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하루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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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자료 편집하다 하루가 다 갔다.학교에서 하루하루/공립에서 수업하기 2015. 9. 22. 19:15
병가 마지막 날. 발가락도 잘 나아가고 뭐했나 생각해보니 하루 종일 한석규가 나왔던 와 씨름했다. 수업을 앉아서 해야 할 것 같아서, 판서 대신 쓸 파워포인트를 아침에 만들고.. 그 다음 단원이 훈민정음의 원리 이야기인지라, 드라마가 생각났다. 사실 처음에 이랑 헷갈렸다. 그래서 이상하다.. 분명히 한석규가 세종으로 나와서 '지*하고 자빠졌네'등등의 대사를 했다는데.. 하다가 다시 검색해보니 뿌리깊은나무였다. 교과서의 글이 자음자 모음자의 원리, 한글의 우수성 등등.. 너무 아름다운 찬사라서 애들이 지루해하기 딱 좋을 것 같아서 영상자료가 없으면 당장 내일 수업을 못할 것 같은 기분!!!!!!!! 그래서 갑자기 절박해져서 오후 내내 모니터 앞에 있었다. 원래 TV를 안 봐서 이 드라마도 대충 세종대왕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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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고 있음을 인정하기학교에서 하루하루/학급 살림 2015. 9. 21. 17:21
다른 샘들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가끔 애들이 수업 끝나고 "쌤 수업 진짜 재밌어요~ 너무 좋아요" "샘이 저희 얘길 잘 들어주셔서 좋아요" 등등 좋다고 하면그냥 내가 젊으니까 좋은 거겠지, 생각하고 너무 기뻐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면서도 가끔 애들이 좀 나쁜 피드백을 하거나 쌤 이러저러해서 섭섭했어요, 등등의 이야기를 하면 집에 와서까지도 저녁 내내 미안해하거나 맘에 걸리곤 했는데 왠지 어제 어쿠스틱 라이프를 읽고 나서는 (딸은 나를 너무 사랑한다-http://webtoon.daum.net/webtoon/viewer/33041 ) 내가 아이들에게 받은 것들을 인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젊으니까 좋아하는 걸꺼야, 하고 나중에 시간이 흐른 후에 애들이 나에게 이렇게 열렬히 애정표현을 하지 않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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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입은 공상. ㅎㅎ학교에서 하루하루 2015. 9. 19. 10:42
원래 아이들이란 조심할 줄 모르는 존재인 것 같고, 나도 사실은 그렇고,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날 수 있으니 복도에서도 언제나 크~게 돈다든가 계단을 오르내릴 때 조금 더 신경쓰는 정도의 조심은 했는데 처음으로 학생과 부딪쳐 다쳤다. 자세히 얘기하면 징그러우니까.. 하튼 교무실에서 학생과 충돌로 발톱이 확 들려서 빠졌다. 안그래도 요즘, 사랑하려면 무엇보다 체력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와중인데 진짜 이걸 참.. 그래도 다행히 며칠 쉴 수 있게 되었는데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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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찾기 활동학교에서 하루하루/공립에서 수업하기 2015. 7. 28. 06:31
여러 선생님들이 어휘 학습을 갖가지 방법으로 하는데, 지난 학기엔 그냥 아주 고전적인 방법으로.. 아이들이 모를 만한 단어가 많은 글을 읽기 전에, 어려운(내가 보기엔 아이들이 모를 것 같은) 단어들을 죽 나열하고, 그 단어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도록 하였다. 나의 원래 의도는 그러면서 아이들이 글도 한 번 훑어보도록 하는 것인데, 사전을 찾으면서 글을 읽게 되진 않는 것 같다. 마치 소리 내어 글을 읽으면 글보다는 발성에도 신경쓰게 되어 글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사전 찾기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한 가지 신기한 건 이 활동을 할 때에는 손 놓고 있는 애들이 거의 없다. 평소에 쓰기 활동을 시키면 멍-하니 있던 애들도, 어쨌든 글씨를 알면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이니 한 시간 동안 계속 꼬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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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을 좋아하는 이유학교에서 하루하루 2015. 7. 25. 00:56
