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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 기록] 로마 2일차
    일상/여행지도 2012. 8. 8. 03:59

    * 바티칸과 그 주변


    줄서기부터 시작

    바티칸 투어 모임이 Cipro역에서 8시까지였다. 사실 아침에 서둘러 나가면서도, 입장이 8시부터인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빨리 모이라는 건지 의아해했다. 또 막상 치프로 역에 가 보니 한국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이 투어회사에서 하루에도 여러 명의 가이드가 바티칸으로 나가는 거였다. 얼마나 사람이 많을지 짐작해볼 수 있었다. 몇 명 모이자 가이드가 우리를 데리고 줄을 섰다. 8시 10분쯤이었는데 이미 바티칸 입구 앞에 줄이 꽤 있었다. 가이드가 여기서 9시까지 기다릴 거라고 안내해주면서, 9시에 여기 도착하면 11시쯤 입장할 수 있다고 했다. 성지인 건 알았지만 정말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곳이라는 거, 각오하기로 했다.

     

    미켈란젤로

    줄을 일찍부터 선 덕분에 일찍 입장했다. 입장하자마자 바티칸 박물관 가운데의 솔방울 광장에 자리를 잡았다.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미켈란젤로와 천지창조 그림 구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 작업을 하면서 미켈란젤로가 겪은 어려움을 들을 땐 정말이지 눈물이 났다. 장화가 다리에 붙어버릴 정도로 쉬지 않고 작업을 했고, 계속 천정을 보면서 작업하면서 목이나 척추에도 큰 무리가 왔고, 나중에 누워서 그림을 그리다보니 욕창까지 생길 정도로 이 사람을 몰입하게 한 힘은 과연 뭐였을까? 그 몰입의 힘이 결국 천재인 걸까. 자신의 작품은 모두 인간이 아니라 신을 위해 만든 거라는 그의 믿음의 힘인 것일까.

     

    그리고 가이드가 참 재미있게 설명을 잘 해 주었다. 직업병이 도져서, 아 강의를 하려면 이 정도로 웃기고 흡입력 있게 해야하는구나, 하고 반성도 했다.

     

    그리고 또 이 투어를 받으면서 우리나라 서비스가 참 경쟁력 있다는 걸 느꼈다. 시스티나 예배당 안에 천지창조를 보러 들어가서는 설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외국 가이드 팀들은 정원에 있는 표지판을 보면서 설명을 한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 보니 이 회사 가이드들은 다들 사람들을 표지판 앞에 세워두는 대신 그늘에 앉히고, 자료를 직접 보여주면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덕분에 바티칸에 하루 종일 있었지만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바티칸 박물관 회화관

    그렇게 미켈란젤로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듣고, 천지창조 그림 하나하나 설명을 듣고 나서 회화관으로 갔다. 여러 시대 그림을 보았는데 결국 기억에 남는 건 라파엘로의 그림들. 라파엘로는 노력형 천재 같은 느낌이다. 자기보다 앞선 사람들을 맹렬히 벤치마킹하는.. 아마 라파엘로가 다른 시대에 태어났으면 그는 또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하지만 역시 멋지게 그려냈을 것 같다.

    아, 그리고 종교화에서 누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들은 것도 유익했다. 수도복을 입고 큰 십자가를 들고 있으면 주로 프란체스코, 세례자 요한은 가죽옷을 입고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든가, 제롬 성인 곁에는 사자가 있다든가 등등.. 이런 걸 좀 미리 알았으면 편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루브르, 우피치에서 투어를 듣고 바티칸 투어까지 듣고 나니 이젠 좀 미술사가 조금 머리에 정리되는 기분이다.

     

    점심식사

    회화관을 둘러보고 나서 악명 높은 바티칸의 점심을 먹었다. 사람들의 후기마다 점심이 구리니 꼭 도시락을 싸 가라는 전설이 있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바티칸 박물관 같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로마 시민인데 신의 직장으로 불린다고 한다. 정년까지 안정된 직장이라는! 그래서 그 주방장이 사표를 던지지 않는 이상 10년 동안 그대로의 맛을 낼 거라고 기대치를 팍팍 낮추라고 하였다. 안 그래도 기대 안 하고 왔고, 가이드가 고기가 들어간 건 너무 짜니까 마르게리따나 버섯 피자를 시키라고도 조언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버섯피자를 시켰는데 생각만큼 최악은 아니었다. 그냥 뭐 먹고 배를 채울만한.. 한국에서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싶은 화덕피자였다.

