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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동중 발령기 #2. 지역을 옮길 것인가
    학교에서 하루하루 2015. 2. 27. 22:01

    그런데 나도 참 이상하게.. 강동에서 강서교육청 소속으로 옮기는 게 망설여지는 것이었다. 가족들과 이사에 대해 논의할 때부터 '나도 지역을 옮기면 되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안 그래도 새로운 학교에 가는 게 떨리는 일인데 지역도 완전 다른 곳이라니 더 겁이 났다. 강서쪽이라고 해서 중학생들에게 뿔이 달린 것도 아닌데, 그쪽 아이들은 여기보다 더 거칠 거라는 편견이 어디서부터 온걸까. 뭐 실제로 그런 말을 하는 분들도 있었다.

    워낙 인기 지역이라 신규 발령이 드물다는 강동교육청인데, 내 발로 떠나는 게 아쉽기도 했다. 사실 금덩어리가 내 손에 들어와도 나에게 그게 가치가 없는 거라면 좋은 게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주소를 옮길까 말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학교에서 초빙 제안을 했다. 이 학교에서 5년 더 머물 수 있지만, 대신 그만큼 업무를 많이 해야 하는 초빙교사. 아마 나이스 업무를 내가 오래 맡고, 일을 많이 할 젊은 사람도 필요해서 제안하신 것 같은데 그래도 일을 잘한다고 인정받은 것 같아서 약간 기분은 좋았다. 내 안의 숨은 노예 근성 발견. 지금 생각해보면 그 두더지 출근을 5년 더 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건데 나는 고민을 했다.

    지역교육청을 옮기면 정말 어디로 떨어질지도 모르는데, 이 학교에서는 아이들 성향도 대충 알고 있고 적응도 다 되었고. 게다가 학교를 옮길 때가 가까워질수록 우리 학교 애들이 참 착하고 순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였다.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문현이 '성적 낮은 학교'라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그게 송파구의 다른 학교랑 비교해서 그런거지, 학업성취도평가를 보면 딱 서울시 평균이다. 그리고 물론 아이들은 각종 사고를 치지만 정말 거친 아이들은 적은 편인 것 같고. 또 내가 존경하는 부장님이 워~낙 설득을 하셔서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심지어 '니가 내 딸이면 나는 그냥 여기 방 하나 얻어주고 강동에 남으라고 한다'고까지 하셔서.....

     

    사실은 너무 그러니까 슬슬 반항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게 참 재미있는 게, 교장+교감+부장님은 강동에 남으라고 많이 하시는데 다른 샘들은 주로 '너무 머니까 그냥 옮겨라' 라는 반응이었다. 친구 어머니가 강서쪽에서 계속 근무하셨는데 강서 애들 착하다고! 하는 이야기도 들었고, 강서는 선생님들끼리 참 분위기가 좋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결정을 확 내리게 한 말은 이거다.

     

    "가까운 데가 최고예요. 학교는 어디든 다 안 좋으니까."

     

    나는 또 막내노예근성이 숨어 있어서 감히 교장교감님이 초빙으로 남으라고 하는데 사양하는 게 참 어려웠지만 결국은 남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다. 어차피 집이 너무 먼 걸 다들 알고 계시니까. 그리고 학교에 남아있으면 여러 가지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으로는 나의 마음이 그다지 움직이지 않았다. 차라리 '내년에 자유학기제도 시작하고, 학교 상황도 이러저러한데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라고 인간적으로 설득했다면 정말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결정을 내린 마당에, 화곡에서 기간제를 했던 적이 있다는 선배가 연신 "그래도 여기 애들이 더 힘들텐데.."라고 해서 또 막 겁이 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말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학부모 서포트도 좋은 지역에서 교사생활을 하는 게 백만 배 편하기는 하지만, 그런 곳을 찾아다니려고 너~~~무 기를 쓰는 것도 교사답지 않은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기회주의적인 것 같기도 하고. 어차피 그들에게도 선생이 필요하잖아. 그리고 내가 좀 어리고 미혼이고 학교에 에너지를 많이 쏟을 수 있는 시간도 의욕도 넘칠 때, 여러 학교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어쩌면 그냥 타고난 바보인지도 모른다. 태생적으로 주판알 굴리는 데에 소질이 없다.

     

    막상 발령 카드를 쓸 때에는 또다른 불안감이. 강동은 다른 교육청으로 나가야 하는 선생님들 수가 많아서, (인기 지역의 슬픔이랄까) 무조건 지역 교육청 이동으로 5지망까지 쓰라는 것이었다. 일단 집 가까운 데로 2지망엔 남부를 썼는데, 혹시 강서에 티오가 부족해서 남부로 간다면 참... 그것도 출퇴근 시간이 꽤 걸리겠다 싶어서 걱정을 쪼끔 했다. 안그래도 인사 이동이 적은 해라고 해서. 이때쯤에 성당을 열심히 다닐 때라, 그냥 주님이 꽂아주는 곳으로 가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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