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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두 개의 문>을 보고 나와서, 같이 본 친구에게 했던 첫 마디는
"이거 참 잘 만든 것 같아."였다.
나는 영화도 뭣도 모르는 사람이라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뭐랄까 이런 주제를 다룬 영화 특유의 거친 느낌이 많이 들지 않았다.
영화에서 대놓고 목적 의식을 드러내지 않고, 대놓고 주장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일까.
이 영화가 왜 그들은 망루를 세울 수밖에 없었는지에 집중하고 철거민들과의 인터뷰 위주로 흘러갔다면 지금만큼 흥행하지는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진압을 위해 투입된 경찰들도 피해자였다는 점을 조명하면서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폭력에 분노하거나, 철거민들을 동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어떤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경찰 특공대원들도 피해자다'라는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지도 모른다. 내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마음 편하게 경찰도 철거민들도 희생자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도 전의경 출신 젊은이들이 시위하는 사람들을 욕할 때에 좀 기분이 꼬이기는 하지만, 영화 <박하사탕> 같은 데에서도 드러나듯이 그들 또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지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들이 집회에 대해 갖는 그 나쁜 기억이나, 군 복무 중에 '시위대=빨갱이' 등의 고정관념이 생성되는 것만으로도 이미 피해자인지도 모르겠다.
폭력
역시 영화를 보면서도 직업병은 발동했다.
첫째로, 교사인 나의 역할을 조금 돌아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학교는 공문에서 하라는 대로 이것저것 실시하게 된다. 국가 정책대로 학습부진아 보충수업도 하고, 학업성취도평가도 보고, 방과후학교에서 그냥 내신 수업하고.. 등등. 이런 것들을 하면서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많았던가? 그냥 위에서 지시가 내려와서 나갔다는 특공대원과 크게 다른가? 어쩌면 내가 열심히 한 어떤 일이 크게 보면 아이들에게 정말 나쁜 일은 아니었을까? 이를테면, 내 딴에는 열정이랍시고 시험 전날 국어내신반 아이들에게 보충수업을 한 것은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두 번째는, 내가 요즘 계속 고민하고 있는 폭력에 관한 문제.
영화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계속 ‘무관용 원칙’을 고수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내 뒤에 나오던 관객은 문을 나서면서 “정부는 무관용인데, 국민들은 아주 관용이 철철 넘치네.”하고 자조했다. 그렇다. 뭔가 정부가 여기를 개발할테니, 어디 가서 전세도 안되는 보상금을 주면서 내가 살던 곳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면 선뜻 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 이들에겐 반대할 권리가 없다 한다. 그리고 요즘은 파업을 하고 나면 손해배상을 하라고 막대하게 벌금을 물리는 게 무슨 유행인 것만 같다. 파업은 뭐, 심심해서 하는 건가. 협상이 안되면 마지막 수단으로 하는 게 파업이고, 사용자에게 경제적 타격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데 거기다 손해배상을 하라고 하면 당연히 파업하지 말라는 뜻이 아닌가.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 해. 반대한다고 망루를 세워? 너 바로 진압.’과 비교하자면....
싸우고 나서 혼나는 애들도 처음에는 걔가 맞을 짓을 했다고 펄펄 뛰지만 나중에는 감정부터 앞서서 주먹이 나간 것은 잘못했다고 인정할 때가 많다. 애들한테 학교 폭력 대책을 세울 게 아니라 공권력 폭력 대책부터 필요할지도.
관심
내 옆에서 이 영화를 같이 본 친구는, 어이없게도 이 영화를 보다가 졸았다.
영화 내내 이어지는 긴장감을 견딜 수가 없어서라고 했다.
평소에 선동적인 걸 싫어하고 합리적인 그 친구와는 다르게 감정이 앞서는 나의 입장에서 돌아보면,
영화 보는 내내 심장이 발딱발딱 뛰었다. 어느 지점에서 더 열받고 말고 할 것 없이.
사실 이 감정은 이 사건에 대해 신문기사를 읽을 때 이미 느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뭔가 내가 할 수 있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많이 부끄러웠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에서 사실 새로운 사실을 우리에게 폭로하지는 않는다.
그간 법정에서 진행된 일들과 언론을 통해 밝혀진 사실들을 잘 조직했을 뿐이다. 역설적으로, 이렇게 균형적으로 보아도 용산 참사의 원인이 단순히 경찰이나 철거민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을 더 잘 드러낸다.
나는 예전에 만났던, 자기는 뉴스나 신문을 보지 않고 지낸다는 사람이 생각났다. 그 사람은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원래 자기는 미국에 있을 때에도 신문을 잘 안 봤다고 한다.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다고 했나, 어차피 자기랑 상관없다고 했나, 그 이유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를 만났을 당시에는 미국에서 돌아온 지 몇 달 안됐을 때였는데, 뉴타운이 뭐야? 무상급식이 뭐야? 따위의 질문을 해서 상식적인 설명을 해줬던 게 기억난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뉴타운 공약으로 당선된 새누리당의 모 국회의원의 사촌동생이어서 민망했었다.
어쨌든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사회에 무관심하게 살 수 있는 것도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파업, 철거, 인권 뭐 이런 것에 대해 어려움을 느낄 일이 없는 인생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냥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신문을 안 보고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시간에 그냥 위에서 시키는 일을 효율적으로 다 하고, 내가 어떻게 하면 돈 조금 더 벌까, 어떻게 하면 돈 많은 배우자를 만날까, 이번 방학은 뭐하고 놀까 고민하면서. 하지만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 어쩌면 누구의 피땀 위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내가 행복한 동안 나와 같은 세상의 누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아닌지 눈을 감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의무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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