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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기록] 피렌체 2일→로마 1일차일상/여행지도 2012. 8. 8. 03:44
* 가죽시장 산책-토르나부오티 거리-콜로세움-팔라티노-포로 로마노-트레비 분수-저녁식사-스페인 광장-공화국 광장
아침 산책 : 가죽시장
관광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여겨왔던 이 도시에도 삶은 있었다. 8시 반쯤 호텔을 나서니 어디론가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 뭔가 배달하는 사람들, 가게 문을 여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여유롭게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도 있었고. 야경이나 높은 곳뿐만 아니라, 아침 풍경을 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인 것 같다.
혼자 방을 나서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쪽으로 갔다가 주변 골목을 정처 없이 구경하고 다녔다. 그리고 어제 야경투어 가이드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 산 로렌쪼 성당 쪽으로 찾아가 보았다. 가죽시장도 막 문을 열고 있었다. 주섬주섬 가방들을 꺼내고, 가게 비닐을 벗기고. 손님들은 썩 많진 않았지만 낮이 되면 길에 더 손님도 많아지겠지. 물건들은 약간 시장 물건 같은 느낌이었지만 개중에 괜찮은 것들도 있었다. 시간이 좀더 있었다면 제대로 골라 보았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아침 산책 : 토르나부오티 거리
이제 수정양이 다 씻었겠지? 슬슬 호텔로 돌아가서 조식을 먹으려는데 이게 웬걸, 분명히 길을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가 어느 거리인지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 사실 나는 지도를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방향치 길치 출신이었다. 어찌어찌해서 거리 이름을 찾고, 내가 지도의 이쯤에 있군, 하고 짚고 가다가도 잠시 후 고개를 들면 여기가 어디지, 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다가 토르나부오티 거리를 지나게 되었다. 피렌체의 명품 거리라고 가이드북에서 보았는데, 여기서 딱히 새로운 느낌은 들지 않았다. ‘저는 쇼핑할 곳 많은 곳에 사는 서울 여자니까 굳이 이런 데서 안되는 영어 섞어가며 불친절한 서비스 받아가며 쇼핑 안 할래요~’ 하는 도도함은 전혀 아니고, 단지 문을 여는 상인들을 보며 이곳에도 아침은 공평하게 아침이구나, 느껴졌다. 명품숍의 아침이라고 더 여유롭거나 세련되지 않았다. 가게 문 열고 짐 옮기고 분주한 건 똑같은 게 재미있었다.
로마 입성
로얄 싼티나 호텔이 원래 우리의 호텔이었지만, 오버부킹 때문에 유니베르소 호텔로 바뀌었다. 그러고보니 <이탈리아 데이>에도 이 호텔이 소개되어있다. 여행가이드 책에 나오는 숙소에 들어가는 건 처음이다. 체크인하면서 나중에 공항 갈 때 택시 불러드릴까요? 금고 쓰실래요? 보증금 50유로! 이런 말들로 미루어 우리가 평소에 가는 호텔보단 좀더 고급 느낌이었다. 오버부킹 때문에 호텔을 바꿔주면서 방도 한 등급 올려주었는데, 방에 딱 들어가니 과일이 세팅되어있었다. 우리가 머무른 호텔들은 유럽 3성급 호텔 치고 다들 깔끔하고 괜찮은 편이었는데, 여기는 좀더 넓다는 것 정도가 달랐던 것 같다.
지하철 타고 콜로세움으로
로마는 땅에 묻혀있는 유물이 많아서 지하철 공사를 하는데 오래 걸리고, 깊이도 정말 깊다고 들었다. 실제로 타보니 정말 장난이 아니다. 지하철 역을 내려가고 꺾고 또 내려가고, 해서 겨우 지하철을 타고 콜로세움으로 갔다.
로마에서는 머무는 시간이 길지 않으니 처음에는 다 그냥 밖에서만 보고 사진이나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콜로세움은 사진으로도 하도 많이 보고 영화에서도 비슷한 걸 많이 봐서 아무 기대 안 하고 있었는데, 헉. 지하철역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콜로세움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크기 때문일까, 아니면 세월의 무게 때문일까. 실제로 보니 정말 위엄있는 건물이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남아 있는 걸 보면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던 것일까. 아파트숲에 사는 내 눈에도 이렇게 거대하게 보이는 이 건물이 그 당시엔 어떻게 느껴졌을까. 자꾸자꾸 그 규모에 감탄하는 것이, 서울 촌년이 된 기분이었다.
