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유럽 기록] 밀라노 2일차
    일상/여행지도 2012. 8. 7. 22:11

    *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성당(최후의 만찬)-산탐브로지오(성 암브로시우스) 성당-레오나르도 다 빈치 과학기술 박물관-두오모

     

    최후의 만찬

     

    오늘은 하루 종일 길을 헤맨 기억으로 가득하다. 수정양이 방에 교통 1일권을 두고 나와서 다시 돌아갔다 오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20분!

     

    9시 넘어서 남은 자리도 있었는데 괜히 무리해서 8시 반 타임으로 예약했나, 하고 3초쯤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이거 예약할 때 괜히 떨었었다. 전화로 예약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인터넷으로 예약하려고 했는데, 인터넷 예약은 이미 가득 찬 지 오래였다. 그래서 전화를 했는데, 연결이 역시 잘 안 됐다. 전세계에서 예약을 하려고 하니 당연한 일 같기도 하다. 근데 일단 연결이 되고 나니 아주 또박또박, 느린 발음으로 안내원이 받아주었다. 예약 번호를 불러줄 때에도 T for tokyo, E for elephant, 이런 식으로다가..

     

    8:00

    원래 예약시간 15분 전에 오랬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예약 시간 전에만 가면 되겠지, 하고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지하철을 탔다.

    8:20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성당에 도착했는데 막상 그림이 성당에 없다고 해서 당황했다.

    8:25

    그럼 뒤쪽으로 가야 하나? 이때가 5분전이었는데 뒤쪽에도 아무 것도 없어서 또 당황했다. 예약까지 했는데.. 내가 밀라노에 왜 왔는데.. 늦어서 못 보면 울 것 같은 찰나에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대충 이탈리아어로 ‘그쪽이 아니야’ 라고 추정되는 말을 해주셨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느낀 친절이었다. :) 영어는 서투셔서 잘 설명을 못하시기에 내가 저 너머 성당 앞쪽을 가리키며 ‘오버 데어?’ 하고 수정이 ‘낫 처치?’ 했더니 끄덕끄덕해주셨다. 어쩌면 주님이 도왔는지도 모르겠네.

    8:29

    알고 보니 성당 왼쪽에 있는 건물로 그냥 들어가면 되는 거였다. 아깐 왜 저걸 못 봤는지..

    8:30

    딱 30분에 도착. 사람들이 줄을 서 있길래 우리 차례까지 기다렸다. 30분 팀은 이미 입장했지만, 여기는 이탈리아니까 당연히 입장시켜주셨다.

     

    그렇게 정신없이 마주한 최후의 만찬.

    사실 여행 전에는 책으로 보던 그림을 그냥 눈으로 확인하는 게 큰 의미가 있나, 하고 생각했는데 유럽 와서 이것저것 보다 보니 원작이 주는 감동이 확실히 있다. 특히 최후의 만찬은 그림을 보는 순간 헉, 하고 충격이 너무 컸다. 그림을 바라보며 급하게 뛰어다니느라 콩닥거리는 마음을 좀 차분히 하고 싶었는데.... 벽에 가득 찬 그림을 보는 순간 탄식이 절로 나오고 마음이 콩닥콩닥했다.

    그리고 이 그림에서 나타내는 상황이 이렇게 차분하지 않은 줄 몰랐다. 예수가 너희 중 누군가가 나를 배반할 거라고 하자 다들 손짓발짓 유다는 베드로인가한테 밀려서 소금 엎고 아주 야단이다.

    그러면서도 간결하게 감동을 주는 그림이다. 나중에 다 빈치 박물관에서, 누구였나 이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자기 스타일로 다시 그린 걸 봤는데, 화려한 풍경과 시중드는 사람들이 추가되어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딱 간단한 창밖 풍경이 보이고, 단출한 벽 표현으로 공간감을 넓히는 이 그림이 딱 그 예수의 상황을 집중해서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았다.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성당

    어제 두오모 성당에서 엽서를 사면서 이 성당도 사진으로만 봤는데, 생각보다 깔끔하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소박한 성당이지만 분위기는 참 경건하다.

     

    이탈리아는 우리가 방문한 기차역들이 커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중앙역마다 역사 안에 성당이 있고, 공항에도 성당이 있었다. 그리고 핫팬츠를 입고도 막 성당에 기어들어가는 프랑스와 달리 이탈리아에서는 작은 성당도 복장규정이 엄하다. 아무래도 바티칸을 끼고 있는 나라여서 그런지 이탈리아가 훨씬 종교에 대한 예의를 여전히 지키고 있고 신앙이 깊은 나라인 것 같다. 덕분에 사진도 조심스러워서 찍지 못했다.