기말고사가 끝난 후, 수업 시간에 독서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 시간 내내 책을 읽는 어떤 시간..... 옆반이 너무 시끄럽다. 원래 약간 산만한 분위기의 반이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옆 교실에서도 아이들의 목소리가 너무 또렷하게 들린다니, 교과 선생님이 아직 안 들어오셨다는 걸 확신하고 그 반 뒷문을 열었다. 반장이 앞에 나와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고 있었고, 무슨 시간이냐, 선생님을 모셔오라, 고 했더니 영어 선생님이 잠깐 프린트를 가지러 교무실에 내려갔다는 것이다. 나는 역시 속아주기 전문선생인지라 그래? 하고 갸웃하면서 조용히 좀 하라고 당부하고 다시 내가 수업하는 반 교실로 갔다. 그런데도 한동안 떠드는 소리와 함께 '야! 조용히 해!'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몇 번이나 옆반까지 들려서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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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자기한건가학교에서 하루하루 2015. 7. 23. 18:30
나는 예전 학교에서 4년 동안 생활기록부 담당을 하면서, 참 연수자료 표지 만드는 데에 목숨을 걸었다.교사의 본 업무는 생활지도와 교과수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때론 행정업무를 하면서 보람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그러니까 어차피 뻔한 연수자료지만 좀더 재밌게 하고 싶었다. 뭔가 하나라도 좀 신선하게, 딱딱하지 않게. 이번에 새로운 자리에 꽂혀서 종단연구 업무를 하면서도 내가 의외로 열심히 행정업무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학생 기념품과 간식, 협력교사 기념품을 사야 하는데 예산 안에서 어떻게든 최대한 좋은 것들을 사고 싶어서 며칠 동안 인터넷 쇼핑을 뒤졌다. 덕분에 학생들에게는 햄버거 세트로 감동을 주었다. 몹시 뿌듯했다.그리고 교사 기념품에는 하나하나 라벨을 붙였다. 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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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하나 지키기가 어렵다학교에서 하루하루 2015. 7. 7. 20:34
중학교 1학년은 OMR카드와 컴퓨터용사인펜을 처음 써 보는 아이들이라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처음이면 답안지를 정말 이렇게도 쓸 수 있겠구나, 나에게 새로운 상상력의 지평을 열어준 아이들도 종종 있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3반이라고 표기하고 싶으면 왼쪽 줄에서 0, 그 옆줄에서 3을 칠하는 대신, 가장 왼쪽 줄에서 0과 3을 동시에 마킹해버리곤 한다.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그냥 점 하나를 찍고 마킹했다고 우기는 애들도 있고 또 잘못 마킹했다고 답안지를 파버리는 아이들도 있다. 그 시기를 지나면 나는 빨간색 플러스펜으로 예비마킹을 강요할 필요는 없겠다고 최근에 생각하고 있었다. 수능도 예비마킹이 안되고, 대부분의 시험에서 예비마킹으로 인한 인식 오류는 수험생의 책임이라고 하잖아? 그러면 오히려 아이들이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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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를 화나게 하는가학교에서 하루하루/학급 살림 2015. 5. 21. 17:08
달을 보고 아이고 슬프다~ 느꼈으면 달이 나를 슬프게 한 거예요, 내가 슬프게 느낀 거예요? 똑같이, 다른 차가 앞에 끼어들면 그 차가 나를 화나게 한 게 아니라 내가 화를 낸 겁니다. 그러니까 그럴 때마다 '아이고 내가 또 화를 내는구나~ 내 성질이 아직 더럽구나~' 하세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예전에 들었던 법륜스님 팟캐스트의 한자락이 기억이 났다. 그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에 이걸 반대로 써먹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미친듯이 화를 내더라도, 내가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사과하고 잘못에 대해선 고치면 된다. 과도하게 화를 내는 사람의 화를 풀어줘야 할 책임이 나에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몹시 편안해졌다. 담임교사에게 주말 내내 전화해서 소리를 지르고 있다면 화는 그 사람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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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 수업일기.학교에서 하루하루/공립에서 수업하기 2015. 5. 6. 22:06
어릴 때에 그냥 '반어적 제목'과, 조금 더 하면 김 첨지가 거친 남자였다는 것만 기억에 남았던 소설이었다. 그런데 막상 수업을 하며 여러 번 다시 읽으니 지금까지 을 그렇게만 기억했다는 것이 좀 미안했다. 그러니까, 그때엔 김 첨지가 얼마나 처절하게 가난했던 것인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수업 자료를 만들면서 지금 물가로 계산해보니 김 첨지가 살았던 월셋방은 무려 한 달에 4만원. 이때 진짜 놀랐다. 아이들에게 내가 2007년 즈음 살았던 25만원짜리 고시원 방의 구조를 그려주고 나서, 이것보다 여섯 배 나쁜 방에서 온 가족이 산 거라고 이야기해주었는데 그걸로 실감이 좀 나긴 할까. 작년에 '모모' 수업을 할 때에도 그렇고 내가 감동 받고 흥분해서 문학 수업을 한데도 아이들에게 얼마나 전달되었을지 궁금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