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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게 뭐라고/장강명책읽기, 기록 2020. 10. 5. 07:00
'읽고 쓰는 세계'를 사랑하는 작가가 팟캐스트를 하면서 '말하고 듣는 세계'를 탐험하고 와서 쓴 이야기.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진행하고 다양한 책과 작가들을 접하면서 겪은 일들을 정말 잘 읽히게 썼다. 나도 정말 재미있게 들었던 방송이어서 뒷이야기들도 흥미로웠다. 특히 구글 문서를 활용한 독서 토론은 온라인학교 시대에 1,2학년을 맡게 된다면 꼭 해보고 싶다(!) 다독이 중요하지 않은 이유, 글을 쓴다고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등등 글과 책에 대한 그의 생각들에도 공감이 많이 간다. 다만 출판계가 점점 팬덤 문화가 되어간다는 이야기에선 뜨끔. 요즘 에세이는 좀 질려서 안 읽는 편인데도 이 책을 집어든 건 팬심 때문이 아닌지 돌아보면서. 작가 장강명의 고민이 진솔하게 들여다보이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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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푸가/김진영책읽기, 기록 2020. 8. 20. 07:04
감수성, 예민함, 감성, 나와는 거리가 먼 단어다. 그래서 이 책을 집어들까 말까 한참 고민했었다. 후회하지 않는다. 내 앞 대출자가 며칠만 더 늦게 반납했더라면 다시 도서관이 닫혀 만나지 못했을 이 책을, 지금 쥐고 있는 행운에 감사한다. 너무 아름다워서 어느 한 페이지를 고를 수가 없다. 손에 집히는 페이지를 펴서 가만 들여다 본다. 143 바르트에게 사진은 '어두운 방(camera obscura)'이 아니다. 사진은 '밝은 방(camera lucida)'이다. 살아있는 것이 이미지로 고정되는 죽음의 방, 그러나 빛으로 찬란한 방. 사라진 순간들이 '그때 거기에 있었음'의 빛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는 방. 그때 거기에서 사라진 당신의 순간들이 지금 여기에서 기적처럼, 부활처럼, 당신의 빛나는 모습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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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발견책읽기, 기록 2020. 8. 18. 06:28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아빠가 고등학교 휴학을 하고 집에 혼자 머물던 시절, 까만 정장을 갖춰 입은 한국말 엄청 잘하는 눈 파란 미국 사람들이 전도하러 온 적이 있다고 했다. 여러 여자와 결혼할 수 있다고 해서, 그들 따라 미국으로 가고 싶었다고 장난스럽게 얘기하는 걸 들으면서 그냥 세상엔 그런 사람들도 있겠거니 하고, 아빠는 그때도 여자를 참 좋아했구나, 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상상은 해 본 적이 없다. 글쓴이의 아버지가 우유를 마시지 못하게 하자 어린 글쓴이는 시리얼을 물에 말아먹는 신세가 됐다. 진흙을 한 대접 먹는 느낌이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자식들에게도 채식을 시키는 비건 수준의 억압(?)인 줄로만 알았다. 아들에게 밤샘 운전을 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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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숲> 시즌 1을 보았다일상 2020. 8. 10. 17:20
SJ가 클리어하고, 뭘 하고 놀까 고민하고, 나도 장마철을 맞아 SJ와 실내에서 뭐 하나 같이 즐기고 싶어졌을 때 넷플릭스 상위권에 이 드라마가 있길래 보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 둘이 함께 끝까지 잘 보는 장르는 스릴러물이더라고. 정말 몰입감 최고. 무려 토요일에는 SJ가 먼저 "졸려~ 그만 보자."라고 했을 때 시계를 보니 새벽 2시라서 깜짝 놀랐다. 그나마 졸리다고 느낀 것도 그게 최종화였기 때문이었을 거다. 드라마의 매력 뽀인트는 감정불능의 (약간)또라이인데도 반사회적이지 않은 우리 검사님.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감정을 찾아간다는 설정도 있을 법한데, 이 작품에선 그것도 원천봉쇄다. 성장 과정에서 심리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뇌를 잘라내 버렸으니까. 이성적으로 타인에 대해 신뢰하게 되는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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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에도 아크앤북이 있었네일상 2020. 6. 30. 04:27
(잠실 아크앤북의 가장 큰 강점을 보고 싶다면 글 마지막 사진만 보시기를..) 엄마가 뭘 좀 사다달라셔서 롯데몰에 들렀다가, 비오기 전에 총총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4층에 아크앤북이 있다는 광고판 발견. 아크앤북?! 잠실점은 어떤지 보고 싶어서 망설이지 않고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4월 초에 오픈했다는데 내가 그간 나다니질 않았으니 알 턱이 있나. 역시 집에만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 돌아다녀야 좀 눈에 보이는 것도 있고 새로운 경험도 있지. 입구부터 호그와트 도서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관심 없는 사람이든 들어가보고 싶게 만드는 멋진 인테리어. 구글에서 '아크앤북'을 검색해보면 처음 나오는 글이 이 서점 안에 책 읽는 사람은 별로 없다, 겉만 번드르르하다, 이런 이야기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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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옥수수를 처음 먹어보다일상 2020. 6. 28. 21:32
