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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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도스토예프스키책읽기, 기록 2021. 2. 13. 17:30
당신의 하루 일과를 될 수 있는 한 자세히 빠짐없이 편지에 써서 보내 주세요. 주변엔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그들과 지내기는 괜찮으신지 말이에요. 전 정말 모든 게 너무 궁금하답니다. 이 감정이 사랑이 아니란 말인가? 가난한 중년 남자 제부쉬낀과 그의 건너편 하숙집에서 사는 (똑같이 가난한) 젊은 여인 바르바라, 두 사람 다 편지를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써달라 조른다. 분명히 남녀 간의 사랑 맞는 것 같은데, 제부쉬낀이 계속 자기는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거라고 우겨서 처음에 좀 헷갈렸음. 1800년대에 이런 서간체 소설을 쓸 수 있었던 도스토예프스키가 대단하게 느껴질 뿐이다. 편지를 통해서 두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깊어지는지, 각자 혹은 함께 어떤 사건을 겪는지 조금씩 밝혀지는 구성 덕분에 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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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일/오은x재수/창비교육책읽기, 기록 2021. 1. 4. 20:19
이건 시집이라기보단 그림책 같은데?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했던 생각이다. 아니나 다를까, 앞표지를 그제서야 보니 '그림시집'이라고 떡하니 쓰여있었지. 시의 삽화이기를 넘어서서, 만화의 매체적 성격을 충분히 살려서 시와 만화가 어우러지는 것이 정말 좋았다. 오은 시인이 좋아서 서평단 응모를 했지만, 만화가 재수님에게 반해서 나온 책. 프롤로그도 진짜 압권이다. 스포가 될까봐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그림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그 대담함. 맞아, 책을 읽는 게 이런 거였지, 하고 마음을 확 울리는 데가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 획일적인 학교에서 느끼는 답답함, 꿈, 희망, 막막함, 첫사랑, 성장에 대한 자각 등등. 청소년들이 공감할 만한 주제들로 가득차 있다. 쓰고 보니 좀 그렇네.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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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그림 엄마, 한지혜책읽기, 기록 2020. 12. 22. 06:49
'선생님도 엄마 있어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요즘 애들이 많이 하는 패드립이 아니라, 아이들이 여기기에 '교사'는 NPC여서다. 교사다움을 갖추고 교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 그래서 교사가 인간적 결함이나 감정을 드러낼 때 그렇게 욕을 먹는 게 아닐까. 그래도 '엄마'라는 존재에는 비할 바가 못된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분명한 표상이 있고, 다른 정체성은 모두 그 역할에 가려지는 이 강력한 역할. 『물 그림 엄마』에는 다양한 엄마와 자식들이 등장한다. 엄마라는 이름에만 묻혀 납작해지지 않은 사람들. 첫 작품, 부터 엄마 캐릭터의 의외성이 재미있다. 그 힘으로 이 소설집을 끝까지 읽게 됐지 싶다. 자식들을 돌보는 사람이기보다 항상 '자식들이 돌봐야 하는 사람'이었던 엄마는 말한다. '나는 니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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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엄기호, 김성우/따비책읽기, 기록 2020. 12. 15. 17:29
우리나라 중고생들의 70%만 맞췄다는 읽기 문제가 있다. 여러분도 한번 풀어보세요. 아라이 노리코, 『대학에 가는 AI vs. 교과서를 못 읽는 아이들』, 해냄, SBS 일본에서 명문대 입학을 목표로 개발한 인공지능 '도로보군'의 읽기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문제다. 일본에서는 중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의 약 30%가 표층적인 독해조차 하지 못한다고 하여 이슈가 되었다. SBS에서 라는 다큐를 제작하면서 우리나라 중학생들에게도 실험을 했는데, 틀린 아이들은 질문을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문장 뜻을 그대로 이해하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저런 문제도 틀리다니 진짜 너무하다? 요즘 아이들은 유튜브만 보느라 책을 읽지 않는다? 스마트폰의 짧은 문장에만 익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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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합격, 계급/장강명책읽기, 기록 2020. 11. 23. 05:30
기자 출신으로 소설가인 저자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책. 꼼꼼히 취재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들어주면서도, 문학 공모전 수상자이자 심사위원으로서의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풀어낸다. 400쪽 넘는 논픽션인데 끝까지 질문하고, 검증하고, 또다른 질문을 해 나가는 힘이 떨어지지 않는다. 감탄. 내부자로서 서술하는 부분도 재미있다. '술자리에서 얼굴 도장 찍는 문단 권력'이 존재하는지 취재하러 2차 3차를 갔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문학상과 공채는 어떻게 좌절의 시스템이 되었나'라는 부제에서 보듯 상당 부분은 이들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파격적인 신인을 알아보기 어려운 시스템이고, 어떤 취향을 가진 심사위원을 만나느냐에 따라 꽤 괜찮은 작품이 본심에 오르지조차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학상 심사가 절차적으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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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와 고요/기준영책읽기, 기록 2020. 11. 15. 15:27
