때문에 기내식 대신 와인 두 잔을 먹고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전자책 리더기에 담아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치인의 사랑'을 읽었는데 소설이 잘 읽히고 충격적(!)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를 일. 애초부터 남자가 자기 뜻대로 여자를 키워서 아내 삼겠다는 것부터가 도착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끝내 그 여자의 문란한 생활까지 손쓸 수 없는 매력을 느끼게 되다니... 어릴 때 '키친'에서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성전환자 엄마라든가 크로스드레서가 나와서, 이런 걸 19세 안 찍고 팔아도 되나? 생각했는데 이 묘한 일본감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근대 문학이라 그런지 서양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도 지금 일본과 닿아있는 듯해서 재미있었고. 일본은 참 남 눈치 미친듯이 보는 것 같으면서도 이런 대담함이 있다는 게 신기하고 이런 작가를 근대 대표 작가로 꼽는 것도 신기하다. 우리 문학에서 이런 도착적인 성 관념을 찾을 수 없는 건, 있어도 경원시되어서 내가 모르는 건지, 진짜로 드문 건지. 하튼 섬나라 특유의 사소설 느낌이 난다. 

    이어서 같은 작가의 <열쇠>를 읽기 시작했는데 더더욱 가관이다. 평소에 아내가 너무 정숙하게 구는 데에 불만이 있던 차에, 아내가 술에 취해 쓰러지자 그걸 이용해서 불을 환하게 켜고 온몸을 구석구석 살피고 부부의 일도 한다. 아내가 꿈결에 다른 남자(딸의 신랑감으로 삼아보려고 접근시켰지만 엄마에게 호감을 가진 듯한)의 이름을 부르자 묘한 쾌감을 느낀다. 그 이후 이런 일의 반복. 그러다 몰래 사진을 찍기 시작하고 급기야 그 다른 남자에게 사진을 현상해달라고한다. 질투를 통해 만족감을 느끼는 이 미친 감성 뭐야?! 그리고 딸은 왜 엄마와 다른남자를 자꾸 만나게 해? 
    그러나 이 소설의 백미는.. 남편과 아내의 일기가 교차되어 사건을 조금씩 보여주는데, 아내가 남편을 의식해서 일기를 가짜로 썼다는 거. 실제론 기무라씨와 잤고 건강 위험하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딸이 중간에 낀 거 같고. 와 진짜 여기서 소름끼쳐서 앞부분을 다시 읽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요즘 작품도 아닌데.. 이런 부분도 엄청 일본스럽다. 음험해 ㅎㅎㅎㅎㅎㅎㅎ

    마드리드 도착

    공항버스 타고 가는데 SJ가 또 저거 맞냐고 불안해해서, 시벨레스? 하고 물어보고 탔다. 내가 맞다고 하면 좀 맞다고 하고 안심했으면 좋겠어. 응? 여행 준비는 다 내가 했다고. ㅎㅅㅎ

     

    그리고 공항버스에서 첫번째 소매치기를 목격. 정확히는 목격이 아니라 엿들었다고 해야 하나? 우리 옆에 일가족이 있었고, 그 중 아빠가 백팩을 매고 있으면서 가이드북 보면서 엄마랑 막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우리 옆에 서 있던 한국인 젊은이 하나가 "이 뒤에 모자 쓴 사람 조심하세요."라고 알려주며 백팩 지퍼를 열어봤다고 했다. 뭐야 바로 옆에 있던 나도 못 봤는데 거의 초능력 아니냐고. 아저씨가 화가 나서 중얼중얼 쌍시옷 발음을 하면서 가방을 앞으로 맸다.


    호텔 체크인해서는 너---무 힘들어서 자다가, 조금씩 기력이 나기 시작해서 <라 마요르끼나> 빵집에 가서 빵을 4개 사왔다. 가이드북에도 나온 맛집이라고 하는데 시그니처로 보이는 나폴리아나 크림, 초코랑 다른 큼지막한 빵 두 개를 골랐다. 역시나 쏘쏘.. 빵을 별로 안 좋아해서 유럽은 힘들다. 게다가 너무 달아서 식사용으로 하기엔 좀 무리가 있었더랬다. 

    빵까지 주워먹고 나니 너무 눈이 반짝 떠져서 시계를 보니 세상에 한국 시간으로는 딱 5시다. 평소 기상 시간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는 우리 몸의 신비에 감탄하며 써 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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