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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 시수 증가가 생기부 담당자에게 미친 영향일상 2012. 12. 19. 06:43
교육부에서 또 무리하게 체육 시수를 늘리라고 한 덕분에, 3학년은 수학 선생님이 [창의적 재량활동]에서 체육 수업을 한다. 또, 체육 시간 강사가 [계발활동]으로 체육 수업을 한다. 체육 시간이 늘어나는 건 좋은데, 학교에서 계획할 시간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학교교육과정은 한 해가 시작할 때 계획해서 그대로 하는 게 상식 아니야? 하는 질문은 뒤로 미루고,
체육 시수 증가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리해 보기로 했다.
창의적재량활동은 원래 담임이 기록한다. 우리 학교만 그런가? 하튼 작년에도 담임이 했다. 계발활동은 원래 계발 담당 교사가 입력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체육 시간 강사가 인증서를 받아서 나이스에서 책임지고 기록하기가 힘들다며, 교육청에서 생활기록부 연수 때에는 담임들에게 권한을 주고 입력하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어떤 선생님이 ‘담당 교사가 입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제기해서 부장님께도 말씀드렸는데 담당 교사가 입력해야 하는 게 맞긴 맞다. 나도 교육청 연수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말고 그냥 나이스란 게 뭔지도 잘 모르는 체육 강사쌤들에게 하나하나 가르쳐 드리고 입력시키는 게 더 나았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어쨌든 생활기록부 담당자로 내가 한 일들은 다음과 같다.
맨 처음에는, 대체 학교스포츠클럽이 뭔가, 개념이 잡히질 않았다. 원래 나이스 상의 [학교스포츠클럽]은 체육 선생님들이 운영하는 방과후학교 스포츠 활동이나 학교 농구부, 이런 거였는데 여기다가 애들을 넣으라는 얘긴가? 애들 말로 하자면 ‘멘붕’이었다.
다행히 우리 학교 체육 선생님이 제대로 알려주셨다. 그 학교스포츠클럽은 서울시교육청에서 애들 체육활동을 늘리려고 만든 개념이고, 이번에 체육 시수를 늘리라면서 ‘학교스포츠클럽’으로 늘리라고 한 것은 교과부에서 만든 개념으로, 그냥 이름이 예뻐서 갖다 쓴 거라고 생각하면 된댔다. 별개로 운영되는 거라고.
다른 학교에서 생활기록부를 담당하는 다른 친구들도 이게 대체 뭐냐고 하길래 ‘그 학교스포츠클럽이 그 학교스포츠클럽이 아니래~’ 하고 아는 척 좀 해주고, 기다리고 있자니, 학교스포츠클럽은 계발활동으로 넣으라는 공문이 왔다.
그래서 그때부터 한 일.
반마다 수업하는 날짜도, 시수도 다르니까 담임선생님들이 입력하면서 혼란스러울 것 같다. 걱정이 되어서 [창체 출석부]를 만들고, 계발활동으로 입력되는 체육 강사 선생님, 창의적재량활동으로 입력되는 체육 담당 선생님께 학기 초에 직접 출석부를 전해드리고, 실제로 수업한 날짜와 출석 상황을 기록해 달라고 했다. 라벨지를 오려 파일을 36개 만들고, 수업계 선생님께 어떤 반 수업을 어떤 선생님이 하는지 여쭤보고, 창체 출석부 기재 안내 매뉴얼을 만들어서 메신저로 뿌리고, 수업할 때마다 꼭꼭 기록해 달라고 당부하면서 선생님들께 전해드렸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나이스로 돌아와서 한 일.
창의적 재량활동 영역에서 [학교스포츠클럽]이라는 주제의 프로그램을 개설해야 한다.
그리고 각반 담임선생님들을 한 명 한 명 수동으로 ‘그 주제’의, 창의적 재량활동 ‘해당 반’ 담당 권한을 주어야 한다.
그 다음에 담임선생님들에게 창의적 재량활동을 어떻게 입력하는지 안내해야 한다. 날짜는 어떻게 설정하고, 어떤 영역을 설정해야 하는지, 화면을 캡쳐해 가면서 매뉴얼을 만들었다.
계발활동에 입력해야 하는 건 조금 더 손이 많이 간다.
[스포츠클럽]이라는 계발활동반을 만든다.
그 다음에 그 계발활동반에서도 1반, 2반,.....9반까지 또 만든다.
그리고 담당교사는 체육 강사지만 담임 선생님들이 입력해야 하니까, 또 한 명 한 명 수동으로 담임 선생님들께 계발활동 해당반 담당 권한을 주어야 한다.
그 다음에 담임 선생님들께, 아이들을 스포츠클럽 반에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 안내하는 매뉴얼을 만든다. 여기에서는 [중복 부서 배정] 기능을 써야 하는데, 그렇게 안 하고 나서 꼭! ‘저기요. 이거 부서 배정하면 원래 얘가 들어있던 동아리에서 빠지잖아요. 그거 어떻게 해요?’라고 묻는 선생님이 있다. 그리고 이거 안 하고 다음 작업부터 하면서 왜 안되느냐고 묻는 선생님이 있다. 담임 선생님들도 귀찮으시긴 할 거다. 한 반의 30명을 한 명씩 클릭해서 스포츠클럽 *학년 *반에 집어넣어야 하니까. 그런데 담임 선생님들도 귀찮으시겠지만 이때, 이를테면,
자기가 1학년 2반 담임이면서 애들 한두명을 스포츠클럽 2학년 2반에 넣은 선생님이 있어서, 그걸 2학년 2반 선생님께 연락을 받고 내가 걔네를 1학년 2반으로 고쳐줘야 하는...
