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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에 찬 화장대 정리일상 2012. 11. 18. 11:10
그러고 보니 혼자 살 때에는 매일 방바닥 걸레질을 했던 것 같은데, (물론 초반에만) 왜 집에서는 이렇게 내 방 정리를 안 하는 것일까. 그건 아마 엄마가 존재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엄마가 버럭 하시겠지만. 더러우면 자꾸 엄마가 정리를 해 버리니까,
나는 물건을 찾을 때마다 “엄마, *** 어딨어?” 물어 보게 되고,
엄마가 말해줘도 그 물건은 거기 없고,
엄마가 직접 손을 뻗으면 그 물건이 나타나는 기적이 잦아지면서
점점 내 방이라는 공간이 완벽히 내 통제 하에 있는 게 아니게 되고 그러다보니 나는 점점 정리에 대한 책임감도 없어지고 그런 게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또 엄마가 내 방을 완벽히 통제해서 정리하는 것도 아니다. 뭘 버려야 하고 뭐가 내가 급히 쓰는 것들인지 완전히 꿰고 있는 게 아니니까.
이 말도 안되는 무책임한 고리를 끊는 방법은 내가 하루라도 빨리 내 물건들을 정리하는 수밖에 없어!
마음은 급하지만 평일에 막상 집에 오면 매일 뻗어버리곤 했다.
원래는 옷장 정리부터 하고 싶었다. 옷은 매달 매년 사는데 매일 아침에 입을 옷이 없는 이것 또한 옷장의 신비. 대학생이다가 직장 생활을 하게 되고, 또 직장 첫 해 때와 지금의 옷 스타일이 바뀌는 탓도 있겠지만 아마 내가 무슨 옷이 있고 어떤 식으로 코디를 할지 생각하지 않고, 계속 좋아하는 “비슷한” 스타일의 옷만 사 제끼는 게 가장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옷을 버리고 또 옷장을 뒤엎는 게 워낙 엄두를 내기가 어려워서, 일단 화장대부터 도전하기로 했다.
문제는 샘플. 사실 올해 초쯤 알아버렸다.
언젠가 여행 갈 때 쓸 것 같아서 샘플을 모아두지만,
막상 내가 여행을 그렇게 자주 가는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모아둔 샘플들을 다 쓰는 데에만도 몇 달은 걸릴 거라는 사실을.
그래서 아주 오래된 샘플은 버리고, 샘플을 받으면 바로바로 쓰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샘플은 하나도 없었다.
그게.. 그나마 샘플은 소모품이니까 쓰기 쉬웠던 듯한데, 칫솔 치약 세트가 2개, 사은품으로 받은 파우치가 7개쯤 화장대 마지막 서랍에 정신없이 쌓여있는 게 문제였다.
나는 정리를 하면서 내가 잘 버리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칫솔 치약 세트만은 왠지, ‘이것들도 소모품인데 나중에 필요하다고 또 사면 돈 아깝잖아’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지막 서랍에 남겨두기로 했다. 대신, 여분은 딱 2개를 유지하자고 원칙을 세웠다.(까먹을까봐 적어둔다) 그러니까, 또 어딘가에서 자사고 홍보물 같은 걸로 칫솔 치약 세트를 받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원래 있던 것 하나를 버리는 걸로.
그리고 파우치는 망사로 된 거 2개, 천으로 된 것 2개를 남기고 다 버렸다. 지금 쓰고 있는 걸 제외한 거니까 조금 많이 남긴 것 같기도 한데 일단 두고 봐야겠다. 파우치는 이제 어디서 준다고 하면 다 사양해야겠다. 크리니끄 같은 데에서 이쁜 파우치에 샘플을 주면 받아왔었는데, 괜한 욕심을 내서 지구에 쓰레기를 늘린 것을 반성하였다.
그리고 또 화장대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상자.
귀걸이나 목걸이 함..특히 선물 받은 시계 같은 것은 (제품 크기에 비해) 엄청 큰 상자에 들어있는데 그 상자가 단단하고 예뻐서 버리기가 망설여진다.
그리고 정리를 하다보면 상자가 있으면 참 유용하다. 그래서 문구 사이트 같은 데에서 정리함이랍시고 플라스틱 상자들을 팔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걸 사는 건 짐을 늘리는 거야! 상자나 우유팩이 생길 때마다 그런 걸 활용해야지! 하고 모아 둔 상자들이 아무데나 쌓여서 서랍을 오히려 정신없게 만들고 있었다.
결국 상자도 다 버리지는 못하고, 두 개의 단단한 시계 상자는 남겨 두었다. 나머지는, 정리에 필요한 것만 빼고 다 버렸다. 나중에 상자가 필요해지면, 오레오랑 흰 우유를 사먹고 그 상자들을 쓰면 되겠지.
어쨌든 그동안 상자곽들을 모아둔 건 참 다행이었다. 늘어난 머리끈이나 기름이 너무 많아서 쓰지 않는 크림 등등 버릴 것들은 죽 버리고, 상자에 맞게 넣기만 하면 되었다. 결국 정리는 수납의 문제가 아니라 과감히 버리는 것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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