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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아빠가 고등학교 휴학을 하고 집에 혼자 머물던 시절, 까만 정장을 갖춰 입은 한국말 엄청 잘하는 눈 파란 미국 사람들이 전도하러 온 적이 있다고 했다. 여러 여자와 결혼할 수 있다고 해서, 그들 따라 미국으로 가고 싶었다고 장난스럽게 얘기하는 걸 들으면서 그냥 세상엔 그런 사람들도 있겠거니 하고, 아빠는 그때도 여자를 참 좋아했구나, 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상상은 해 본 적이 없다.
글쓴이의 아버지가 우유를 마시지 못하게 하자 어린 글쓴이는 시리얼을 물에 말아먹는 신세가 됐다. 진흙을 한 대접 먹는 느낌이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자식들에게도 채식을 시키는 비건 수준의 억압(?)인 줄로만 알았다.
아들에게 밤샘 운전을 시키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이가 모조리 빠지고, 아내의 얼굴이 새까맣게 멍들고 부어도 병원에 절대 보내지 않는 아버지. 아들과 폐철 처리장에서 일하다가 바지에 기름을 엎질러 불이 붙었는데도 산불을 끄느라 아들을 혼자 내버려두고, 엄청난 화상을 입었는데도 병원만은 절대 보내지 않는 아버지. 그놈의 아버지가 전에 겪은 교통사고에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하고, 또 폭풍우 치는 날 밤샘 운전을 해서 집에 돌아가겠다고 고집피우다가 글쓴이의 목에 마비가 온 것도 아찔했다.
솔직히 이 책에 가득 실린 각종 부상과 사고들, 다 운이 좋았던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삐끗해서 전신마비라도 됐다면 또 이상한 논리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거다, 이러고 살았을 거 아냐. 이런 얘기가 계속 끝도 없이 나와서 1부는 정말 페이지 넘기기가 힘들었다. 안그래도 영화에서 잔인한 장면도 잘 못 보는데, 글의 전달력이 더 적나라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남들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자라온 아버지를 등에 업은 숀 오빠의 폭력. 글쓴이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계속 이어지는 그 폭력을 한 줄 한 줄 어떻게 다 읽어냈는지 모르겠지만 그 시간을 실제 살아온 글쓴이만큼 괴롭진 않았으리라.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참고 읽어 내는 그 끈기야말로 내가 익힌 기술의 핵심이었다.(109p)"
글쓴이가 대단한 의지의 소유자인 것은 확실하다. 나라면 어땠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냥 아버지에게, 오빠에게, 남편에게 학대당하면서 그게 학대인지도 모르고 당연히 내가 받을 대우라고 생각하면서 복종하고 주저앉았을지 모르는 일이다. 아버지 가치관을 더 공고히 합리화하면서 살아갔을지도, 대학에 간다고 우기는 동생에게 창녀가 되었다고, 악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이악물고 대수학을 공부해서 100점을 얻어낸 것도, 다니던 대학의 교수에게 케임브리지에 교환 학생으로 가 보라고 추천을 받은 것도, 보통의 지적 능력과 성실성으론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그치만 여기서 자기계발서처럼, 환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고 싶은 것이 아니다.
" 책에 쓰인 말들을 나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읽는 것은 전율이 흐를 정도로 기쁜 일이었다."(375p)
그녀는 대학에서 역사 수업을 듣고서야 유대인 학살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아기 같은 눈으로 예민하게 지적 자극을 흡수할 수 있었다. 노예 제도에 대해 들으면서 아버지와 오빠가 인종차별적인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됐고, "너 페미니스트처럼 말하는구나."가 논쟁을 유리하게 끝내기 위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대학에서 접하는 것 어느 하나 그냥 책 속의 이야기로 보아 넘기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배우는 내용들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의문을 더 키워 간다. 어쩌면 학교라는 곳을 오래 다니면서 우리는 교육받는 것에 대해서 그냥 무뎌져 버린 것이 아닐까. 어떻게 하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들은 실천적 지식으로서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에게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내가 그때까지 해온 모든 노력, 몇 년 동안 해온 모든 공부는 바로 이 특권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내게 준 것 이상의 진실을 보고 경험하고, 그 진실들을 사용해 내 정신을 구축할 수 있는 특권. 나는 수많은 생각과 수많은 역사와 수많은 시각들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스스로 자신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믿게 됐다.(471p)"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는 중이던 광복절날, 일부 기독교인들은 코로나19 확산 우려에도 불구하고 집회를 강행했다. '정부에서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내리고 있다', '사실은 코로나는 옛날부터 있던 바이러스인데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바이러스 테러를 당했다' 등 상식 밖의 이야기를 그들끼리 나누고 있다는 소문도 돈다. '공교육으로 정부가 애들을 세뇌한다',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정부군이 쏘아서 죽인다',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우리를 죽이려 한다'는 책 속 아버지의 말과 너무도 겹쳐져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공교육 참여율이 높고 문맹률이 현저히 낮은 대한민국에서 이 글쓴이의 이야기는 너무도 상식밖이고 낯설지만, '진실을 보고 경험하고 정신을 구축할 수 있는 특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을 할 수 있을 만한 배움은 이 땅에서도 절실하다. "나 공부 좋아해"라고 말하지만 실은 항상 내가 갖고 있던 가치관, 옳다고 믿어왔던 것,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완전히 무너뜨린 적이 있었던가. 그러고 보면 원제는 'Educated'인데 제목 참 잘 지었다. 배움의 발견. 교육이 넘쳐나는 나라에서 배움이 진짜 어떤 의미인지 돌아보게 하는 책.'책읽기,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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