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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체 나는 언제 어른이 된단 말인가
    일상 2012. 10. 24.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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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은 아침부터 유난히 위가 아팠다. 아침을 조금 배부르게 먹은 날은 종종 있는 일이지만, 감기 기운도 있고 그 전날에 편집국 회의도 다녀오고 해서 피곤하고 힘든 날이었다. 일주일 중에서 그 날을 떠올려도 그렇고, 2학기가 시작된지 두어달 째- 아마 나의 체력에도 마음의 여유에도 한계가 오고 있는 듯하다.

      그날 오전, 3교시 혹은 4교시였던가. 아이들은 여전히 설명 중에 뜬금없이, "쌤, 오늘 밥 뭐예요? 맛있어요?" 묻기도 하고, 내가 설명하는 중간에 "아 진짜 재미없어요, 그걸 개그라고 해요?" 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그러면 그냥 웃으면서 넘기곤 했는데, 어쩌면 그것도 내가 수용할 수 없는 범위인데 참고 있었던 걸까? 그날 따라 좀 짜증이 났다. 아마 그 시간에 소설을 직접 눈으로 읽어보고 날개 질문을 채우라고 했는데 산만하게 체육대회 팀을 짜고 체육대회 피켓을 만들고 있는 아이들이 많아서 더 애를 먹고 있었던가 그랬을 거다. 그래서 "그걸 개그라고 해요? 냄새나" 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너 말 진짜 이쁘게 한다"라고 나도 모르게 쏘아붙였다. 그랬더니 역시나, 대답은, 

    "네. 제가 좀." 


      그 순간 왜 그렇게 머리끝까지 화가 올라왔는지 모른다. 그래서 다다다다 애들한테 이야기했다. 야, 나도 힘든 날이 있고 아픈 날도 있다, 너네가 하는 버릇없는 장난을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는 날도 있다, 그런데 너네는 어쩌면 한결같이 이딴 식이냐,

      여기까지 말하니 어째 애들한테 화를 내면서 더 화가 폭발하는 느낌. 

      섭섭한 마음과 피곤함, 답답한 마음 등등이 막 섞여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진정 좀 하자는 생각에 일단 밖으로 나왔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빙신같이 찌륵찌륵 눈물을 뽑다가 아 이게 또 무슨 어린애같은 짓이야, 5초만에 자책을 시작했다. 그럼 뭐 애들도 수업 시간에 스트레스를 받고 감정이 폭발할 것 같은 상황이 되면 막 뛰쳐나가도 되는 건가? 에휴.. 하튼 머쓱한 마음에 아이들에게 수업 시간에 나간 것에 대해서는 사과를 하고 기타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남은 수업을 했지만 2주쯤 지난 지금에도 너무 부끄럽다.


    2


      3월부터 우리반과 갈등을 계속 겪고 있는 일이 있다면 바로 종.례.시.간.

      사실 종례 때 특별한 일이 아니면 내가 하는 말은, 지각해서 벌 받는 사람 이름 부르고, 청소 당번 불러주고, 무단 결과한 아이들에게 남으라고 하는 것뿐이다. 5분도 안 걸릴 이야기인데, 뭐랄까... 사람의 몸에서는 어떻게든 신기하게 계속 침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애들은 어떻게든 신기하게 할 말이 맨날맨날 매시간 매분 매초 쏟아져 나온다. 6-7시간 붙어있었던 친구와도. 다행히 종례시간은 그와 동시에 집에 1초라도 일찍 가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최고조에 달하는 때이기 때문에 기다린다. 덕분에 학교 신문에 선생님들의 유행어를 싣는 코너에 나는 "선생님 얼굴을 1초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종례 좀 하자)"가 실렸다.

      이럴 때 가장 좀 신경이 예민해지는 건 다른 반 아이들이 우리 반 문이나 창문을 벌컥벌컥 열어제낄 때. 우리 반 아이들이야 뭐 교실 안에 있으니 지도하면 되지만, 그런 걸 보고 내가 복도 밖으로 나가봤댔자 막상 문 연 놈은 휙 도망가 버린 후이기 일쑤고 복도에 대고 소리를 질러봤자 다들 "저 아닌데요?"만 복창하고 제대로 영향력이 닿지도 않으니. 

      이날도 힘들게 종례를 하고 인사를 하려고 하는 중에, 앞문을 벌컥 열고 다른 반 아이가 우리 반 아이를 불러서 교복 가디건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 주변 아이들은 "이거 그냥 가디건 주는 거예요." 라고 하는데, 내가 요즘 예민해진건가? 종례 시간에 문을 벌컥 열고 물건을 건네는 것, 그리고 그게 아무 잘못 아닌 것처럼 말하는 데에 화가 났다. 그러고 보니 1학년 애들은 요즘 수업 시간에도 중간에 뒷문을 열고 다른 친구를 불러서 책 빌려가고 체육복 던져주고 하는데 계속 그런 것들에 대한 거슬리는 마음이 쌓여왔던 것 같다. 나는 자꾸 휙 나가버리는 게 문제다. 애들의 태도를 지적하고 나서, 우아하게 그냥 인사받고 끝내면 되는데 '아 씨 뭐, 빨리 끝내주기나 하지' 이런 표정을 보니까 또 화가 나서 종례 시간인데 ~~해야지, 하다가 기분 나빠서 너네 인사 못 받겠으니까 그냥 가라고 하고 나왔다. 


    3


      그리고 가장 최근의, 나의 미성숙한 처리.

      1반이랑 우리반이 핸드볼을 했는데, 우리 반이 이겼고 그 바로 다음 시간에 내가 1반 수업을 들어가는 거였다. 점심 시간을 끼고 있었는 데도 애들이 울고불고 난리다. '심판이 우리 파울만 잡고 걔네 파울은 안 잡아요.' '우리 라인 아웃은 잡았어요.' '처음부터 2반이 우승 후보라고 막 그랬어요.' '**가 제 팔 잡았단 말이에요.' 등등- 사실 어찌 보면 내가 학교 다닐 때도 친구들과 이야기했던 뻔한 것들. 우리 반이랑 경기해서 그런 거니까 좀 민망하기도 하고 하도 애들의 감정이 격해 있으니까 좀 달래주고 수업을 하자 싶었다. 심판에게 그냥 깔끔하게 승복하고 스포츠 정신에 맞게 경기해라, 라고 말해줄 수도 있었지만 뭐 애들 감정을 조금 받아주고 싶었달까. 그래서 애들이 계속 징징을 하는데, 이걸 계~속 하다보면 애들이 얘기하다가 제풀에 더 화를 낼 것 같고, 그냥 '너네가 2반 담임인 내 앞에서 이렇게 말할 정도면 쌓인 게 많구나, 그런데 그렇게 화나는 생각을 계속 발전시키다보면 더 화가 나고 그런 거니까  진정하고 너희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잘 될 지를 더 생각하자.'고 했는데 나중에 수업 끝나고 나오니 이도 저도 아닌 느낌-. 아예 징징대는 애들을 훈계하고 납득시킨 것도 아니고ㅡ어쩌면 아이들에게 더 필요한 건 그런 이성적인 생각일 수도 있는데ㅡ, 그렇다고 감정을 제대로 받아준 것도 아니고, 나는 참 부족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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