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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가미/구병모
    책읽기, 기록 2020. 4. 24. 05:20

    물 속에서 사는 존재들은 왜 항상 순수하고 연약할까. 어릴 때 읽은 동화에서부터, 영화, 드라마에서도 물 속에서도 살 수 있는 인간들은 일편단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바보스러울 정도로 남의 말을 정말 곧이곧대로 믿곤 한다. 그래서 이 순진한 이들은 땅 위 사람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죄 없이 피해자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인어 공주>에서도, 전지현 언니가 나왔던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도, 어릴 적 희미한 기억 속에만 남은 영화 <스플래쉬>에서도.

     

     

    아가미를 달고 사는 곤이도 그렇다. 아예 세상에 적籍을 두지 못한 수륙양용 인간. 덕분에 그만큼 세상과 휩쓸리지 않아도 되는 곤이의 삶의 양식이 부러워 몇 군데

    에는 밑줄을 그었다. 

    - 비좁은 세상을 포화 상태로 채우는 수많은 일들을 꼭 당일 속보로 알아야 할 필요가 없으며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애쓸 필요 없고 속도를 내면화하여 자기가 곧 속도 그 자체가 되어야 할 이유도 없는, 아다지오와 같은 삶.
    - 그 어떤 행동도 현재를 투영하거나 미래를 예측하지 않고 어떤 경우라도 과거가 반성의 대상이 되지 않으니 어느 순간에도 속하지 않는 삶

      그런데 곤이 주변의 사람들도 곤이 못지 않게 세상에서 소외된 존재들이다. 귀신 나올 것 같은 호수 주변에 사는 강하와 할아버지, 배우의 꿈을 안고 이용만 당하다 약쟁이가 되어 돌아온 이녕. 물에서 사는 곤이만큼이나 순수한 내면을 마음 어딘가엔 간직한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그들 모두의 죽음 또한 물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물은 곤이에게 생명력을 주는 공간인데, 곤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물에 휩쓸려갔다. 그래서 더더욱 곤이는 물에서 떠나지 못하게 됐다. 

      최근에 파과와 아가미를 연속으로 읽었다. 두 소설 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격의 이야기가 앞뒤로 붙어있어 좀더 선명한 이미지와 여운을 준다. 특히 에필로그는 뭔가 가슴을 싸르르 울리는 데가 있다. 

    결국 그 이미지가 이 짧은 감상이나마 쓰게 만들었다. 이 책을 덮자마자는 뭔가 슬프고 아련하고 인물들 하나하나가 다 안쓰럽고 애잔하긴 한데,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고 요즘 뭔가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게 너무 막막하고 답답해서 그냥 두었는데, 다 읽은 지 20일이 지난 지금까지 해초를 몸 어딘가에 붙인 채로 바다로 저벅저벅 걸어들어가 강하를. 할아버지를. 이녕을 그리워 찾아헤맬 곤이가 자꾸 눈에 선해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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