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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잠을 자야할까책읽기, 기록 2020. 10. 13. 06:32
우리는 왜 잠을 자야할까/매슈 워커/열린책들중학교 3학년, 학교와 입시가 수면을 방해하기 전까지 나는 9시에 자고 7시에 일어나는 아이였다.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수면시간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생리가 끊겼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안자는 척 자는 법을 터득했지만 부족했다. 대학 입학 이후 기말고사 때마다 무지막지한 벼락치기를 하면서 나는 초저녁에 잠이 쏟아지고 새벽에 잘 일어나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 그 이후로 일이 많을 때마다 새벽잠을 잘라먹었다. 체력 탓을 하면서 픽 쓰러져 자고 나서 2시,3시에 일어나서 일을 했다. 매일 졸리니까 여전히 나는 잘 자는 사람이라 믿었다.
원래 운동을 좀 해보려고 스마트밴드를 차기 시작했는데, 수면 측정을 살펴보고 깜짝 놀랐다. 평균 수면시간이 하루 5시간 내외에, 깊은 수면이 30분 넘는 날이 없었다. 애당초 읽으려던 책도 리디셀렉트에 있던 <적게 자도 괜찮습니다>였다. 내가 너무 많이 자는데 맨날 졸린 것 같아서. 지금은 대체 뭘 하겠다고 그렇게 안 자려고 했나 싶다. 어릴 때부터 난 잠자는 시간이 아까웠지만, 잠이 그렇게 불필요한 거라면 수면을 막는 진화적 현상이 생겨났을 거라는 저자의 말에 완전 설득되어 버림.
잠 덕분에 인류가 다른 영장류와 달리 진화할 수 있다는 주장에 이르러서는 저자가 너무 '수면근본주의'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뭘 해내라는 이야기만큼이나, 잠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한 이야기도 많아져야 한다. 밤엔 주로 깊은 수면, 아침으로 갈수록 렘수면이 이루어져서 밤이든 아침이든 잠을 잘라먹으면 안된다는데 그동안 잃어버린 나의 렘수면.... 돌려줘.......
그러나 나의 렘수면은 돌려받을 수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무서웠던 지점이다.
앞서 잃어버렸던 잠을 결코 〈되찾을〉 수 없다. 사흘 밤을 연달아 즉흥적으로 회복 잠을 잔 뒤에도, 규칙적으로 꼬박 여덟 시간씩 자던 때의 원래 기준선까지 수행 능력이 회복되지 않았다. 게다가 어느 집단도 앞서 며칠에 걸쳐 잃었던 수면 시간을 다 되찾지 못했다. 하루 여섯 시간씩 자는 행동을 10일 동안 하니, 24시간 동안 잠을 안 잔 사람들에 맞먹는 수준으로 반응에 지장이 생겼다.
잠은 학습하고, 기억하고, 논리적 판단과 선택을 하는 능력 등 뇌의 다양한 기능들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감정 조절을 돕기도 한다. 면역력을 높여 악성 종양에 맞서 싸우고, 감염을 막고, 온갖 질병 요인들을 물리치는 일을 돕는다. 혈액을 타고 도는 인슐린과 당의 균형을 미세하게 조정함으로써 몸의 대사 상태를 복구한다. 식욕도 조절한다. 무분별한 충동보다는 건강한 음식을 선택하도록 함으로써 체중 조절을 돕는다. 잠을 충분히 자면 혈압이 낮아지고 심장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므로, 심혈관계의 건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조각조각 들은 것으로, 혹은 경험적으로 빤히 아는 사실들이지만 이를 뇌과학적으로 증명해주는 과정이 흥미롭다. 과학자는 이런 식으로 사고하고, 가설을 세우고, 새로운 질문을 하고, 실험을 만드는 거구나 싶어서 이공계 친구들에게도 권해보고 싶은 책이다. 게다가 설명을 엄청 쉽게 해준다! 원리 하나가 등장할 때마다 비유를 정말 탁월하게 들어준다. 과학자의 글쓰기가 이럴 수도 있구나 싶어.
이 책을 읽고 난 부작용이 하나 있다면, 늦잠자다 지각했단 아이들을 엄격하게 대하기가 어려워진 거. 왜 아기들은 통잠을 안 자는지, 청소년의 수면 리듬은 성인과 어떻게 다른지 알고 나니 아침에 와서 쓰러져 자는 애들이 너무 안쓰럽다. 이래서 9시 등교를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던 거구나. 그럼 이만 자러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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