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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 체험기 1일차. 프랑크푸르트-아우구스부르크일상/여행지도 2015. 8. 8. 00:55
나는 어떻게 패키지 여행을 선택하게 되었나
올해 정말 컨디션이 이상했다. 내가 좋아하던 것들도 이상하게 다 재미없고 무덤덤하고 만날 지치고 피곤하고 아팠다. 동유럽 여행을 계획하면서도 처음엔 완전 자유로 가려고 생각했었다. 항공권 검색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동선을 생각해서 프라하 인 아웃, 프라하 인 부다페스트 아웃 등등 여러 경로와 항공사를 넣어보고 검색했던 때의 메모를 들여다보니 경우의 수가 14가지나 된다. (세어보니 무기력한 사람 치고는 꽤나 많이 알아봤군.) 작년에 애용했던 호텔 예약 사이트들을 통해서 게스트하우스나 호텔도 몇 군데 예약을 걸어놨었다.
그런데 항공권이랑 숙박이 물론 제일 큰 문제이긴 하지만 어디 여행에서 준비해야 될 것이 한두 가지인가. 도시간 이동은 어떻게 할 지, 대중교통은 어떻게 할지, 박물관이 쉬는 날은 언제인지 등등 사소하게 신경써야 할 것이 많은데 유레일 동유럽 패스를 살까 말까 고민하고 빈셔틀 사이트를 뒤지다가, '아이고 올해는 힘들어서 여행 준비 못하겄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패키지를 가 보기로 결심했다.
패키지가 관광 위주의 끌려다니는 여행이지만 비용도 덜 들고 어쨌든 가장 많은 곳을 보게 되니까. 패키지 일정을 보면 파리에서 하루이틀만에 명소들을 다 둘러 보는데, 나는 파리에 5일을 머무르면서도 못 간 곳들이 있었던 걸 보면.. 그리고 아무래도 가이드가 계속 데리고 다니니까 설명도 계속 알차게 들을 수 있겠다는 기대도 했다. 어쨌든 길바닥에서 고생을 안 해도 되고, 그냥 따라다니며 구경만 해도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가벼웠다.
여행을 다녀온 지금 생각해 보면 이제 패키지의 장단점은 명확히 알겠는데...... 글을 쓰면서 생각이 더 정리되면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기록을 시작해 본다.
간소한 여행 준비
사실 가기 전에는 진짜 좋았다. 준비를 많이 안 해도 되고 편하니까. 그래서 여행 전전날까지도 그냥 공부에 열중하다가 떠날 수 있었다.(아무래도 들떠서, 전날은 공부가 잘 안 됐다)
매년 여행할 때마다 옷이 바뀌지 않는 게 좀 웃기긴 한데, 모자도 신발도 옷도 그냥 있는 대로 쓰기로 하고, 이번 여행을 위해선 딱 한 가지를 샀다. 여행노트. 지난 번 크리스탈과 여행할 때 크리스탈이 노트를 엄청 꼼꼼히 쓰는 게 참 보기 좋았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에버노트에 종속된 인간이 되어 아날로그로 글을 쓰는 것보다 에버노트에 글을 쓰면서 컴을 쓸 수 있을 땐 컴으로 접속해서 쓰고, 이동하면서는 폰으로 쓰고 그러면서 동기화는 역시 신의 작품이라며 룰루랄라해왔다. 하지만 노트에 손글씨로 기록하는 게 더 뭔가 물리적으로 남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번 여행에서는 꼭 트래블 노트에 일기를 쓰리라 야심차게 계획하고 샀다.
아 그리고 카메라? 카메라는 원래 이 여행을 위해 산 건 아니지만 처음으로 유럽에 들고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의 패키지 선택과 마찬가지로 이 두 가지 다 조금씩의 아쉬움을 남겼다. 결국 인간은 바뀌지 않는 것이라.. 내가 뭔가를 기록할 때는 크리스탈보다 일찍 새벽에 일어났을 때나 버스 이동중이었는데, 새벽에는 불을 켤 수가 없어서 결국은 핸드폰으로 쓰게 되었고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글씨를 쓰는 것도 쉽지 않아서 주로 폰을 쓰게 되었다. 그나마 노트를 쓰는 건 밤에 호텔에서 크리스탈이 씻는 동안... 정도여서 오히려 기록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그리고 카메라는 진짜.....
nx mini 17mm 렌즈. 평소에 워낙 만족스럽게 잘 썼는데 이게 평소에 음식사진이나, 가까이 있는 사람 사진이나 간단한 기념샷 정도를 찍을 땐 좋은데 17mm의 화각이 유럽 여행에는 몹시 부적절했다. 여행하면서는 다음엔 줌렌즈를 꼭 사겠다고 생각했는데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여행할 땐 무조건 가벼운 게 최고니까 9mm 렌즈를 사는 게 낫겠다고.그런데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9mm가 겨우 기본렌즈인 주제에 생각보다 너무 비싼 걸 보고는 그냥 폰카랑 병행하면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크리스탈의 갤식스 카메라는 엄청 반짝반짝 선명한데 왠지 이놈 카메라보다 갤6이 나은 게 아닌가 싶어서 좀 섭섭했는데... 나중에 컴퓨터로 보니 내 카메라의 LCD액정 화질이 별로였던 탓인 듯하다.