     

    드디어 최후의 심판+천지창조

    점심을 먹고 나서, 바티칸 박물관의 조각관을 둘러보고는 드디어 시스티나 예배당에 들어섰다. 일단 문쪽에 있는 최후의 심판부터 보았다. 단팥빵의 단팥을 가장 마지막에 먹는 느낌으로, 천정화를 감상하는 감동은 조금더 미루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올려서 천장화를 계속, 계속 보았다. 이걸 그린 미켈란젤로에겐 좀 미안하지만 고개가 아파왔다. 자신을 계속 조각가라고 규정지었던 사람이 그림을 시작하는 마음은 어땠을까. 그러면서도 조각가로서의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발휘하는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게 정말 존경스럽다. 게다가 그런 걸 차치하고 보더라도 작품의 규모며, 또렷한 그림이 눈에 와 박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경이로운 그림이었다.

     

    그림 구석에 보면 김이 붙은 것처럼 까만 부분이 있는데, 그게 이 오래된 그림의 때를 벗겨내고 복원하기 전의 색이라고 한다. 그렇게 예전 모습을 남겨 두는 게 이탈리아의 복원 스타일이란다. 시스티나 예배당에 오는 길에 라파엘로관에서도 색이 아주 어두운 방이 있었는데, 그것도 때가 타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우같이 똘똘한 일본 이야기도 들었다. 교황청에서 이 예산이 많이 드는 때 벗기는 작업에 지원을 해 줄 나라를 찾아나섰다. 일본이 전액 지원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조건은 이탈리아에서 복원 작업을 배워가는 것. 정말 바로 우리 옆 나라고, 우리와 비슷한데도 뭐가 정말 장기적으로 가치있는지 볼 줄 아는 나라다. 우리도 저런 자세는 좀 배워야 할 것 같다.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

    그러고 보니 아테네 학당을 빼먹었다! 라파엘로관 지나면서 오는 길에 아테네 학당도 보았다. 온갖 학자들이 총출동하는, 도덕책에서 보던 그 그림이다. 플라톤이 위를 가리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래를 가리키는 그 그림. 역시 원작을 보는 감동이 컸다. 갑자기 옛날 교황과 귀족들이 부러워졌다! 내 업무실에 누가 그런 그림을 그려주면 저절로 열심히 일할 맛이 날 것 같다.

     

    성 베드로 성당

    마지막으로 들르게 된 곳은 성 베드로 성당. 사실 유럽 여행하면서 지금까지 줄기차게 성당을 방문해왔다. 나중에는 지겨워서 성당 안엔 들어가지도 않을 정도로. 그 와중에도 내가 냉담자이고 믿음이 깊지 않은.. 깊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이름만 카톨릭인 사람이라 그런지 그냥 유적지와 예술적인 건물로만 바라보았지, 뭔가 경건한 느낌이 든 적은 없었다. 그냥 예의를 지키는 차원에서 가운데 통로를 지나갈 때 예수님 상에 인사하고 지나가는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서양 사람들은 가운데 통로로도 막 다니던데, 크리스천이 아니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그런 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건지 궁금하다.)


    처음에는 성 베드로 성당에서도 천국의 계단 앞에서 사진 찍고, 꼭대기 올라가서 바티칸의 전경을 내려다보며 상쾌해하고, 피에타 어딨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_* 이러면서 막 찾아다니곤 했는데 그때 성당에서 미사 중이어서 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기분이 묘해졌다. 갑자기 막 기도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사실 오랜 친구가 아닌 직장 동료 두 사람이 여행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행 막바지쯤 되니까 24시간을 한 사람과 보내는 게 조금 질리는 느낌이 들어서, 그 사람과 안 맞는 부분도 넉넉히 넘기지 못하고, 친구면 그냥 딱 '~~해줘'하고 말로 할텐데 그게 아니니 속으로 짜증을 내는 일도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그랬던 나 자신이 스르르 반성이 되기도 하고 성경 말씀이 생각나기도 하고 그런 것이었다. 신기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유럽에서 성당을 다니면서 오히려 종교를 역사로만 받아들이려고 했다. 서양 중세사 수업을 들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는데, 사실상 교리라는 것이 그 당시 누가 권력을 가졌는가에 따라서 그 당시 사람들이 뚝딱뚝딱 정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고, 종교가 워낙 정치와 결합되어 있었고 피도 많이 불렀고.. 그런 걸 보면서 그냥 신을 믿고 낭만에 빠져있기는 어려웠다. 내가 간증이라든가 뭐 신앙이 깊은 모습을 오글거리게 보는 때도 종종 있고. 그런데 유럽 여행에서 들어간 마지막 성당에서 이런 묘한 기분을 느끼다니. 엄마가 아시면 그것도 주님의 뜻이라고 할 것 같다.