     


    산탐브로지오 성당(성 암브로시우스 성당)

    과학샘인 수정양이 관심 있어하고 나도 궁금했던 다빈치 박물관에 갔지만, 10시에 문을 연다고 해서 시간도 떼울 겸~ 가까운 산탐브로지오 성당, 성 암브로시우스 성당에 갔다. 그냥 <이탈리아 도시기행> 책에서도 봤고 누군가도 ‘가보세요~’ 정도로 인터넷에 글을 올린 걸 보고 갔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지금까지 훤칠하게 쌓아올린 성당들만 봤지, 이런 오래된 벽돌 건물은 처음이다. 여기저기 깨진 성당 장식물들과 벽돌이 주는 묘한 분위기. 게다가 사람도 별로 없다보니 이렇게 운치 있을 수가… 시간 여행 기분을 내며 청승 떨기에 딱이다.

    황제라도 죄를 뉘우치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소! 하고 위엄 있게 말하는 암브로시우스가 눈에 선했다. 얼마나 화려한 행렬과 많은 사람들이 이 성당 앞을 오갔을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 박물관

    사실 잘 모르겠더라. 우리나라의 과천 과학관 정도 되는 것 같다. 지금은 열려 있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견학 오면 이것저것 체험할 수 있을 것 같은 시설들이 많이 있었다. 꼭 다빈치뿐만 아니라 뭐 에너지, 잠수함 등등 과학에 관한 이것저것이 있었다.

    그래도 역시 내 눈을 끄는 것은 다빈치가 노트했던 것을 실제로 만들어놓은 것. 아마 저 중에 그가 계획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렇게 정교한 것들을 스케치하고 비행기. 인체. 건축 등등 수많은 분야에 능통했을까. 지금 세상에서도 그를 따라갈 만한 천재는 없는 것 같다.

     

    맛있는 피자

    가이드북을 보고 찾아간 피체리아 스폰티니. 책에는 피자가 한 종류밖에 없고 조각피자를 판댔는데 실제로 가보니 여러 종류의 피자가 있고, 우리가 ‘2 피스오브피자’를 달랬더니 조각피자가 아니라.... 피자 2판을 주셨다. 역시 맛집의 특성은 양을 많이 준다는 것이다. 4유로에 큼지막한 피자 한판이라니. 사람들이 정말 끊임없이 들어오고, 믿음직스럽게도 요리사가 문 쪽에 화덕을 두고 직접 피자를 굽고 있는 집이다. 나는 마르게리따, 수정양은 풍기를 시켰는데 이걸 들고 광장으로 가서 먹었다. 갓 구운 따끈따끈한 피자는 정말 눈물이 나게 맛있었다. 하지만 피자 2판은 아깝게도 반 이상 남기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도 다시 눈물이 나게 아깝다.

     



    두오모 옥상+내부

    드디어 도착한 두오모. 낮에 보아도 반짝반짝한 멋진 성당. 난 피렌체 두오모보다 밀라노의 두오모가 밖에서 보나 안에서 보나 더 멋있는 것 같다. 물론 피렌체 두오모엔 쿠폴라가 좀 무적이지만..

     

    예수 태형 부조가 있다고 소문난 그 철문부터 시작해서 오른쪽으로 돌아보았다. 가방 검사를 하는데, 군인들이 서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확실히 유럽이 우리보다 테러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프랑스에서도 관광지에서 군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유럽에서는 테러를 막는답시고 길거리와 지하철의 휴지통을 없애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두오모 옥상에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는데, 안내하는 아저씨가 내가 손에 든 큰 모자를 보더니 씌워주고는 모양을 잡아주더니 "벨라?"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한다. 무슨 뜻일까? 내려갈 때도 또 만났는데 또 모자를 씌워주고는 내릴 때 밝게 인사해주셨다. 역시 이탈리아 남자들은 여자를 좋아하는가보다.

     

    두오모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밀라노. 시야가 확 트이지 않는다. 역시 이탈리아의 경제 수도라,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꽤 높은 건물들이 눈앞을 막는다. 아래로 보이는 풍경보다 더 멋진 건 두오모 꼭대기에서 보는 두오모 그 자체다. 죽죽 뻗은 지붕들을 보는 게 더 시원했다.