엄마가 챙겨주는 것 말고 먹을 걸 선물받을 일이 참 없는데, 어쩌다보니 지난 금요일에 우리 집에서 모임을 하게 되어 짝꿍샘이 초당옥수수 다섯개를 선물로 주셨다. 멤버가 5인이라 같이 먹으려고 들고 오신 것 같긴 한데, 먹을 것도 워낙 많고 정신이 없던 터라 그냥 식탁 위에 그대로.. 결국 나의 주말 간식이 되었다. 짠 아래 반쪽은 전자렌지에 3분 돌린 것, 위 반쪽은 날것. 사진으론 잘 안 보이지만 전자렌지에 돌리고 나면 더 노릇노릇해진다. 박막례 할머니 유튜브를 보니깐 생으로 먹는 게 물도 많고 더 맛있다던데, 나는 촉촉하고 물이 쭉쭉 나오는 게 뭔가 옥수수 같은 기분도 안 들고 전자렌지에서 막 나온 그 뜨끈한 느낌도 좋고 전자렌지 살짝 돌린 게 더 달콤한 것 같아서 결국 반쪽도 전자렌지에 돌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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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 코우지 방문기일상 2020. 6. 28. 21:04
유튜브의 순기능. 팬돌이가 언젠가부터 요리 채널을 열심히 보더니 집에서 이것저것 해 먹인다. 스테이크와 알리오 올리오만큼은 정말 외식 부럽지 않게 해먹게 됐다. 유튜브의 또다른 기능. 일식 리뷰 채널을 열심히 보더니 스시 오마카세를 자꾸 먹고 싶어한다. 본격적으로 초밥 나오기 전에 먹은 전복요리. 내장 섞어서 만든 소스가 잘 어우러지고 맛있었다. 전복도 쫄깃쫄깃. 방어, 참치, 한치 등등 초밥을 먹다가 나온 아구 가라아게. 요것도 질감도 찰지고 하나도 안 느끼했다. 이게 사진으론 그래보이지 않지만, 밥 위에 새우 얹고 그 위에 성게알을 정말 듬뿍 얹어주셨다. 결국 한 입에 못 먹고 손에 묻혔어 아깝게 ㅠㅠㅠ 내가 와~ 성게알 많다~ 했더니 쿨하게 "이 정도는 드셔야죠" 하시던 쉐프님 최고. 지라시스시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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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드백 한 닢학교에서 하루하루/학급 살림 2020. 6. 22. 04:41
온라인 수업 때부터 '아이들은 내 말을 하나도 들을 생각이 없거나, 알아듣지 못한다'는 전제하에 뭔가를 전달해야 하는 것이 몹시 힘들었다. 온라인 수업 땐 전달사항을 글로 쓰니까 요즘 애들이 열심히 안 보는 것이겠거니, 했는데 얼굴 보고 말해도 마찬가지다. 조회 시간에 '교실 게시판에 입시전형별로 정리된 자료 붙여놨으니까 참고하라'고 말해준 바로 그날 아침! 말 끝나고 20분도 채 지나지 않은 쉬는 시간! 어떤 애가 논술 전형에 관해서 어쩌고 저쩌고 묻길래 게시판에 붙여둔 자료를 보면서 얘기해줬더니 "어, 여기 이런 게 있었어요?" 라고 하는 식이다. 애들이 원래 그렇긴 한데, 고3인데 더 심해졌다는 게 포인트. 그래서 조금이라도 전달력을 높여보고자 핸드폰 내려놔, 이어폰 빼, 고개 들고 선생님이랑 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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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 첫날 두 명이나 선별진료소 보낸 이야기학교에서 하루하루/학급 살림 2020. 5. 25. 05:22
설레는 개학 첫날. 하도 못 만나서인지 애들을 만나는 게 기대가 많이 됐다. 그런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갔는데... 갔는데.. 조회 시간에 원래 열을 재도록 되어 있어서 뿅뿅뿅 열을 쟀다. 그런데 바로 두 번째 애부터가 너무 높게 나오는 거였다. 애들이 4층까지 헉헉거리고 올라온 직후엔 그럴 수 있다고 해서 5분 후에 다시 쟀다. 다들 정상치로 내려왔는데 한 명만 계속 37.8, 37.9를 왔다갔다.... 결국 일시적 관찰실로 보내고, 어머니께 데리러 오라고 전화를 드렸다. 사람들이 왜 증상 있는데도 내과를 가나, 했는데 막상 닥쳐보니 바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되질 않는다. 열나는 게 보통 감기나 염증 증상이니까. 나도 학부모님에게 전화하면서 학교가 너무 예민하게 군다고 느껴질까봐 걱정이 됐다. 학생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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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창/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中책읽기, 기록 2020. 5. 20. 05:10
역사를 책 속의 글자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과거의 누군가와 현재의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생생한 어떤 것'으로 느끼기에 이야기만큼 좋은 게 있을까. 4.3 사건, 서북청년단.. 머릿속에서 떠돌던 지식들이 사람들의 삶으로 엮어져 나오는 한 페이지 페이지. 역사를 이해하는 게 이런 거였다는 걸 새삼 깨닫고 가슴이 뛰었다. 바로 '제주도'에서 4.3 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게 지식적인 면에서는 가장 큰 수확이었다. 일본 정부가 지정한 곳에만 물건을 팔 수 있는 지정판매제, 병자나 노인에게도 조합비를 강요하는 등 일제의 억압에 해녀들이 투쟁을 하고, 승리해내기까지 한다. 이때 쎈언니들 진짜 멋있었어. 여성들의 주체성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다. 이 주인공들이 4.3에서도 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