    덧붙여서, 천지창조보다 나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성모상이 더 감동적이었다. 피에타 앞에서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돌을 깎아서 나오는 은은하고 차분한 아름다움. 정말 슬프면서도 그 슬픔을 절제하는 그 감정을 조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너무너무 신기했다. 나는 지금까지 그런 복합적인 감정은 문학에서만 표현할 수 있는 줄 알았다. 이번 여행 때 본 여러 작품 중에서, 내가 하나를 가질 수 있다면 갖고 싶은 게 이 피에타 성모상이다. 


    올드브릿지 젤라또

    성 베드로 성당에서 받은 감동이 진정되는 계기는 간단했다. 배가 너무 고팠다. 그래서 우리는 가이드와 헤어지자마자 젤라또 맛집이라는 바티칸 건너편에 올드브릿지로 갔다. 거의 저녁 시간이 다가오는데 한~참 기다렸다. 한국인들이 정말 많았다. 바티칸 자체에 한국인 방문자가 많기도 하고, 워낙 소문난 곳이라 그런가보다. 몇몇 어른들은 아이스크림 하나 먹는데 뭐 이렇게 줄이 기냐며, 기다리려다가 그냥 가기도 하고, 짜증내는 분들도 보았지만 나와 수정양은 맛있는 젤라또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며 기다렸다. 롯데월드 바이킹을 타는 정도는 기다린 것 같다. 기다리다가 너무 배가 고파서 뒤를 돌아보면 우리가 온 만큼 줄이 또 길어져 있어서 위안을 받으면서 기다렸다.

    그런데 기다린 게 짜증이 안 날 만큼 종업원들이 재미있다. 아주 경쟁적으로 한국어들을 써 댄다. '컵에 줄까 콘에 줄까?' '일쩜 오 유로?' '크림 줄까요?' 등등. 그리고 역시 1.5유로 컵에 산더미 같이 젤라또를 쌓아줘서 뿌듯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니 저녁 식사에 대한 의욕이 줄어들었다. 역시나 달콤하고 시원하면서도 과일맛이 풍성하게 나는 젤라또였다. 이탈리아는 너무 무질서한 나라라, 왠만해서 다시 오고 싶은 기분이 잘 안 들지만 젤라또만은 너무 그리울 것 같다.

     

    저녁식사

    일단은 다리를 좀 쉬고 싶기도 한 생각에, 가이드북에 나온 레스토랑을 찾아갔는데 영업을 안 한다. 휴가 갔나. 지금까지 아무 레스토랑이나 들어가서 만족스러웠던 적은 별로 없지만 그냥 그 건너편에 카페 비슷한 곳에 앉았다. 수정은 카프레제를, 나는 참치샐러드를 시켜서 나눠먹었다. 그렇게 먹고 싶던 야채도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먹게 되다니. 지금까지 막 들어간 레스토랑 중에서 가장 나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채소를 많이 줬으니까. 되게 웃긴 건 여기 웨이터가 자기 전화번호를 줬엌ㅋㅋㅋㅋㅋㅋㅋㅋ 이탈리아 남자들이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도 마지막 날에야 확인하게 되는구나.

     

    산탄젤로 성

    미카엘 천사가 흑사병을 물리치게 도와줬다는 전설이 따라붙은 천사의 성. 야경이 좋다고 하는데, 역시나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저녁 때가 아니라서 그런가- 나는 그렇게 아름다운 줄 모르겠는데, 수정양은 성 자체를 봤다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밤의 베드로광장

    그리고 문득 산탄젤로 성에서 고개를 돌렸는데, 어둑어둑해지는데 불을 밝힌 베드로 성당이 또 아름다웠다. 다시 베드로 광장으로 걸어가서 로마에 마지막 인사를 했다. 바티칸을 지키는(지키는 게 본업인지 사진을 찍는 게 본업인지는 모르겠으나) 스위스 근위병과 사진을 찍을 기회도 생겨서 또 기분이 좋았다. 나의 유럽 여행에도 끝나는 인사를. 챠오,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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