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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유럽 어슬렁 #3 도시 이야기
    일상/여행지도 2014. 8. 11. 17:40
    북유럽에 관한 여행의 기억을 잊을까봐 두려운 마음에 어서어서 꺼내어서 기록하는 세 번째 글!
    오늘은 기억에 남는 도시 이야기.

    스톡홀름
    도시들 중에서는 단연 내 마음을 끌었던 스톡홀름.
    여행을 다닐 때에 딱히 테마를 갖고 다니는 편은 아니지만 그 나라 문학을 읽으면 그 나라에 가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코제트와 함께 쫓겨다니며 수녀원이며 거리를 다닐 때에는, 나도 파리를 헤매고 싶어진다거나,
    <노르웨이의 숲>에서 와타나베와 나오코가 하염없이 걷던 길을 떠올리면 도쿄를 가고 싶다거나,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을 읽으면서 성곽길에 대한 환상을 모락모락 키우거나.

    북유럽 문학은 번역이 많이 안 되어 있기도 하고, 어째 마음을 끄는 게 별로 없었지만 하나 나를 밤새우게 했던 소설이 있었으니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 여기서 리스베트라는 나랑 체격 비슷한 여자가 온동네를 들쑤시고 다니는 걸 보고, '오! 나도 스톡홀름을 들쑤시고 다닐 수 있겠군!'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 청부살인자와 범죄자와 각종 음모론이 치밀하게 짜여있는 것에 감탄하게 되는 스릴러물인데, 사실 얼핏 생각하면 북유럽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스톡홀름을 다니다 보니 여기를 배경으로 그런 소설이 나올 만 하군,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밀레니엄 투어도 있고, 어디 국립박물관인가에서는 투어가 아니어도 밀레니엄의 배경이 되었던 곳을 표시한 지도를 판다던데 머문 시간이 길지 않아서 그렇게 찾아다니는 것까지는 못했지만 스톡홀름의 골목골목을 다니며 그 공기를 마신 것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그러니까, 다른 도시들은 소박하고, 평화롭고, 좀 단조로운 그런 느낌이라면, 스톡홀름은 좀더 드라마틱한 분위기가 있다. 
    일단 북유럽 치고 물가가 싼 편이어선지 관광객이 많다. 다채로운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전형적인 깔끔하고 키 큰 바이킹족이 아닌 외국인들을 스톡홀름에서 많이 보았다. 

    그리고 그러다 보니 좀 방탕하다. 스톡홀름의 호스텔에선 애들이 어쩜 그렇게 늦게 들어오고 늦게 일어나는지. 덕분에 나도 늦게까지 놀다 들어가고, 늦게 일어나곤 했었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과 달리 차들이 사람을 많이 배려해주지 않는다. 스톡홀름에 있다가 헬싱키를 가니 이런 게 적응이 좀 안 됐었다. 헬싱키도 꽤 큰 도시지만 훨씬 현대적이고 젠틀한 모범생 느낌이 있다. 스톡홀름에선 그냥 차 없으면 다들 무조건 길 건넜는데, 헬싱키에선 그러기가 민망할 정도로 대부분 신호를 잘 지켰다. 게다가 신호 없는 길에선 차들이 무조건 사람부터 지나가라고 해줘서 그때마다 목례하느라 목이 아플 정도였다. 호스텔에서도 7시 반이면 다들 샤워하고 나갈 준비들을 하고 있었다. 
    역시 엄청나게 화려한, 베르사이유 궁전 같은 건 없지만 딱 현대적인 네모네모 건물들보다는 시청사며 왕궁이며 성당이며.. 뾰족하니 예쁜 건물들이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라스탄의 골목도 그렇고. 도시가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하게 참 예쁘다. (아, 나 표현력 참 딸린다....) 



    그래서인지 굳이 야경을 보겠다고 다닌 것도 스톡홀름이 처음이었다. 호스텔에서 추천해준 감라스탄 언덕에 올라가서 야경을 보고, (문제는 이 아저씨가 9시 반이 딱 좋다고 했는데 9시 반은 해가 떨어지는 순간이라서 해가 지고 있는 모습을 보려고 우리는 중간에 섰다는 거) 인포에서 추천해준 카크네스탑까지 굳이 기어가서 또 풍경을 보고. 카크네스탑에서 바라보는 스톡홀름이 좋아서, 나는 여기에서 노을과 야경을 보고 싶어서 거기에 6시쯤 도착했는데 거기서 저녁 먹고 비비적대다가 해가 지고서야 나왔다. 
    카크네스탑에서 보낸 밤이 스톡홀름의 마지막 밤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역시 북유럽에선 이렇게 여유있게 시간을 보내도 시간이 아깝지 않아서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너무 바쁜 여행만 해온 것 같다.