     

    젤라또

     

    전날 헤매기만 하다가 못 먹은 젤라또. 그냥 이탈리아 젤라또는 다 맛있으니까 직접 만드는 곳에서 사먹으면 된다는 말이 생각나서, 두오모 성당 근처 쇼핑몰에서 그냥 사먹었다. 이탈리아에서 경험한 첫 젤라또. 내가 지금까지 한국에서 먹은 아이스크림 브랜드(그나마 배스킨라빈스 밖에 없다)가 엄청 달기만 했다면, 젤라또는 이탈리아 본토에서 먹는다는 분위기 때문인지, 달지만 너무 심하게 달지 않고 나름대로 향이 살아있었다.

     

    택시 체험

    급한 마음에 리퍼블리카 역에 왔는데, 출구를 잘못 나와서 또 막-헤맸다. 이탈리아는 파리보다 길이 제멋대로 나 있는데다가, 지하철역 입구가 문어발같이 여기저기 뻗어있어서 길 잃기가 더 쉽다. 젤라또 먹고, 내가 선글라스가 망가져서 또 사다보니 시간이 아슬아슬해져서 택시를 타기로 했다. 밀라노에서 지하철 24일권이 4.5유로였는데 택시비가 6유로에 육박하다니 이건 좀 사기인 것 같다. 택시 아저씨가 엄청 친절했지만 역시 그걸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 ‘호갱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근데 나중에 얘길 들어보니 30분 택시 타면 60유로씩 나온다는 말도 있고, 원래 이탈리아 택시가 그렇게 비싼가보다.

     

    트렌이탈리아, 이탈리아 너네 이런 나라였구나

     

    이탈리아 열차 첫 체험, 정말 충격적이었다. 내가 예약한 자리는 1번 coach의 18c,18d였는데 아예 1번 coach가 없는 거였다. 안그래도 역에 급하게 도착해서 정신도 없는데,

    1. 여직원에게 물어보았다. 남자 직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사람한테 물어보란다.

    2. 남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아무데나 앉으란다. 이때 우리처럼 우왕좌왕하는 다른 한국 소녀 발견

    3. 그럼 혹시 coach 2에 우리 자리가 비어있나? 봤더니 중국 사람들이 앉아있다. 남직원에게 이게 어떻게 되는 거냐고 다시 물어봤다. 아무데나 앉으란다.

    4. 다시 물어봤다. 아무데나라니요, 저는 이해가 안돼요.

    5. 남직원이 알았다고 따라오란다, 그러고는 정말 아무 빈 자리에 나와 수정양을 앉혔다. 수정양 옆 창가에는 다른 아저씨가, 내 자리 옆 통로쪽에는 어떤 아줌마가 앉아있었다.

     

    헐? 이럴 거면 기차 예약은 왜 받은거지, 하고 한동안 벙쪄있었다.

     

    기차가 출발하고 나서 옆자리 아주머니에게 ‘이 자리 예약하셨어요? 원래 이래요?’ 물어봤더니 원래 아무데나 앉는 거란다. 아주 자연스럽게, “원래는 빈자리가 많은데 7,8월은 힘들죠? 이 열차 처음 타요?” 라고 해주셔서 어째서인지 나도 자연스럽게 납득하게 되었다.

     

    근데 나중에 보니 이건 별것도 아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미리 전광판을 보고 기차를 타려고 가서 서 있다 보면, 갑자기 막 플랫폼이 바뀌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이것도 처음에는 황당했다. 우리가 한참 동안 13번 플랫폼에 서 있었는데 거기 전광판에 어느 순간 이상한 글자가 뜨는 걸 발견한다. 그리고 저기 넘겨다보면 9번 플랫폼 전광판에 우리가 타려던 열차 번호와 목적지가 찍혀있는 식이다.

    심지어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서도, 항공권에도 게이트가 D4로 되어있고 안내받을 때도 D4라고 했는데, 이륙 30분 전에 그 게이트에 가보면 왠 다른 비행기가 있다. 그래서 다시 인포센터를 찾아보았더니 게이트가 D1로 바뀌어 있었다. 새삼 한국의 서비스가 얼마나 좋은지, 아시아 국가들이 얼마나 경쟁력 있는지 느끼게 된다.

     

    다행히 베네치아에서는, 메스트레 역 바로 앞에 호텔이 있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호텔이 보이는 위치였다. 오늘 유일하게 헤매지 않고 헷갈리지 않고 찾아갔던 곳인 듯하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