팔라티노+포로 로마노
콜로세움과 개선문!을 밖에서 돌아보고 팔라티노 언덕으로 향했다. 현금도 얼마 안 남아있는데, 자그마치 입장료가 12유로라니 눈물이 났다. 원래 팔라티노 언덕만 가려고 했는데, 입장료가 아까워서 다 돌아보기로 했다.
팔라티노 언덕은 사실 한국인 기준이라고 하면 언덕이라기보다는 그냥 속도방지턱 정도의 높이지만 나름대로 콜로세움을 죽 내려다볼 수 있어서 사람들이 추천하는 것 같았다. 고대 로마 황제들이 머물던 성터만 보아도 얼마나 거대했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도 평민 체험. 황제들은 아마 이런 더운 날 편안하게 가마타고 다녔겠지? 그래도 온통 땡볕이라고만 들었는데 은근히 그늘도 있었다. 양산을 쓰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잘 구워지는 느낌이었다.
포로 로마노는 영어로는 forum, 광장이었던 곳이란다. 그래서 로마의 건물들이 이것저것 있다. 황제 누군가의 아들 로물루스의 신전, 황비를 위한 신전, 원로원처럼 모여서 회의하던 곳 등등. 고대 로마의 거대한 건물들의 흔적들이 사실 감동적이지만은 않았다. 감동하려고 하면 자꾸 머리가 막는다. 고대 로마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고 보기엔 너무 배제하는 사람이 많았잖아, 이 건물들은 결국 지배자의 자취지 이걸 짓느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겠어, 하고.
그러면서 나온 생각. 역시 로마에 개선문이 참 많았다. 나중엔 “개선장군 있기만 하면 다 개선문 지은거야?! 무슨 열녀문이야?”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포로 로마노에서 마지막 개선문을 지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장군이 어딘가를 정복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 개선문을 지었을 텐데, 막상 그 공사에 동원되는 것은 노예들이었으리라. 그 노예들도 결국 정복민이었을 텐데... 그들은 개선문을 지으면서, 개선문을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내가 이걸 보면서 감동하는 것조차 미안한 일인 것 같아서 마음이 확 트이지는 않았다.
트레비 분수
포로 로마노를 다 돌아보고는 너무 더워서 물을 사먹었다. 그때는 거기가 좋은줄, 사실은 서울이 더 더운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는 트레비 분수로 향했다. 워낙 유명하기도 하지만, 잠실역에서 항상 보는 조각의 '진짜'를 확인하고 싶었다. 역시 사진 한번 찍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뭐랄까 여기는 낭만을 즐기기엔 너무 시장바닥 같았다. 사실 성수기 유럽은 어디 가나 너무 사람이 많다. 바티칸에서 나중에 부모님께 엽서를 쓸 때에도, ‘바티칸, 신의 숨결을 느끼기엔 사람이 너무 많은 곳에서 보내요’라고 마무리했다. 물론 그 중 나도 하나니까 할 말은 없지만.
베네치아 광장
그러고보니 트레비 분수 가는 길에 의도치 않게 베네치아 광장과 마주했다. 여행에 지쳐가면서, 이렇게 날로 먹는 코스가 굉장히 반갑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이 건물은 너무 커서 주변 경관을 해치기도 하고, 얼마 안 된 건물이라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처지라고 한다. 내가 고대 100주년 기념관을 볼 때와 비슷한 기분이다. 뭔가 멋지게 하려고 지은 건 알겠는데, 중간에 풍경이 턱 막히는 기분, 건물이 빽빽한 기분이라 오히려 캠퍼스를 답답하게 하는 느낌. 건물이 그냥 기술이 아니라 주변과도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예술이라는 것을, 유럽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깨닫고 있다.
저녁식사 : 스테이크와 티라미슈☆
레스토랑 이름을 까먹었는데, <이탈리아 데이>에 나온, 과일에 절인 스테이크와 티라미슈가 유명한 집을 찾아갔다. 6시쯤 갔는데 7시에 식사시간이 시작된다고 했다. 고민하다가 다리도 쉴 겸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7시 땡! 하자마자 스테이크와 토마토 파스타를 시켰다.
