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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상 정리, 생활 정리
    일상 2012. 11. 18. 10:36


     책상 정리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계기는 사실 엉뚱했다.

    아마도 10월 말, 학기말 생활기록부 업무가 조금씩 마음을 누르기 시작하고 부장님의 압박도 조금씩 정도를 더해가던 날 저녁, 학교를 마치고 운동하러 가는 길에 꽃집이 있다. 국화가 예뻤다. , 벌써 국화가 나오는 계절이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마치 작년에 나래를 우리 집에 데려오자고 마음 먹던 날처럼

    마음이 고단하면 괜히 청승 떨고 이상한 로맨틱한 것을 찾게 되는데

     

    어쨌든 그런 마음에서 국화꽃을 사고 싶다고 잠시 생각하다가,

     

    학교의 내 책상이 떠올라서 참았다. 꽃이 놓여있으면 꽃도 쓰레기로 보일 것 같은 그런 상태였다.

     

    그래서 국화가 어울리는 책상을 만들겠어!’ 하고 벼르기 시작했다.

    책상 위 책장, 책상 옆의 긴 사물함, 개인에게 주어지는 장, 첫 번째/두 번째/세 번째 서랍에는 무엇을 넣을지 생각하고

    자주 쓰는 물건은 책상 위에 두는 게 편할까 첫 번째 서랍에 넣는 게 편할까도 생각하고

    자주 쓰는 물건을 다 꺼내놓으면 지저분할 것 같으니 무엇을 꺼내 놓고 무엇을 서랍에 둘까도 생각하고

    쌓여만 가는 아이들 글쓰기 과제는 장에 넣을까 서랍에 넣을까

    보안이 필요하지만 자주 손이 가는 파일을 책상 위에 두어도 될까

    등등을 생각하며 대충 머릿속으로 배치를 했다.

     

    그리고 금요일, 시간표가 바뀌어서 1교시가 사라졌다. 그 시간 동안 버려야 할 것들을 싹 내다버렸다. 출판사에서 가져다 준 보지도 않는 참고서들부터. 옆자리 선생님 아들이 읽을 만해 보이는 건 선물하고, 국어능력인증시험은 카톡 프로필에 올려두고 가져가라고 광고했다.

    끊임없이 나오는 유통기한 지난 초콜릿들. 초콜릿을 좋아한다고 해서 친구들도, 학생들도 종종 가져다 주었는데 결국 여기 처박아둔 줄도 모르고 먹지도 못했구나.

    게다가, 작년 전교생 생활기록부 점검 자료와 전체 졸업생 생활기록부가 아직까지도 내 개인 사물함에 있었다. 이러니 공간이 없지, 하면서도 정리를 내가 정말 오래 미룬 것을 반성했다.

     

    사실은 집에 버린것도 많다. 올 봄 추울 때까지 사물함에 쟁여두고 꺼내 쓰던 담요, 수면양말, 니트 가디건. 국어 교육 관련된 책들이지만 막상 학교에서는 시간이 없어서 보지 못했던 것 등등.

     

    학교에서는 출석부 월말 정리를 하다가, 우리 반 아이가 사고를 치면 상담을 하고, 경위서를 쓰게 시키고 나서 나는 상담록을 쓰고, 그러다 인터폰이 걸려와 나이스에 관련된 질문이 들어오면 그것에 대해 알아보고 안내를 해 주다가, 다음 날까지 걷을 가정 통신문이 있으면 또 그걸 신경 쓰다가, 인쇄실에 가서 수업 프린트를 찾아오는 식으로 생활하게 된다. 그러면서 수행평가 채점을 할 글쓰기는 시간 날 때 틈틈이 봐야 하니까 책상 옆에 또 쌓여있고. 그래서 나는 처리해야 할 일거리들을 책상에 쭉 쌓아놓았고, 원래 학교 일은 잡일이 많으니까 책상이 더러운 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내가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업무 정리가 안 되어 있고

    이거 급하면 이거 하고,

    그러다 저거 생각나면 저거 하는 식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책상 정리가 안 된 거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다보니 책상 위에 쌓여 있는 거 하나를 집어서 일 하다가,

    화장실 다녀오면 다른 일을 하다가,

    수행 평가도 몇 반 것, 몇 차시 것부터 채점해야 할지도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막 여기저기 쌓아 두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학교 업무에 있어 통제가 안 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요즘 정리의 힘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보면서 역시 세상엔 나처럼 정리를 못하는 인간이 많은 거라고 위로 받는 정도였는데 정리를 하면서 과연 깨닫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나서 또 달라진 점.

    한번 제대로 정리를 하고 나니 계속해서 이 깨끗함을 유지해야겠다는 의무감 비슷한 것이 생겼다. 그래서 책상 위에 일거리를 쌓아놓는 대신 해야 할 일들을 메모하게 되었다. 원래 포스트잇을 쓰기는 했지만 주로 마감일에 따라 순위를 정하는 식으로 할 일 관리를 했었다. 바빠지면 마감일에 따라 급한 것부터 위로 책상에 쌓아두고 말이다. 그런데 다 제자리에 꽂아두려고 하니 좀더 업무의 우선순위를 따지게 된 것 같다. 학급 아이들과 관계된 것이 1순위, 수업 준비와 관련된 것이 2순위, 좀 버텨도 될 것 같은 학교 업무가 3순위 하는 식으로.

     

    , 교실 청소에도 좀더 집착하게 되었다. 깨진 유리창 효과던가? 뉴욕의 지하철 낙서를 다 지우고 거리를 정돈했더니 범죄가 줄어들더라는. 아무래도 학기초보다 교실에 쓰레기가 많아지는 것도, 아이들이 학교 생활에서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 아닐까. 교실 바닥이 깨끗해지면 좀더 긴장된 상태로 교실을 쓰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교실 정돈에 신경쓰기 시작했다. 이 효과는 그런데 아직 좀.. 관찰할 필요가 있겠다. 아직은 바닥이 깨끗해져서 담임의 기분이 좋아지는 수준이다.

     

    정리는 곧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이다. 나는 왜 이걸 이제야 알았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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