나도 귀찮다.
그리고 나서 또 어떤 내용을 입력해야 하는지 모르니까, 체육 강사한테 찾아가서 차시별 프로그램을 받아온다. 이런 이런 내용을 누가기록에 입력하세요, 시수는 반마다 다르니까 출석부를 참고하세요, 또 화면을 캡쳐해서 매뉴얼을 만들고 뿌린다.
그러다 보니 계발활동 시수에는 원래 학교에서 하는 계발활동 시수와 체육 시수가 합쳐진다. 여기다가 방과후에 하는 학교스포츠클럽도 합쳐진다. 그래서 ‘계발활동 시수에는 원래 계발 시수+체육B수업+방과후 스포츠반 시수가 합쳐져서 반마다, 아이들마다 시수가 달라요.’라는 메시지를 몇 번이나 보냈는데 “쌤! 이거 누가기록 25시간으로 제가 잘 입력했는데 왜 40시간 떠요!!!!!”라는 인터폰을 10번 이상 받았다.
더 뒷목 잡는 상황은, 담임이 아닌 선생님들이 수동으로 계발활동 이수시간을 25시간으로 바꿔놓는 거였다.
이러면 나는 또 담임샘들한테 ‘생기부 반영하시기 전에 계발에서 이수시간계산 버튼 한번만 눌러주세요.......’라고 또 시켜야 하고 혼자 욕을 먹는다.
그런데 또 웃기는 것은, 전에도 동아리/계발활동을 생활기록부에 입력해 달라고 전교사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우리 학교에서 가장 나이 많고 나이스에도 서툰 선생님께서 그것에 대해 질문했던 기억이 분명히 있는데! 나는 그러니까 분명히 메시지를 보낸 건데! 아직도 계발활동 입력을 안 한 선생님들이 많다는 것이다. 담임 선생님들이 많이 말씀을 하시길래 오늘 꼭 입력하시라고 메시지를 또 뿌렸다.
그러고 복도를 지나가다가 타박을 맞았다.
“쌤, 일단 동아리 활동이 입력이 되어야 담임이 스포츠 입력도 하고 그런 거 아니에요? 그걸 오늘에서야 하라고 하시면 어떡해요? 지금 다들 얼마나 복잡하고 난린지 아세요?”
앞에서는 선생님, 전에 메시지 보냈었어요^^ 하고 돌아섰지만 이렇게 작은 불만에도 마음은 봇물 터지듯 무너졌다.
‘쟤는 맨날 우나?’ 라고 할까봐 교무실에서도 꿋꿋이 캔디같이 일하려고 했는데, 부끄럽게 4층 복도에서부터 눈물이 나서 고개 숙이고 애들 인사도 안 받고 내 자리로 왔다. 지금 생각해도 참..
그 와중에 또 막 인터폰이 온다. ‘선생님, 저희 반 출석부랑 창체 출석부에 다 8월 **일에 수업한 걸로 되어 있는데, 날짜 선택창에 날짜가 안 떠요.’ 이 전화도 오늘 3번쯤 받았다. 나이스가 틀릴 가능성이 더 낮으니 그 날 정말 수업했는지 확인해 보시라고 하면 확실하댄다. 그래서 나이스를 막상 열어보면...
그 날 수업을 안 한 경우가 100%. 다른 요일에 수업했거나, 심지어는 천재지변으로 인해 그 날 휴업일이었던 적도 있다. 실수인 거 안다. 나도 실수 많이 한다. 그런데 이게 모든 담임쌤들이 이런 식으로 질문하고 그 반 시간표를 검색하고 있자면 내가 민원 처리인이 된 것 같다. 여담이지만 그래서 나는 반에서 컴퓨터가 잘 안 될 때 정보도우미를 큰 소리로 타박하는 애들이 진짜 싫다. 정보도우미도 반을 위해서 봉사하는 똑같은 학생이지, 우리 반 컴퓨터를 설치해주는 A/S 기사가 아니다. 그럼 그 봉사하는 시간과 정성을 인정해 줘야지 어디다 대고 불평질이야.
다른 학교에 근무하는 친구는, 그 학교 생기부 담당 선생님은 그냥 교육청에서 내려온 매뉴얼만 주고 알아서 하라고 했다는데 차라리 그게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담임선생님들이 일하다가 중간에, 이거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하고 내가 보낸 메시지가 쌓이면 얼마나 그게 정신없고 짜증나는지 왜 내가 모르겠는가. 왜 내가 모르겠어!!!!!!!!!! 나도 담임이라서 나도 우리 반 내용을 입력해야 되는데!!!!!!!!!!
그러고 나서 집에 오니 정말 생산적으로 보이는 일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래서 웹툰 ‘미생’을 보고 있는데 주인공이 회사 업무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기획이 어쩌네, 현장이 어떻고 사무실은 어떻네, 하는 걸 보면서,
대체 내가 이렇게 눈물 뽑아가며, 수업 시간에도 늦어가며 한 이 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 허탈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나이스나 생활기록부 업무도 결국 애들 생활과 관련된 행정 업무니까, 잘 기록하자고 생각해왔다. 창체 출석부를 나눠주고, 매뉴얼을 만들 때까지만 해도, 내가 조금 더 창의적으로 일해서 선생님들이 더 쉽게 처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자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왜 내 능력을 이런 데에 발휘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 ‘삽질’이란 말이 참 절묘하다. 정말 그냥 힘들여서 구덩이 파고 다음날 힘들여서 구덩이 메우는 그런 일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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