어제 맛없는 레스토랑에서 입은 내상 따위는 다 잊어버릴 정도로 맛있었다. 토마토 파스타는 그냥 케첩 맛 같아서 한국에서도 잘 안 시켜먹는데, 우동처럼 굵은 파스타 면발이 오독오독 씹히고 토마토 맛이 나는 질감도 좋았다. 그리고 스테이크 역시, 스테이크 안에 사과와 같이 구워졌는데, 독특하고 맛있었다. 6유로 정도 했던 것 같은데 이 정도 맛이면 비싼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할 때 티라미슈도 시켰는데 귀엽게 생긴 웨이터가 디저트는 나중에 주문하시면 돼요, 했었다. 그리고 디저트 주문을 받으러 왔다가, 티라미슈 시키셨죠? 하고 기억하고 있어서 더 귀여웠다. 그리고 옴폭 패인 그릇에 담긴 티라미슈를 떠먹었는데... 난 앞으로 한국에서 티라미슈를 사먹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단것이 그냥 달다고만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이탈리아에서 젤라또와 이 티라미슈를 먹으면서 알게 되었다. 건축 뿐만 아니라 요리도 예술이라는 걸 알게 되었달까. 하하하
스페인 광장
그렇게 행복하게 식사를 하고 나서, 수정양이 어디 가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묻기에 나보나 광장으로 할까 스페인 광장으로 할까, 하다가 사람들이 추천했던 게 생각나서 스페인 광장을 가보았다. 오드리 햅번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다는 그 계단에는 사람들이 또 가득 앉아있었다. 광장에서 위로 위로 올라갔는데 꼭대기까지 올라가니 날이 예쁘게 어둑어둑해지고, 저 멀리 돔 지붕이 하나 보이는데 베드로 성당 같았다. 멋진 야경이었다.
공화국 광장
그리고 호텔로 다시 돌아오면서 공화국 광장에 들렀다. 그러고 보면 유럽 국가들에는 광장이 참 많다. 사거리에 조금만 공간이 있어도 광장이란 이름을 붙여주는 걸 많이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광장이라면 뭐 광화문 광장 정도, 뭔가 거창한 것이어야 할 것 같은데 이 사람들은 작아도 길이 만나는 곳을 그냥 다 광장이라고 부른다. 광장의 기준이 낮고 훨씬 일상적이다. 이게 이들의 정치역사와도 관련이 있는 걸까?
그리고 밀라노에도 로마에도 republicca라는 역이 있다. 이 사람들에게 공화국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또 궁금했다. 문화가 다른 걸 이런 작은 데에서 느끼게 되니, 패키지를 선택하지 않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풀리지 않는 (아마 직접 본토 사람이랑 대화를 나누지 않는 이상 풀리지 않을 것 같다) 궁금증만 늘려가며 공화국이란 이름의 광장에 앉아있다 보니 새삼 이 나라가 모든 형태의 정치를 다 겪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정 제정 공화정 그리고 파시즘까지. 수정양이 같이 다니면서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이 서비스도 좋고 편리할 때도 많아서) 우리나라는 나라는 참 좋은데 정부가 나빠, 라고. 역사는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아직도 우리나라에 한국전쟁이나 분단 상황이 영향을 미치고 있듯이. 아무래도 여러 정치 형태를 직접 겪으면서 주도적으로 발전시킨 나라들에 비해, "이게 민주주의래" 식으로 민주정치를 하는 나라는 그 깊은 의식 어딘가에서 좀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내가 지금 너무 사회를 진화론적으로 보고있다는 데에서 또 반성.
그러고 보면 수정양이나 나나 여행하면서 뭔가 조금 다른 부분으로 강박을 갖고 있다. 수정양은 자꾸 공부하려 든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표지판도 열심히 보고 어느샌가 학구열을 불태운다. 나는 처음엔 그런 것 같았는데 공부하러 온 게 아니라고 계속 스스로 되뇌였다. 한편으로 나는 자꾸 역사적인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자꾸 이때의 보통 사람들은 어땠을까, 문화적인 의미는 뭘까 이런 것들을 찾으려고 했나보다. 이런 우리의 경향을 여행 끝날 때쯤 되어서야 또 파악하게 되었네.
마지막 사진은 나래를 위한 선물!
신기하게+다행히도 여행하는 동안 나래는 많이 안 보고 싶었고 그래도 가족들 생각이 더 많이 나더라.
그리고 서울만큼 고양이들을 많이 보지는 못했다. 여기는 비둘기 밥을 광장에 뿌려줘서 비둘기가 더럽게 많았다. (여기서 더럽게는 '많다'를 강조하는 속된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더러워보였다는 의미)
그래도 내 마음속에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어서 고양이가 보이기만 하면 찍었다. 아래는 리도 섬에서 찍은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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