    헬싱키와 누구시오숲

    사실 북유럽 여행을 꿈꾸게 된 동기는 별 거 없다.


    2년 전 서유럽 여행을 갔을 때 헬싱키에서 환승을 했는데, 그때 공항에서 바라본 숲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유한킴벌리 마크에나 있을 것 같은 나무들이 빼곡했다. 친구 S는 '야, 헬싱키 가면 막상 그런 숲 없어,'라고 나의 환상을 짓밟았지만, 짓밟히지 않았다. 그래서 2년 동안 피부 관리도 받고 싶고 PT 받고 싶은 거, 가방 사고 싶은 거 참아가면서 돈을 모았다. 진짜 중간에 이런 생각도 많이 했다. 여행할 돈으로 코를 높이면, 혹은 쌍꺼풀을 만들면 내 인생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부수입 없는 박봉으로 살면서 좋은 점 하나는, 나의 가치의 우선순위가 어딘지 확실히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자원이 적은데 그 자원을 모아다 쓰게 되는 곳이 내가 진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인 것 같다. 나는 여행을 왔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는다. 미래의 나는 여행이 아닌 어떤 것을 선택할지 알 수 없다. 아마 삶의 다른 궤적에 있다면 분명 다른 선택을 하겠지. 그렇더라도 2014년 북유럽에서 얻은 감동, 그 이상으로 가치있는 것을 선택하는 내가 되었으면- 하고 바랄 정도이다.

    그래서 헬싱키를 들르면서 숲에는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스톡홀름이 너무 맘에 들어서 하루 더 있을까도 생각했는데, 그러면 헬싱키에서 있는 시간이 하루 반 정도여서, 누크시오 숲을 다녀오기 촉박할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정대로 그냥 스톡홀름에서 두 밤을 보내고 헬싱키로 향했다. 사실 헬싱키의 숲뿐만 아니라 핀란드에 대한 환상 자체가 적잖게 있었던 듯하다. 지금은 망했지만 한때 정말 잘 나갔던 노키아가 있던 나라, 리눅스가 탄생한 곳, PISA 학력 상위권 아이들이 있는 곳이자 요즘 진보 교육계의 천국처럼 여겨지는 곳, 그리고 디자인, 등등. 그리고 당연히 사흘 머무는 관광객으로서 핀란드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스톡홀름보다 훨씬 얌전하고, 현대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시아 도시들처럼 깔끔한 건 아니고, 가끔은 지린내 나는 곳도 있고, 공사하는 곳들도 많다. 

    그리고 북유럽 도시들이 그렇듯 반나절을 돌아보고 나면 오만해진다. '아, 이제 헬싱키 다 본 것 같아.'
    헬싱키에 도착하자마자 도시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은 암석교회였다. 가이드북을 보니 좀 중앙역에서 먼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당당히 투어리스트 인포 센터에 가서 물었다. 암석 교회는 어떻게 가나요? 그리고 오늘 일요일인데 몇 시에 가야 입장이 될까요? 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언니가 액츄얼리 오늘은 월요일이라고 말씀해 주신다. 아........ 그래서 대부분의 박물관은 쉬는 날이었고, 주로 교회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해서 암석 교회, 우스펜스키 교회, 헬싱키 대성당을 갔다가 아카데미아 서점을 들렀다.


    암석교회와 우스펜스키 교회.



    우스펜스키 교회는 입장이 안 되는 날이어서 바깥만 돌아보았다. 러시아스러운? 건물이었는데 멀리서부터 분위기가 남달라서, 꼭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안 그래도 헬싱키 명소 중 하나였는지 한국인 단체팀을 만나서 아줌마에게 사진을 부탁할 수 있었다. 역시 한국 사람에게 사진을 맡길 때 가장 우리 취향대로 찍어주니까.
    암석교회는 무슨 스페인에 있는 뭐더라... 사진에서 봤는데... 그런 건물처럼 엄청난 암석을 이용한 건물일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니었다. 기대만 안 하면 여행의 기쁨은 배가 되는 법인데 진리를 잠시 잊었다. 안이 더 좋았다. 암석교회도 그렇고, 알바 알토가 설계했다는 아카데미아 서점도 그렇고 건물 내부에 빛이 비쳐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성령이 충만한 중에 아카데미아 서점 얘기를 좀 하자면- 아침부터 쫄쫄 굶은 터라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싶어서 찾아가긴 했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라서 이런 말 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그냥 책이 있는 풍경이 무조건 좋다. 내가 읽지 않아도 책 구경이 그냥 재미있다. 오히려 내가 책을 많이 읽고 싶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처지라 더 구경을 즐기는 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대형서점이 그렇듯 여기에도 책 읽을 공간이 이렇게 있다. 맹렬한 기세로 책을 읽는 아저씨를 무음 카메라로 도촬. 알고 보니 관광객인 듯, 사진 찍고 약 8분 23초 후 카페의 내 앞 테이블에서 론니 플래닛을 보면서 커피를 드셨다. 