공항에서
12시 반 비행기. 평소 같았으면 11시쯤 어슬렁 어슬렁 공항에 나타났을텐데(혹시 수속을 늦게 하면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될 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기대도 하면서) 인솔자가 공항에 9시까지 오라고 해서 좀 의아했다. 어차피 카운터도 두 시간 전에야 여는데 일찍 가서 뭐하나 싶었다. 막상 가보니 셀프 체크인으로는 일찍 수속이 가능해서 면세점 쇼핑을 오래 했다. 쇼핑의 천국 인천 공항 아닙니까.
그래서 아빠가 사다달라고 한 담배도 사고, 브랜드 매장 다니면서 반지갑이 좀 괜찮으면 사고 싶었는데 다 나의 수용 범위 밖이어서 그냥 내려놨다. 페라가모나 프라다에서 지갑을 30만원대에 샀다는 친구들도 있는데 대체 어떻게 산 것일까? 음..
비행기에서의 11시간
정말 힘들었다. 내가 원래 장시간 비행을 이렇게 힘들어했던가? 원래 비행기 엔진 소리도 워낙 거슬리고, 이코노미석 의자도 불편해서 기내에서 잠을 잘 못 자는 편이긴 했다. 그래도 힘들어, 불이 다 꺼져 있으니 나 혼자 전등 켜고 뭘 하자니 옆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책도 못 읽고 영화를 두 편 봐도 시간이 남는다. 메이즈러너랑 오늘의 연애를 봤는데 하나는 정말 재미있고 하나는 웃기긴 한데 이야기는 허술해서 그냥 이승기랑 문채원이 예뻤다.
생각해보니 내가 비행기를 11시간 연속으로 탄 적이 없다. 항상 조금 더 싼 거 탄다고 중간에 경유를 해서, 9시간 정도가 최대였다. 그래서 그런가 한계가 8시간쯤에 왔다. 다행히 좌석이 통로쪽이라 그냥 좌석 옆에 서 있기도 하고, 비행기 맨 뒤에 있는 빈 공간에서 스트레칭도 하고 그냥 비상구쪽 공간에 멍하니 서 있기도 하면서 버티다가 막판에 다행히 잠님이 쏟아졌다.
버스에서의 5시간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독일. 인원 체크하자마자 버스에 탔는데 약간 아쉽긴 했다. 공항에 도착하면 '호텔까지 가려면 버스는 뭐 타야 하지? 공항철도 타는 게 나을까? 공항에서 원데이 패스 파나??'하고 긴장하는 맛이 있어야하는데 이거 원. 버스 투어가 그런 시간 누수 없이 관광지를 둘러보아서 장점이라곤 하지만, 대중교통을 타고 막 혼자서 돌아댕기면서 볼 수 있는 것들이 또 있는 건데.. 그런 걸 겪을 수 없는 게 패키지의 기회비용인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인의 특성-짧은 휴가 기간 동안 뽕을 뽑는다!!-이 너무 잘 반영된 덕분에 오늘 5시간 동안 버스를 탔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아우구스부르크까지 400km라는데 그만큼 버스를 타고 갔다. 그때 즈음이 한국 시간으로는 나의 취침시간을 홀짝 넘긴 11시에서 새벽 한두시가 되고.. 고속도로는 딱히 경치가 좋은 건 아니어서 버스에서는 틈틈이 잤다. 고속도로 주변 나무들도 우리나라랑 비슷해서 딱히 이국적인 느낌이 잘 안 들었다. 중간중간에 보이는 유럽식 집들도 예쁘긴 한데 뭔가 오래 된 유럽풍이 아니라 최근에 지어져서 다 비슷한 느낌이라 큰 감동은 안 왔다. 그냥 여기가 자철이가 있던 아우구스부르크란 말이지, 하는 것만이 의미있었다.
그리고 고속도로에서 처음엔 BMW, 벤츠, 아우디, 폭스바겐 등등 내가 이름 아는 몇 안되는 외제차 상표가 막 나다니는 걸 보고 '와 진짜 독일 잘 사나보다, 도로에 외제차가 즐비하네....' 생각했다가, 얘네한테는 그게 국산차라는 걸 바로 깨닫고 스스로 너무 웃겼다.
이날 시간이 더 오래 걸렸던 이유 중 하나는 버스운전사가 4시간 이상 운전을 하면 45분 휴식시간을 줘야한다고 한다. 그래서 중간에 휴게소에서 좀 쉬고 갔다. 그리고 엔진을 끈 이후에 7시간인가 이상을 쉬게 해야한단다. 어찌보면 비효율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결국 이렇게 휴식시간을 주고 천천히 가면서 운전사가 더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거니까 결국은 이게 더 합리적인 거지. 역시 유럽의 노동 여건을 엿보면 언제나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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