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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옷은 많은데 입을 옷이 없다 'ㅁ'
    학교에서 하루하루/학급 살림 2015. 3. 4. 19:36
    이제 와서 쓰는 거지만 3월 2일에 정말 스스로도 놀랄만한 심리적 변화를 인지했다.

    프린트를 워낙 늦게 만들어서 등사실에 맡기지도 못하고, 그냥 학급 자료인 척 60장씩만 복사하고.. 한 시간 있다가 또 복사하고... 그러고 있었다. 그러다가 학급에서 쓸 아이들 상담 자료를 출력하는, 나보다 두 살 어린 고운 신규쌤을 마주쳤다. 교사들 커뮤니티에서 워낙 많이 돌아다니고, 나도 작년까지는 3월마다 아이들에게 뿌렸던 자기 소개 프린트였다. 

    그걸 보자마자 든 생각이 옛날같았으면 
    '아 나도 저거 해야 되는데 너무 바쁘다....ㅠ ㅠ' 였을텐데,
    '올해는 나 저거 하지말아야지, 아 질려.' 라는 생각이 딱 떠올랐다.

    옷장에 옷은 적당히 있는데, '옷이 없다'는 말이 나올 때. 사실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옷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항상 입던 옷에 질린 것이다. 지난 주와 이번 주에 다른 사람을 만나니까 같은 옷을 입어도 그 사람은 모르는데, 나는 같은 옷을 입는 게 지겨운 것이다. 
    이것과 같다.
    아이들은 나를 처음 만나고, 소개 자료를 나와 나누는 건 처음인데, 나는 매년 학기 극초반에 소개 자료를 쓰게 하는 것이 질리기도 하고, 아이들이 몇 번째 쓰는지는 모르면서도 '애들도 이런 얘기를 여러 번 쓰면 지겹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좀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3학년쯤 되면 성의없이 쓰는 아이들도 너무 많고.. 물론 그런 소개 프린트를 쓰면 조잘조잘 자기 이야기를 쓰는 아이들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이미 1학년 때 쓴 상담 카드도 받았고, 국어 시간에도 아이들 소개 설문을 하니.. 이번엔 아이들과 좀더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며 알아가고 싶다. 나의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것일까 몹시 스스로에게 의심스럽지만.....매년 하던 거지만 7반 통신은 질리지 않고 하게 되는 걸 보면, 완전히 게을러져서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정말 애들하고 대화를 많이 하고 싶은 걸 거야.  

    그러고 보면 옷과 정말 비슷하다.
    임용 공부하면서 편한 옷만 입었었고, 그 전에는 대학생스러운 옷만 입었으니 교직 초반에는 정말 옷이 없었다. 옷을 정말 많이 샀고, 기본아이템 자체가 없다 보니 뭘 사도 '필요한 옷'이었고 새로운 코디였다. 이제는, 첫날이니 이거 입고, 첫 주엔 이 정도로 입어야지, 하고 아무 고민 없이 옷장에서 출근용 옷을 꺼내 입을 수 있다. 그리고 첫 해부터 입던 원피스들에.. 요즘은 살짝 질린다. 올해는 '저를 소개합니다' 프린트를 뽑고 싶지 않은 것처럼.

    게다가 요즘 옷장을 훑어보면서 '5년 전쯤에 샀던 옷들이 지금 입기엔 너무 어려보이는 것이 아닐까? 30대를 준비하며 새로운 옷을 장만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자주 했다. 마찬가지로, 학급운영에 있어서도 나에게 새로운 옷이 필요한 걸지도 몰라. 초심을 잃는다는 건, 그만큼 경험을 얻었다는 뜻이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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