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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참 금방 잊는다일상 2015. 7. 7. 19:11
어쩌다 뜻한 바 있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자타공인 공부를 좋아하는 편이라... 아주 무리한 계획을 세워 매일 실천을 못 하는 중에 새록새록 옛 생각이 난다.나는 원래 욕심을 부려 무리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지 못하고 자책하는 나날을 반복하곤 했다. 이런 버릇이 자존감에 나쁜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지만 원래 사람이 100을 목표로 해야 80이라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예전과 다른 게 있다면 이제 계획을 다 못 지킨 것에 대해 심하게 자책하진 않는다. 내가 또 무리한 계획을 세웠구나, 아마 평생 이럴 모양이지.... 정도로만 생각한다.
오랜만에 시험 준비를 하려다보니 없는 게 너무 많다. 스톱워치를 갖고 공부시간을 체크하고 싶은데 임용 준비할 때 쓰던 건 그해 겨울에 망가졌다.
그때 그냥 장미상가 1층 문구점에서 샀던 게 기억이 나서 학교앞과 집앞 다이소에서 물어봤는데.... 없었다.
일단은 없는 대로 스마트폰으로 시간 체크 앱을 받아 썼는데, 꼭 화면을 켜야되니까 지금 몇 분이나 공부했나 바로 흘끔 보기도 어렵고, 일시정지를 할 때에도 매번 폰 화면을 켜는 게 귀찮기도 하고 무엇보다 공부할 땐 폰이랑 완전히 분리된다는 게 나의 원칙인데 그게 잘 안 되니 신경이 쓰였다.
7급 공무원을 준비했었었었던 친구랑 통화하다가, 친구가 쓰던 걸 준다고 해서 이건 하룻밤 만에 준비가 됐다.그러고 나니 공부만 하던 때와는 달리 출근하는 복장에도 적당히 어울리면서 가벼운 백팩이 있었으면 좋겠고..
공부를 한 10분 하다 말고 백팩 뭐 사나 티몬도 들여다보고.. 또 밤 10시쯤 졸려지면 인터넷에서 '여성 백팩'을 검색하고 있고.. 출퇴근하면서 동기들 카톡방에서 계속 백팩 뭐살까 물어보고.. 이러다 정말 안될 것 같아서 그냥 지난 주에 집에 오는 길에 아울렛에 들러 적당한 가방을 샀다.그리고 공부를 찔끔 하다보니 다리가 너무 아프다. 안그래도 평소에 일하면서도 오~래 서있어서 다리에 피가 몰리는 느낌이 있는데 말이다. 의자 높이가 좀 안 맞는가 싶어서, 영차영차 책상 밑을 비우고 공부하려고 산 책 배송박스를 발판으로 쓰기로 했다.
어쨌든 하체에 피가 몰리는 느낌은 있어서, 침대에 누워 다리를 수직으로 벽에 기대고 책을 보다가 눈을 뜨면 20분이 훅 가있고.. 잠을 참으며 버티는 것도 너무 오랜만이었다.그러곤 예전에 선물받은, 피렌체에서 온 가죽 필통도 어디갔는지, 얇고 가벼웠던 게 좋았던 기억이 나서 한참을 찾았는데 안 보이고.. 결국 오늘 추억의 노량진역에서 환승하다가 필통을 샀다. 노량진역에서 9호선과 1호선 사이를 환승할 때 아예 역 바깥으로 나가야하는 게 좀 귀찮았는데, 아직 문구점이라곤 없이 다이소에 의존해야하는 집에 살다 보니 이런 유용할 때도 있네. 역시 노량진에는 성인이 공부할 때 필요한 모든 게 있었다. 2009년에만 해도 노량진에서는 그냥 숨쉬는 공기도 싫었는데, (노량진으로 학원을 다닌 것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수험생이 많은 분위기 자체가 싫었다) 이젠 아무 느낌이 안 든다. 하푸하푸 비슷한 아가해달이 그려진 필통을 골랐다.
참 공부한답시고 이것저것 신경쓰다보니 예전에도 내가 공부한다고 해서 공부만 하지는 않았던 걸 인정하게 됐다. 독서실에선 손창섭이나 기타 등등 전후소설 공부하고나면 우울하니까 다른 소설도 낄낄대면서 읽고, 임고 공부할 초기에는 독서실에 츄리닝을 뭘 입고 다니나 한참 고민했고, 물 많이 먹고 화장실도 자주 다니고 옆자리 언니랑 군것질도 엄청 많이 했지. 그래놓고 마치 나는 매일 계획 세워서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공부만 한 것처럼 기억을 하고 있었다니. 개구리가 된 지 얼마 안 된 올챙이도 이렇게 금방 잊는다. 아이들도 정말 여러가지 일에 신경쓰고 있고, 공부를 하면서도 본질적이지 않은 수많은 일들을 생각하고 있고~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는 걸 다시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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