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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토 서점 방문기-케이분샤, 호호호좌
    일상/여행지도 2019. 2. 24. 20:13
    케이분샤 이치조지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 하나로 꼽혔다는 케이분샤 이치조지점.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내부가 꽤 크고, ㄱ자로 된 공간을 돌아들어가면 예쁜 문구류와 소품들을 파는 공간도 나온다. 


    K샘 친구가 여기에 가면 점장님께 'cottage'를 보여주고 설명을 들으라고 했단다. 그래서 구글 맵에서 코타쥬를 한참 찾았는데 영 나오질 않았다. 알고 보니 서점 한켠에 사람들이 각종 모임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 코타쥬였다.

    점장님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서점을 둘러봤다.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머리 희끗희끗한 아저씨, 가벼운 에코백을 메고 온 여자 등등 여러 사람이 카운터에서 책을 찾아달라고 하기도 하고 책장을 스윽 둘러보기도 했다. 
    운치 있는 옛나무 가구들, 책, 조용히 책을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저절로 목소리가 낮아지고 조심스러웠다. 그 와중에 사람들의 표지도 구겨지고 접힌 책이 있어서 자세히 보니 교토 카페 지도, 교토 안내 책이다. 순간 편안해져 웃음이 났다. 일본어를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인테리어를 구경하러 온 사람도, 희귀한 책을 구하러 온 단골 손님도, 그저 책이 좋아 서점을 보고 싶어 걸어온 사람도 들르는 곳이었다.

    몇십년 된 서점이라는데 점장님은 내 또래로 보여서 궁금한 게 많았다! 막상 여쭤보니 일한 지는 3년 정도 되었단다. 서점의 오너는 따로 있고 점장은 바뀌는 모양이다. 세이코샤처럼 여기서 일하다가 나가서 자기 서점을 여는 분들도 많다고 한다. 
    여기 케이분샤에서는 유행하는 책들보다는 소설이나 철학책을 많이 들여놓는다. 책을 배치할 때는 "최대한 많은 책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보통 서점에서는 잡지나 디자인 관련 책들 위주로 표지가 보이게 하는데 철학 같은 책들도 많이 보여주고 싶다고. 일한 지 오래 되지 않아서 말하기 어렵다고 덧붙이며 수줍은 미소를 보내셨다.

    점장님과 이야기를 마치고 쇼핑을 시작했다. 기왕 서점에 왔으니 책을 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건 서울에서 서점 탐방을 할 때로 미루기로 했다. 읽기 어려운 글자 대신 예쁜 것들을 보는 게 좋았다. 가벼운 캔버스백, 보자마자 반해버린 파스텔톤의 3색볼펜, 에스닉한 그림이 그려진 메모지를 샀다. 별 봉투도 신기했다. 봉투를 뜯고 얼굴을 대고 그 안을 바라보면 밤하늘의 별이 쏟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직접 사기는 그렇고, 누가 선물해주면 딱 좋을 것 같은 물건이었다.

    호호호좌





    서점 이름이 재미있는데, 무슨 의미인지 물어보는 걸 깜박했다는 걸 지금에야 기억해냈다. 아쉬워라.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한 주인 아저씨가 적극적으로 우리와 소통하려고 하셔서 이야기를 편하게 나눴다. 어떻게 서점을 운영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책을 좋아하니까요"라고 짧게 말해주셨다. 토달 수 없는 대답이다.

    서점 벽에 전시된 그림을 바라보고 있자, 주인 아저씨가 다가와선 이 그림의 주인공이 자기 자신이라고 하면서 그림책을 보여주셨다. 유치원 들어갔을 때부터 말을 하지 않던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쓴 거라고 한다. 유치원 들어갈 때 자기소개하는 시간에, 왜 해야하는지 납득할 수가 없어서 입을 다물곤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흥미가 생겨서 책을 집어왔다.

    나중에 읽어보니 더더욱 귀여운 이야기였다. 말은 하지 않지만 수업시간엔 오만 장난을 치고 친구들도 많은 야마자키군의 이야기. 집에선 곧잘 이야기를 했기에 발표를 해야하는 날엔 오디오를 들고 가서 자신이 미리 녹음해 둔 발표를 틀고 립싱크를 하기도 했다. 6학년 때 선생님께는 편지도 썼다. 직접 쓴 자필 편지가 책에 끼워져 있다.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누구누구 선생님이셨고 제가 말을 하게 만드려고 이런 저런 일을 하셨어요.....3학년 때 선생님은 교환 일기를 쓰자고 했어요. 4학년 때 선생님은 미인이었지만 저를 포기했어요.....감사합니다. 졸업식 때는 힘내볼게요.' 그리고 야마자키군은 졸업식 때 자기 이름이 불리자 "네!"하고 대답한다. 그 누구도 들어본 적 없었던 목소리로.

    주인장님도 이 이야기를 하면서 '졸업식 때 대답을 하면서 게임은 끝났다'는 표현을 했는데, 정말 오랫동안 이어온 게임 같은 느낌이었다. 선생님들 속은 참 많이 썩였을 것 같지만! 그림도 딱 말썽쟁이의 표정이었다.

    여기에도 마야력으로 만든 달력 같은 재미있는 물건이나 소품들도 팔고 있었다. 카운터 앞의 책 포장지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자, 책과 과자를 함께 사면 준다고 하셨다. 마음에 들어서 망설임 없이 당근케이크와 그림책을 함께 샀다. 눈사람을 표현한 책 포장지가 누구의 그림이냐 물으니 여러 아티스트의 그림을 모은 것이라 한다. 호호호좌를 아끼는 사람들이 하나씩 그려준 걸까?

    유쾌한 만남이 끝나고 나니 어제 세이코샤와 헤지호그에선 서툰 일본어든 영어든 서점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해 보지도 않고 긴장한 채로 서점만 스윽 둘러보고 나온 게 아쉬웠다. 그래도 발이 넓은 K샘, 2개 국어를 완벽히 구사하는 P샘 덕분에 좋은 기회를 얻었다. 예쁜 문구류를 잘 찾아내는 E샘을 따라 맘에 드는 물건들도 잔뜩 샀다. 이날의 동행들은 진짜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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