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15 물꼬방 연수. 2박 3일 동안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마음 고운 선생님들과 수다 많이 떨고, 또 빡세게 할 땐 집중했던.. 널널하면서도 묘하게 빡빡했던 합숙이었지만(대학교 때 참실 합숙 같은 느낌이었다) 강렬한 기억들이 많이 남았다. 오현주쌤의 수업 이야기, 김병섭쌤의 급 연수, 등등 여러 자극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영희쌤이 가져온 책들 덕분에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때는 중학교 학급문고 목록 만들기 모둠 시간. 영희쌤이 소개하는 책들을 보면서 입이 떡 벌어졌다. 말랑말랑한 여행 에세이나, 웬 패션지 쎄씨의 한 페이지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소녀들의 방> 같은 책들. 머릿속에 쓰나미가 일어났다. 학급문고계의 혁명이었달까. 엄~청 유연하면서도, 독서력을 자랑하는 영희쌤의 성실함에 일단 감탄하고 나서,
그런 가벼운 책들을 학급 문고에 꽂아두는 게 좋은 걸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는, 일단 아이들이 손에 책을 쥐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학급문고에 꽂아둘만 하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한데 우리 반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상상실험을 해 보면, 일단 흥미롭게 그 책을 꺼내들어 읽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독서수준이 딱 거기서 멈춰버리지는 않을까? 과연 그렇더라고 '책'이란 물건을 집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보아야할까?
그리고 '선생님이 골라주는' 학급문고라면, 뭔가 좀더.. '자신있게 권할 만한' 책이어야 하지 않을까? 말랑말랑하고 재미있되, 좀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나는 지금까지 학급문고에 웹툰을 비치하거나, 아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도서실에 달려가 슬램덩크를 읽는 것은 참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소녀들의 방' 이라든가(지금 제목이 기억나는 게 이것뿐이라 자꾸 이걸 언급하게 된다) 하는 책은 참 권하기가 쉽지 않다, 순전히 개인 취향인지 모르겠지만.
나만 해도 트위터에 링크된 긴 글은 읽지 않거나, 대충 읽게 되는 걸 종종 느낀다. '스마트한' 우리 아이들은 더더욱 긴 글을 읽기 어려워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잘 읽히고 흥미롭지만 마냥 가볍기만 한 책을 권하는 것이, 아이들을 오히려 긴 글과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든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중학교 때 읽었던 책들은 교육적으로 유의미했나?
내가 중학생 시절 읽은 책의 반은 일단 만화였다. 아까 '소녀들의 방'이 쎄씨 같은 책이라고 했지만 나 역시 중고등학교 때 그런 잡지를 대여점에서 빌려다가 침발라가며 읽긴 했었다.
그리고 또, 그 당시엔 일본 소설에 홀랑 빠져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류, 요시모토 바나나 등등. 일본 현대소설은 그때 하도 읽어서, 지금은 에쿠니 가오리라든가 하는 다른 작가들도 국내에 많이 소개되었지만 일본 소설은 다시 쳐다보고 싶지도 않을 정도다. 당연히, 그 나이 땐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고 지금 와서 하루키를 다시 읽으면 '내가 읽었던 그 소설 맞나'싶은 생각이 든다. 나의 학생들에게 하루키를 권할 생각도 당연히 없다. 오히려 중학생에게 적합한 작가는 아니라고 할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고, 그 기억도 나의 독서 기록의 한 페이지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책의 '(교육적) 의미'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것일까. 일단 책에 빠져드는 경험을 더 우선시해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의 꼬리를 물다보면, 또 꼰대같이, '그러니까 그 책들하고, 지금 이 책들이 같냐고....'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일단 에세이류에서도 이 정도는 괜찮겠다, 싶은 책들을 모으고는 있는데, 어떨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