가을이 시작할 때쯤 읽기 시작한 것 같은데 이제야. 소설을 읽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오독으로 가득한 완독일 것 같아 부끄럽다.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가장 마지막에 실린 부터 이야기하고 싶다. 주인 아주머니의 부탁으로 잠시 맡게 된 빈티지 상점에서, 가영은 의미 있는 걸 흘렸다며 안절부절 못하는 손님 하나를 만난다. 저녁 때 꼬마 윤진이가 남겨두고 간 메모를 통해 그 남자손님의 물건을 찾게 되고, 그를 기다리며 가영은 말한다. "그분이 무슨 이야기든 하려고 드신다면, 전 좀 들어볼까 봐요."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이 바로 이런 이야기들이다. 소중한 뭔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찾아나가는지, 혹은 타인의 도움으로 어떻게 그 상실감을 메워나가는지 조용조용 들려준다. 두 번 읽은 작품은 . 그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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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책읽기, 기록 2020. 11. 6. 10:56
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퍼트리샤 포즈너/북트리거 "나의 투쟁"의 악몽을 현실로 만들어 준 마법사들(텔포드 테일러, 미국 전범죄 수석검사) 홀로코스트에 대해. 지금까지는주로 유대인의 관점에서 수용소의 끔찍한 생활에 대해 증언하는 이야기를 접해왔다. 안네의 일기, 아트 슈피겔만의 같은 작품들. 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해자 한명 한명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대규모의 학살을 가능하게 하는 자본, 약, 기술은 어디에서 왔는가. 전쟁을 위해 화학 기술이 필요했던 나치와 무료 노동력을 공급받고 싶었던 파르벤이 결탁해가는 과정을 그린 초반부의 흡입력이 상당하다. 나치가 화학 기업 파르벤을 장악하고 식민지 화학 기업들을 거침없이 합병해가는 과정도 그렇지만,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속성상 파르벤이 하는 행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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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잠을 자야할까책읽기, 기록 2020. 10. 13. 06:32
우리는 왜 잠을 자야할까/매슈 워커/열린책들 중학교 3학년, 학교와 입시가 수면을 방해하기 전까지 나는 9시에 자고 7시에 일어나는 아이였다.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수면시간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생리가 끊겼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안자는 척 자는 법을 터득했지만 부족했다. 대학 입학 이후 기말고사 때마다 무지막지한 벼락치기를 하면서 나는 초저녁에 잠이 쏟아지고 새벽에 잘 일어나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 그 이후로 일이 많을 때마다 새벽잠을 잘라먹었다. 체력 탓을 하면서 픽 쓰러져 자고 나서 2시,3시에 일어나서 일을 했다. 매일 졸리니까 여전히 나는 잘 자는 사람이라 믿었다. 원래 운동을 좀 해보려고 스마트밴드를 차기 시작했는데, 수면 측정을 살펴보고 깜짝 놀랐다. 평균 수면시간이 하루 5시간 내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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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게 뭐라고/장강명책읽기, 기록 2020. 10. 5. 07:00
'읽고 쓰는 세계'를 사랑하는 작가가 팟캐스트를 하면서 '말하고 듣는 세계'를 탐험하고 와서 쓴 이야기.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진행하고 다양한 책과 작가들을 접하면서 겪은 일들을 정말 잘 읽히게 썼다. 나도 정말 재미있게 들었던 방송이어서 뒷이야기들도 흥미로웠다. 특히 구글 문서를 활용한 독서 토론은 온라인학교 시대에 1,2학년을 맡게 된다면 꼭 해보고 싶다(!) 다독이 중요하지 않은 이유, 글을 쓴다고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등등 글과 책에 대한 그의 생각들에도 공감이 많이 간다. 다만 출판계가 점점 팬덤 문화가 되어간다는 이야기에선 뜨끔. 요즘 에세이는 좀 질려서 안 읽는 편인데도 이 책을 집어든 건 팬심 때문이 아닌지 돌아보면서. 작가 장강명의 고민이 진솔하게 들여다보이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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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푸가/김진영책읽기, 기록 2020. 8. 20. 07:04
감수성, 예민함, 감성, 나와는 거리가 먼 단어다. 그래서 이 책을 집어들까 말까 한참 고민했었다. 후회하지 않는다. 내 앞 대출자가 며칠만 더 늦게 반납했더라면 다시 도서관이 닫혀 만나지 못했을 이 책을, 지금 쥐고 있는 행운에 감사한다. 너무 아름다워서 어느 한 페이지를 고를 수가 없다. 손에 집히는 페이지를 펴서 가만 들여다 본다. 143 바르트에게 사진은 '어두운 방(camera obscura)'이 아니다. 사진은 '밝은 방(camera lucida)'이다. 살아있는 것이 이미지로 고정되는 죽음의 방, 그러나 빛으로 찬란한 방. 사라진 순간들이 '그때 거기에 있었음'의 빛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는 방. 그때 거기에서 사라진 당신의 순간들이 지금 여기에서 기적처럼, 부활처럼, 당신의 빛나는 모습들로 ..