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일상 2014. 8. 28. 22:08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혼자 본 영화이다. 그러니까 '함께 보는 누군가'가 목적이 아니라, 영화감상 자체가 목적이었다. 해인이가 워낙 추천하기도 하고, 선산 오빠가 페북에다가 좋은 평을 썼던 영향도 컸다. 기대하면 실망이 따라오는 줄 알지만 저절로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해서,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KU시네마테크를 찾았다. 아담하고 한적한 극장.
    영화표를 샀더니 포스터를 주었다. 오늘 여기저기 다닐건데 받지 말까.. 하다가, 어쨌든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거니까 받았다가, 영화가 재미없으면 반납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받았다. 결국은 지금 내 방 문 안쪽에 그 포스터가 붙어있다. 





    이 영화의 원제는 "Attila Marcel"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수입하면서 제목을 참 예쁘게 잘 지었다, 생각했다.
    그런데 소설이든, 영화든 제목에 어느 정도의 의미가 부여되는 건데..
    결국은 주인공이 Attila Marcel에 대한 기억을 회복해가고, 그로 인해 자기 자신을 되찾는 내용이니까 원제의 뽀인트가 더 적합한 것 같기도 하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흠뻑 영화에 몰입해서 보았다. 그냥 화면으로만 감상하는 게 아니라 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게 이런 거였지, 하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감이었다. 화면도 예뻤고, 나는 그쪽을 잘 모르지만 확실히 한국 영화랑 색감 자체가 다른 게 신기하다. 주인공이 피아니스트이다보니 계속해서 음악이 흐르는 것이 좋았다. 

    영화를 보고나니 프루스트가 읽고 싶어졌다. 제목에서도, 등장인물 이름에서도 알 수 있지만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영화이기도 하고.. 책으로 볼 땐 느끼지 못했는데 영화속에서 보이는 홍차와 마들렌은 어찌나 따뜻하고 달콤해보이는지. 그러고 보니 어릴 때 깔짝깔짝, 마르셀 프루스트를 읽으려다가 포기한 기억이 있는데 그때에도 영화를 보고 나서 프루스트를 읽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러브레터>에서 후지이 이츠키가 후지이 이츠키를 그려넣었던 책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였던 것이다. 그 영화도 기억을 더듬다가 사랑을 찾는 이야기이다 보니.. 나도 프루스트를 차분히 읽다 보면 기억을 더듬어서 뭔가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본격적으로 감상을 좀 정리해보자면,

    마담 프루스트 같은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고, 내 곁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며 영화를 보았다. 
    사실 폴은 아파트 위층에 사는 청년일 뿐인데, 그에게 관심을 갖고, 그의 상처에 귀기울여준다. 그러면서도 절대 직접적으로 진단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고, 그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아이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내가 뭐 대단한 가르침을 줄 건 없고, 그냥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이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는데 그 이상적인 모습을 마담 프루스트에게서 찾은 기분이다. 게다가 나무 한 그루가 소중한 줄 알고, 지키려 하는 진짜진짜 멋있는 여자다. 
    그리고 마담 프루스트와는 대조적으로, 조카에 대한 소유욕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이모들을 보면서, 너무 많은 학부모들과, 때론 나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성장을 막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았다. 

    Vis ta vie, 네 인생을 살아, 라고 썼던 마담 프루스트의 쪽지도 잊을 수 없다. 폴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했다.
    스스로를 평생 너무나 괴롭혔던 것도, 그리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은 것도 모두 다 자신의 기억의 우물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결국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도, '잘못 생각하고 있는 나'라는 것, 자기 내면에서 힘을 키워서 극복할 수 있다는 것-그 힘도 결국 자신에게서 나온다는 걸, 이렇게 전하면 너무 뻔하고 뜬구름 잡는 말인데 이야기를 통해서 보여주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리고 나도 그러고 있는 게 정말 얼마나 많을까. 
    내가 갖고 있는 여러 기억, 강박을 되돌아보게도 되었다.

    신기한 건,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 <가르칠 수 있는 용기>와 이 영화가 통한다는 점이다.
    유행하는 수업 방법에 흔들리지 말고, 교육적 테크닉만 찾아다니지 말고, 자기 자신을 알고, 자신의 성품과 테크닉을 일치시키라는 말.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당신 자신이 되고 싶으면 과거의 인생사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됩니다. 과거에 당신이 존재했던 방식과 당신이 했던 일을 진정으로 당신의 것으로 인정한다면 당신의 현실인식은 한결 치열해질 것입니다.'라는 부분에 밑줄을 그어두었는데
    이럴 땐 정말 세렌디피티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이런 거야, 하고 누군가 인도해주는 것만 같은.

    서른이 되기 전에 나를 돌아볼 때인가보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