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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동중 발령기 #1. 서막-두더지 출근
    학교에서 하루하루 2015. 2. 27. 21:59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약 12, 지하철로 약 6정거장, 지하철역에서 학교까지 10. 현관문에서 교무실 내 자리까지 Door to Door40분 거리. 대중교통 출퇴근치고는 정말 가까운 거리이다. 4년 이상을 이렇게 다니던 나에게 찾아온 장거리 출퇴근.

     

    어차피 나도 내년엔 학교를 옮기는 해이기도 해서, 동생 직장 근처로 이사를 갔는데..

    새로운 집은 한 발짝만 가면 김포. 거의 경기도라고 볼 수 있다.

    우리 학교는 버스에서 깜박 졸다가 한 정거장만 더 가면 성남. 이 정도면 경기권 출퇴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머리를 감았다. 가방은 전날 밤 미리 챙겨두고, 입을 옷이나 악세서리도 미리 생각해두었다. 5시에 일어나서 휙휙휙휙 준비하고 이르면 68분차, 늦으면 620분차를 타고 출근했다.

     

    급행시스템이 있는 9호선이 신기해서, 여러 경우의 수를 시도해 가며 학교에 다녔다.

    처음은 가장 평범한 정석 코스로 다녔다. 가양역에서 급행열차로 갈아타고 고속터미널역에서 3호선, 가락시장역에서 8호선으로 갈아타기.

    이게 익숙해지고 나선 급행에서 앉아보려는 마음에, 김포공항역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급행을 타고 내려오기도 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620분 개화행 열차가 늦지 않고 와야 한다. 열차를 타면 물론 빈 자리가 많지만 앉지 않고 2-43-1 왼쪽문 앞에 서 있는다. 그래야 김포공항역에서 1등으로 내릴 수 있다. 3-1 플랫폼에서 내리면 바로 눈앞에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두 줄로 서서 손잡이를 꼭 잡으라는 에스컬레이터 안전 규정을 무시하고 무조건 달려서 한 층 올라가면, 신논현역 급행 열차가 금방 떠날 참으로 문이 열린 채 기다리고 있다. 월요일엔 자리가 없을 때도 있는데 보통은 좀 앞쪽으로 걸어가면 앉을 곳을 찾을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약간 시간을 지체하다 이 급행열차를 놓친 적도 있긴 했다. 한 잡지기사에 따르면 통근기차가 연착될 때 사람들의 혈압이 치솟는데, 그게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는 사람 수준이라고 했다. 참 희한한 것이, 나는 집에서 워낙 일찍 출발했기 때문에 그 열차를 놓쳐도 절대 지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급행이 출발해버리는 순간 확 기분이 상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조금 늦게 나와서 620분 신논현행 일반열차를 타고, 가양에서 급행을 안 타고 일반열차를 타고 버티기. 6시에서 7시 사이에는 일반열차 2대에 급행1대라서(지금은 일반 하나, 급행 하나가 번갈아 오는 거라서 무조건 급행을 타야한다) 가양역에서 급행열차를 먼저 보내고 나면 동작역까지는 급행열차보다 일찍 도착한다. 어차피 무슨 짓을 해도 지각은 안 하니까(학교엔 8시반까지 출근하면 되는데 74-50분에 도착했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땐 이것도 편하다. 동작에서 급행으로 갈아타고 고속터미널까지 한 정거장을 갈 수도 있고, 더 자고 싶으면 끝까지 일반열차를 타고 고속터미널역까지 가기도 했다.

    엄청 시간이 남아서 견딜 수 없을 땐, 가락시장역에서 환승을 하지 않고 수서에서 내려서 학교까지 걸어가기도 했다.

     

    처음 두 달쯤은 그래서 재미있었다. 여러 가지 코스를 시도해보기도 하고, 내가 지하철만 타고 강서에서 강동까지 슉 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두더지 같기도 하고. 독서량이 엄청 늘었고 사람 구경도 재미있어서 지하철역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메모도 많이 썼다.

     

    대신 평소보다 일찍부터 활동하니 아침에 뭘 조금 줏어먹고 나와도 학교에 오면 배가 고팠다. 워낙 아침에 발딱 일어나는 건 잘 해서 그런지, 출근보다는 퇴근이 힘들었다. 일어난 지 꽤 되어서 오후쯤 된 것 같은 컨디션인데 실제로는 1교시가 끝난 시간이고.

    그리고 퇴근길에 고속터미널역 9호선 플랫폼에 딱 내려오면, 열차를 기다리는 플랫폼에서부터 발디딜 틈이 없다. 9호선을 제일 오래 타는데 죽 서서 오자니.. 편한 신발을 자주 신어야했다. 그래서 비싼 공항버스를 타고 퇴근한 적도 몇번 있다. 공항버스를 타면 집앞이 아닌 김포공항에 내리긴 하지만 버스 안에서 푹 자고 눈뜰 수 있으니까.

     

    1월 즈음이 되니 한계가 왔다. 보통 학교들은 12월 말에 겨울방학을 하고 2월에 1주일쯤 학교에 나오고 나서 종업식을 한다. 그런데 올해 우리 학교는 학사 일정을 특이하게 짜서, 2월에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는 대신 19일에야 종업식을 하도록 만들었다.

    내 몸은 방학을 기억해서, 방학할 때가 다 되었는데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출근하자니 정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머리를 감으러 화장실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어도 내용이 잘 안 들어오고 머리가 멍-할 때가 많았다. 책은 그냥 서 있을 때 심심하면 읽는 거였고, 앉으면 무조건 잤다. 퇴근길에는 정말 피곤해서 글을 읽을 수도 음악을 들을 수도 없는 날이 많았다. 음악을 듣는 것도 피로감을 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게다가 이사온 첫 주에 배송된 한겨레21의 표지는 "출근하다 죽겠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65385.html)

    그래, 나는 죽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12월 중순을 지나면서 현관을 나서면서 이렇게 인사하곤 했다.

    "엄마, 퇴근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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