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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만 갖고 그래요? 혹은 제가 왜요?
대부분의 교사들이 ‘진짜 저 말 듣기 싫다’ 멘트 1위를 꼽으면 저 말이 아닐까.
‘여기 이것 좀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릴래?’
‘제가 왜요?’
또는
‘제가 안 버렸는데요?’
아니면
‘버리면 뭐해주실 건데요?(상점 주실 거예요)?’
‘**야, 그만 떠들고 이제 수업에 집중하자.’
‘왜 저만 갖고 그래요? 얘가 먼저 던졌는데요?’
‘쟤도 떠드는데요?’
와, 쓰다 보니 진짜 내 앞에서 누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아닌데 열받는 것이,
정말 탐구해볼만한 말이 아닌가 싶다. ‘왜 저만 갖고 그래요?’와 ‘제가 왜요?’
이 말에 대해서 드는 생각 첫 번째.
애들은 뭐가 그렇게 억울한 것일까?
모든 아이들이 한 잘못의 정도를 공명정대하게 측정해서, 그만큼 혼내면 납득하고 반성할까? 처음 말을 건 아이부터 차례차례 솔로몬처럼 사정을 들어가면서 잘못을 측정하고 그에 합당한 벌을 주면?
그런데, 그게 가능하기나 한가?
‘쟤가 먼저 말 시켰어요.’라고 지목된 아이를 혼내면, 그 아이도 또 ‘아닌데요? 쟤가 먼저 ~했는데요?’라고 나올 공산이 크다.
그리고, 그 친구가 말을 걸지 않았다면 자신은 수업에 집중했을까?
LOL을 하는 와중에도 그 친구가 말을 걸면 게임을 중단하고 그 친구와 대화를 하고 장난을 했을까?
그러니까, ‘왜 저만 갖고 그래요?’는 말하는 아이의 기준에 달린 것이다.
‘저 지적 받기 싫어요’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근데 이렇게 결론 내리는 내가 혹시 꼰대스러운 건 아닐까?
이 말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떠오른 두 번째 이야기.
나는 뭐, 다른가?
예전에 EBS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내가 이렇게 수많은 변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인간이었다는 게 놀라웠다.
업무가 너무 많아요. 인터폰 받느라 수업 시간에 늦게 들어가는 것도 예사예요. 학교에선 업무 외에 뭔가 생각할 틈이 진짜 하나도 없어요.
물론 저도 수업 준비를 하지만, 무조건 손 놓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계속해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고민하는 것도 힘 빠져요. 왜 모두 제 탓인가요?
솔직히 이 사람들도 이 아이들을 책임지고, 하루 종일 함께 생활하는 건 아니잖아. 외부인이라서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등등
그리고 어릴 때 동생과 싸우고 부모님께 혼날 때면, “얘가 먼저 나한테 ~~하게 했는데 왜 나한테만 뭐라 그래!!!” 하다가 더 혼났던 기억도 참 많다.
결국 나도 그런가?
내가 미성숙해서 그런가 아니면 원래 사람은 그런가?
세 번째, 최근 1-2년간 저 말에 대해서 생각해 온 것.
“왜 저만 갖고 그래요?”는 결국 루저의 사고방식이다.
‘왜 저만 갖고 그래요?’는 결국 문제의 원인과 해결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나는 계속 이대로 살겠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실은 그게 더 편한 것이 인간일지도.
그런데 인간이 자기는 변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게 가능한가?
자기가 수업 태도가 나쁜 이유를 계속 친구 탓을 하면서 떠들고 앉아 있으면 자신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가?
그렇게 대거리질을 하면서 기분이라도 좋아진다면 또 모를까, 선생님의 말을 수용하지 않음으로써 나는 선생님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뽐내고 싶은 마음으로 하는 말인가?
어느 쪽이든 자기 자신의 발전에 도움은 되지 않는다.
아이들하고도 이야기해보고 싶은데, 세련되게 정리가 안 되어서 일단 이렇게라도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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