    그리고 대성당에는 정말 반했다.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색. 이날 헬싱키가 뜨거운 햇볕을 자랑하는 날이어서 그랬는지, "빛"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대성당으로 걸어가는 도중에 혼자 셀카기능 없는 데쎄랄을 갖고 열심히 셀카 찍는 외국인을 발견하고 계획적으로 접근했다. '그래 저 정도라면 내 사진도 멀쩡히 찍어주실 거야.' 그래서 그녀가 원하는 대로 다섯 번쯤 ㅠ ㅠ 사진을 찍어주고, 그녀도 내 사진을 찍어주었다. 나는 딱 어떻게 찍어야 예쁠지 모르겠어서 다양한 요구사항을 말하진 못했다.
    대성당이 맘에 들어서 세 번쯤 빙빙 돌아보았는데 역시 멀리서 정면에서 땡볕을 보며 감상하는 게 가장 예뻤다. 

    그리고 고대하던 누크시오숲.



    아....
    아...............
    일단 혼자 가는 건 좀 겁이 나서 동행들과 함께 했는데, 같이 갔던 언니들이 걷는 걸 힘들어해서 마음만큼 들쑤시고 다니지는 못했다. 언니들은 너무 힘들다고, 다녀오면 부모님도 못알아볼 것 같다고 누구시오숲이라고 별명을.. 근데 안 그래도, 기대한 것만큼 나무가 빽빽히 우거진 숲은 아니었다. 북유럽 사람들만큼이나 훌쩍 키 큰 나무들이 늘어선 길은 좀 볼 만 했지만, 이거...광릉 수목원보다 못한 것 같은데 왜 국립공원인거지... 반타 공항에서 본 숲은 이런 숲이 아니었는데... 역시 수도권은 안되나벼...하는 기분?






    오히려 별 기대 없이 갔던 수오멘리나 섬이 좋았다.
    노르웨이에서 너무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보아서, 이제 웬만한 풍경에는 감동하지 않게 되었나보다, 하고 스스로 어느 정도 포기한 상태였다. 원래는 이 날 아웃이라서 시간도 촉박하니 헬싱키 시내나 좀 둘러보고, 아테네움에서 토베 얀손 전시를 보고 쇼핑을 할까.. 하다가, 헬싱키에서 잠시 만났던 B가 자연에서 비비적대고 산책하는 거 좋아하면 제발!꼭! 마지막 날 수오멘리나에 들르라고! 진짜 꼭 가라고! 술 먹고 12시가 될 때까지 얘기하길래 좀 무리해서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길을 나섰다. 안그래도 헬싱키에서 체크인 하자마자 호스텔 언니한테 좋은 곳을 추천해달랬더니, beauuuuuuuuuuuuutiful fortress island라며 수오멘리나를 추천하긴 했었다.















    더웠던 헬싱키. 땀 많이 흘리면 이따 장거리 비행에서 땀냄새가 날까봐 일부러 옷도 더 얇게얇게 입고 나갔다. 그리고 섬 도착. 그래 그냥 저냥 적당히 나무 있고 바다 보이는 곳이겠거니, 했는데
    성벽이 딱 보이는 저 풍경이 참 예뻤다. 뒤로 더 올라가면 바다도 있는데 성벽이 있는 이쪽이 좋아서 여기서 또 한 세 바퀴쯤 돌아보았다. 






    그런데 이제 귀국한 지 사나흘쯤 되어 올림픽 공원을 산책하는데...
    아, 몽촌토성 왜 이렇게 아름다운 거니. 코펜하겐의 카스텔레트 요새, 수오멘리나 등등 내가 갔던 포트리스들도 다 예뻤지만 몽촌토성이 제일 예쁘다. 내가 지금껏 내 앞마당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은 모르고 살았구나, 하는 감동과 왜 대체 여기가 더 예쁜 거지!!! 하는 약간의 억울함이 뒤섞인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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