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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 대신 달벌학교에서 하루하루/학급 살림 2015. 1. 27. 05:09"요즘 애들 정말 안 때려요?"이런 질문을 정말 자주 받는다.진짜 안 때린다. 그런데 체벌이 없다고 해서 규칙을 어기는 것에 대한 벌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그래서 작년 우리 반에서는 모든 벌은 '달게 쓰는 벌', 줄여서 '달벌'로 통일했다.공책에 글 한 페이지를 쓰는 벌이다.교육적으로 말하자면야,'맞고 때우는' 게 아니라 글을 쓰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진정으로 반성하기.어떻게 보면,차라리 맞는 게 좋을 것 같은 괴로운 벌.또 어떻게 보면,아이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한 줄이라도 쓰게 하고 싶은,혹은 글을 통해서 아이들을 조금 더 알고 싶은 담임샘의 개인 취향.작년 이맘 때쯤 고수 모임 선생님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아마 어떤 선생님이 연수에서 듣고 왔다고 했고, 희자쌤이 해 보신 것 같았다)
나도 아이들 수만큼 노트를 뚝딱 만들어 실천하게 되었다.
겉표지에는
"달게 쓰는 벌" 이라고 붙여 주고 번호와 이름을 쓰게 했고,
표지 안쪽에는 아래 안내문과 주제 목록을 주었다.
지각, 수업 시간에 자리를 바꾸거나 무단 결과, 흡연 등등 각종 벌은 다 이걸로 통일했다.
(물론 무단 결과나 흡연... 등은 이것만 쓰고 끝난 건 아니고, 벌점, 학부모 상담 등등..과 병행되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교육적으로 받아들여서 진심으로 반성하며 쓰는 아이들은 드물었던 것 같고
(특히 남학생들에게 '글쓰기'는 엄청난 부담인 듯하다)
그냥 첫날부터 당.연.히. 이렇게 하는 거라는 시스템이 형성되면 받아들이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올해 아이들이 유난히 나에게 호의적이고, 반 분위기 자체가 긍정적이어서 기꺼이 벌을 받아 주어 잘 운영되었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3학년 2반은 보기 드문 반이었다. 나의 학교생활 12년과 교직경력 5년을 통틀어 이렇게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학급 분위기는 처음 겪어본다. 나의 모든 아홉수를 덮어줄 만한 행운이었다.) 생활지도에서도 사실 중요한 건 그들이 나를 좋아하느냐 아니냐.. 인 것 같다. 아마 아이들과 좀 적대적인 분위기였다면 성공적으로 달벌을 운영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올해에도 또 해 볼 생각인데, 노트를 개인별로 주지 않고 5~7권 정도를 만들어서 반 아이들이 돌려쓰게 할 예정이다. 아이들이 서로의 글을 읽고, 서로 좀더 이해하게 되고 댓글도 달아주고 그러면 좋겠다. 아마 잘 되면 교직 초반에 시도하다 망했던 학급 홀짝 일기와 같은 효과도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학급운영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도 지역 교육청 이동이 정말 큰 부담이다... 여기 분위기가 어떤지, 얼마만큼까지 내가 질러볼지 정말 감이 안 와서.. 신규가 된 기분이다.
<표지 안쪽 1>
달게 쓰는 벌
---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방법]
1. 아래의 주제에서 쓸 거리를 하나 고른다.
2. 첫 번째 줄에 날짜와, 달벌을 쓰게 된 이유를 쓴다.
3. 두 번째 줄에 제목을 쓴다.
4. 한 줄을 띄우고 그 다음 줄부터 글을 시작한다.
5. 마지막 줄 끝까지 다 쓴다.(분량 미달이면 다음날 다시 씁니다)
6. 집에 돌아가기 전에 담임선생님께 제출한다.
[주제]
1. 나의 장점 혹은 나의 단점
2. 10년 후의 나의 모습
3. 내가 보낸 하루
4. 내가 요즘 푹 빠져 있는 것
5. 내가 제일 자랑스러웠을 때
6. 나의 자녀에게 들려주고 싶은 나의 학창시절 이야기
7. 나를 슬프게 하는 모든 것
8. 세상에 태어나 가장 기뻤던(슬펐던) 일
9. 나의 수술 체험기
10. 내가 갖고 싶은 직업과 그 이유
11. 담임선생님의 눈으로 본 우리 반
12. 우리 반의 가장 좋은 점, 나쁜 점
13. (담임선생님이 모르는)우리반의 진짜 모습
14. 내가 담임선생님/교장선생님이 된다면
15. ○○○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말
16.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업과 그 이유
17. 이 세상에 학교가 없다면
18. 나에게 ‘학교’란~
19. 교칙에 대한 나의 생각
20. 우리 식구 ○○
21. 내가 어머니/아버지가 된다면
22. 우리 식구 한 명(어머니, 아버지, 다른 식구 등)에게 쓰는 편지
23. 가족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던 때
24. 내가 본 ○○(친구 이름)
25. ○○을/를 칭찬합니다.(한명 한명씩 써도 되고, 한 명으로 1쪽 써도 됨)
26. 미래의 내 남편/아내에게 쓰는 편지
27.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28.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29.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30. 내가 화장과 염색을 하는 이유
31. 내가 게임을 하는 이유
32.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
33. 끝이 시작보다 소중한 이유
34. 이성교제와 스킨십에 대한 나의 견해
35. 멋진 연예인과의 데이트 계획
36. 내가 대통령이 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37. TV/영화/만화 속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누구? 그 이유는?
38. ________________________
<표지 안쪽 2>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예의바른 우리는
3학년 2반
나는 잘못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잘못에 대한 뼈아픈 반성의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나에게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 가지 잘못이 있을 때마다 그 잘못에 대한 반성으로
나는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글,
또는 앞으로 나의 미래에 대한 글을 쓸 것입니다.
이것은 나를 위해 달게 받는 벌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 달게 받는 벌을 받을 때마다
얼굴엔 웃음이, 마음엔 행복이 가득가득 합니다.
오늘 나는 달게 벌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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